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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觀我Guanah Story

고양이를 그린 화가들

Guanah·Hugo 2024. 10. 29. 06:01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고양이를 그린 화가들

“내가 고양이랑 놀 때면 내가 고양이랑 놀아 주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랑 놀아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몽테뉴, 16세기 프랑스 수필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아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87년, 오르세 미술관.

더 이상 쥐 사냥을 하지 않는 고양이는 집으로 들어와 사람의 일상에 함께한다.
그들의 할 일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일상에서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양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자신이 '집중할 것'과 '무관심'에 대한 분리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모든 사람에 집중하며 살지 않아도 만족하는 법을 그들은 알고 있다.
 
<소년과 고양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68년, 오르세 미술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농경시대의 쌀을 지켜주며 신성하게 여기던 그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와 화가들은 외로움과 고립을 적당히 즐기는 듯한,
오히려 외로움이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로부터 위로를 받아온 것 같다.

때로는 고양이에게 자신을 반영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고양이에게 적용하면서,
예술가들은 고양이로부터 위로와 영감을 받으면서 작품을 남겨왔다.
 
Henriëtte Ronner-Knip, Kitten's Game plan.
 
Henriëtte Ronner-Knip, Kittens at Play.
 
파울 클레 <신성한 고양이의 산> 1923년
 
파울 클레 <고양이와 새> 1928년, 뉴욕 현대미술관.

"우리를 조금 크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파울 클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했던 파울 클레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사실을 말하면서 내면을 그리고자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느긋함'과 '집중하기'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고양이처럼....
 
<꽃과 고양이> 폴 고갱, 1899년, 글립토테크 미술관.

"고양이는 그냥 가끔 없어집니다.
주위에 있을 때 사랑해주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란 쿠션을 벤 고양이> 프란츠 마크, 1912년, 모리츠부르크 미술관.
 
안락의자 위의 고양이 [Chat sur un fauteuil], 테오필 알렉상드르 스타인렌, 19세기경, 루베 산업 예술 박물관.
 
나비를 노리는 흰색 앙고라 고양이 [Chat angora blanc, guettant un papillon],
장 자크 바슐리에, 18세기경, 랑비네 미술관.
 
흰고양이 [Le Chat blanc], 피에르 보나르, 1894년, 오르세 미술관.

내 목소리를 한 음절 한 음절 세심하게 듣고 소화시키는 너를 지켜보면서 나는 조금 슬퍼진다.
네가 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한 글자도 떨어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개어 넣는 너의 속도를 무시한 채 나는 내 이야기를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나를 그렇게 유심히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또박또박 읽어내지 않아도 좋은,
시시한 이야기라는 말을 먼저 해줄 걸 그랬다.
내 안의 서러움과 불안함과 초조함은 너에게 충고할 여유도 주지 않고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체념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차피 너는 이미 나를 이해하고 있을 테다.
-박은지의 '어느 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중에서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파울라 모더존-베커, 1904년, 루드비히 로젤리우스 박물관.
 
<고양이와 함께 있는 여인> 한스 발둥, 1529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고양이와 함께 있는 누드> 프란츠 마크, 1910년,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고양이 가족> 얀 하빅스 스텐, 17세기 후반경, 부다페스트 미술관.

 

세명의 어린이와 고양이 [Trois enfants et un chat], 리차드 파크스 보닝턴, 19세기경, 마냉 미술관.
 
고양이가 있는 성 가족 [La Sainte Famille au chat], 르 바로슈, 16세기경, 콩데 미술관.
 
난롯가의 고양이들 [Chats au coin du feu], 19세기경, 콩피에뉴 성.
 
죽은 꿩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고양이 [Chat prêt à se jeter sur un faisan mort], 얀 페이트, 17세기경, 보나 미술관.

 

고양이가 있는 정물 [Nature morte avec un chat], 파올로 포르포라, 17세기경, 페슈 미술관.
 
생쥐를 노리고 있는 고양이 [Chat guettant une souris], 필립스 안헬, 17세기경, 렌 미술관.
 
고양이와 방울새들 [Le Chat et les chardonnerets], 독일화파, 19세기경, 루앙 미술관.
 
고양이, 변상벽(卞相壁) 作品


*고양이 그림을 잘 그린 화가, 변상벽(卞相壁)

변상벽(卞相壁)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다.
숙종 때 화원(畵員) 거쳐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63년과 1773년 두 차례에 걸쳐 영조 어진(英祖御眞) 제작에 참여하였다.
 
국정추묘 (菊庭秋猫, 국화 핀 뜰안의 가을 고양이)

영모(翎毛), 동물, 인물초상을 잘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卞古羊 또는 卞怪羊)’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도 빈틈이 없는 묘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동물화의 뛰어난 사실성은 결과적으로 그의 인물초상화 능력과 관계가 있었다.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으로서 그가 특기를 발휘한 분야는 초상화였던 것이다.
 
묘작도 [猫雀圖], 변상벽, 서울대학교박물관.

'진휘속고(震彙續攷)'에 의하면,
화재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이였다.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國手)라고 일컬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
라고 하였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변상벽(卞相璧)이 윤급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화재화정(和齋畵幀)”의 기록에 근거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급초상(尹汲 肖像)>이 변상벽의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다.
 
묘작도 [猫雀圖], 변상벽, 18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영모화로는 「묘작도(猫雀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들 수 있다.
희롱하는 한 쌍의 고양이와 다급해서 지저귀는 참새떼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실감나게 묘사했다.
아울러 새순이 돋은 고목의 연초록 나뭇잎을 먹을 듬뿍 찍은 윤필(潤筆)로 멋지게 그려내어 동물들의 섬세한 묘사와는 대조적인 문기(文氣)를 곁들였다.

이밖에 대표작으로는 「계자도(鷄子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웅장추(雌雄將雛)」(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자웅장추, 변상벽, 18세기 후기경, 간송미술관,
 
계자도 [鷄子圖], 변상벽, 18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변상벽(卞相壁) 作品

 

견도 犬圖

 

변상벽(卞相壁)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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