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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마을에서 만난 사람들─하푸탈레 (봄내 403호, 2024년 08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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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마을에서 만난 사람들─하푸탈레 (봄내 403호, 2024년 08월)

Guanah·Hugo 2024. 8. 1. 18:03

 

해발고도 1,400미터 구름마을. 동화 같은 이곳에는 항상 웃으며 인사 건네는 사람들이 산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하푸탈레까지는 기차로 9시간.

늙은 열차가 콜록대며 힘겹게 구겨진 산길을 오르면 문도 창문도 활짝 열고 달리는 기차에 사람들은 매달려 간다.

영국 식민시절 조성된 차밭이 드넓게 펼쳐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고 불리는 구간이다.

실론티라 불리는 스리랑카 홍차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바로 이곳이 그 산지다. 

하푸탈레에 도착해 ‘페코트레일’이라는 길을 걸었다.

페코트레일은 제주 올레길처럼 조성된 트래킹 루트로 아름다운 차밭, 계곡, 산악 지역을 지나는 22개의 코스가 있다. 

여기선 느리게 걸었다.

조금 걷다 멈춰서는 초록 차밭이 물결치는 풍경을 그저 황홀하게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야 했다.

때로 구름이 지나는 숲길은 요정이 나올 듯 신비로웠다.

희뿌연 안개를 지날 때는 한 치 앞도 안 보일 것 같았는데 막상 들어서면 그런대로 가야 할 길이 보였다.

멀리 차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식민시절 영국이 노동력 확보를 위해 남인도에서 이주시킨 타밀족이라고 들었다. 온종일 찻잎을 따고 이들이 받는 돈은 우리 돈 칠천 원쯤. 잠시 들른 관광객은 감탄하기 바쁜데 누군가의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허리 편 이들이 멀리서 손 흔들며 웃어준다.

 

길은 마을로 이어진다.

언덕 위 작은 집에서 뛰어내려온 아이가 인사한다.

지붕 위에 조르르 앉은 아이들도 우릴 보고 손 흔든다.

이곳에서는 열 걸음마다 어디선가 ‘헬로!’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든 화답할 수 있게 계속 웃으며 길을 걷게 된다. 

‘이달가시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 오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향한다.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눈 마주치면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흡사 사랑받는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굽이진 길을 버스가 트위스트 추며 가는데 하얀 교복에 머리를 정갈하게 딴 학생들이 보인다.

매일 산을 넘어 학교에 오가는 모양.

험한 길을 브레이크 한번 안 밟고 달리던 기사는 버스를 세우고 아이들을 태운다.

요금은 안 받는 것 같다.

이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는 아이들이 크리켓 하는 걸 구경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위뿔라세이나’ 할아버지는 가족과 손주들 그리고 마을 이야기를 해준다.

사람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들은 400년 넘게 외세에 식민 지배를 당했음에도 낯선 이에 대한 환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근처 슈퍼에서 요거트 하나를 사드렸는데 우리가 갈 때까지 안 드신다.

아마 손주 가져다주시려는 것 같다.

숙소 앞에서 한 소년이 손을 내민다.

‘혹시 돈 달라는 거면 조금 실망할 거야.’

혼자 생각 무색하게 펜 있으면 하나 달라한다.

아, 펜이라니.

학용품 하나가 귀하구나.

여기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현지인 집에 초대받기도 했다.

산책하는데 한 아저씨가 집에서 차 한 잔 하라고 한다.

마을 전체가 환대해 주는 느낌에 덥석 초대에 응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응접실에는 소파와 탁자, 찬장에는 찻잔이 가득했다.

주방에는 아궁이가 있다.

단출하지만 깔끔하다.

초대한 이는 ‘무바락’.

오늘이 가장 큰 이슬람 명절이라며 저녁까지 꼭 먹고 가라고 한다.

손님을 대접하는 게 오늘의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아내와 형제자매,

세 자녀까지 만나고 현지 가정식을 먹었다.

흰 밥에 양념 소고기와 줄기 콩 볶음을 먹었는데 스리랑카에서 먹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툭툭(삼륜 택시)을 운전하는 그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정직한 금액을 부른다고 했다.

외국인도 자신도 다 같은 사람이라며,

그저 지금 여기를 즐기면 되는 거라고 짧은 영어로 소신을 말한다.

길 가는 이방인에게 고기를 대접한 그는 새벽 4시부터 일해 하루 구천 원 정도를 번다.

매일 오르내리는 언덕만큼 가파를 그의 일상은, 그러나 행복해 보였다. 

몇 번씩 악수하는 손에 작은 사례를 건네주고 돌아오는 길,

나무에 반짝이는 불빛이 가득해 자세히 보니 반딧불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구를 매단 듯 수많은 형광 불빛이 나무를 날고 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 까만 밤하늘에는 셀 수 없는 별이 빛나고 반딧불은 총총.

구름마을도 내 마음도 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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