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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마음, 매화(12월 27일 탄생화)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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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마음, 매화(12월 27일 탄생화) 이야기

Guanah·Hugo 2023. 12. 27. 11:07

출처 : 모야모 매거진 꼬꼬마정원사

 

이름 : 매화

학명 : Prunus mume

꽃말 : '맑은 마음'

꽃 운세 : 고결한 성품을 지닌 당신은 결코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습니다.

속세의 지난한 일들과는 거리를 두고 문학과 예술을 즐기는 당신의 삶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군요.

하지만 때때로 애먼 일에 말려들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으니,

주위가 어떻든 절조를 지키며 자신을 다스린다면 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12월 27일 탄생화는 매화입니다.

매화는 매화나무에서 열리는 꽃으로,

매화가 지고 난 자리에는 매실이 열립니다.

매화나무는 높이 6m까지 자라는 장미과의 앵두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로써,

식물분류학적으로는 살구나무, 자두나무 등과 아주 가깝습니다.

 

매화는 우리 문화에서 의미가 깊은 꽃입니다.

예로부터 매화를 사군자(四君子)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을 정도였지요.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賣香)"

비록 조선 중기의 대문장가 신흠(申欽)이 지은 한시의 한 구절인데,

우리 조상이 매화를 어째서 높이 평가했는지를 한 문장으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매화를 추위를 이겨내는 기상을 지녔습니다.

매화는 엄동설한인 음력 동짓달부터 몽우리를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눈을 뒤집어쓰기라도 하면 자신의 열기로 녹이고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고 하지요.

설중매는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기상과 절개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옛날, 선비는 매화의 향기에서 모름지기 지녀야 할 몸가짐을 배웠습니다.

매화의 향기는 가늘고 미미하지만 대신 멀리까지 갑니다.

그래서 암향(暗香)이라 부릅니다.

은은하고 정갈한 매화의 향기는 신기하게도 흥분하거나 들뜬상태에서는 잘 맡아지지 않고,

마음이 평온하고 사위가 조용할 때야 온전하게 향내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여 뽐내지 아니하지만,

내면에서 덕이 조금씩 우러나듯 흘러나와 사위에 널리 퍼지는 것은 겸양의 미덕으로서,

매화의 향기와 닮았습니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우리 문화에서 매화는,

근엄한 선비의 모습 뒤에 화사하고 요염한 매력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매화는 마치 속이 비치는 비단과 같이 몽환적인 매력을 발산하는데,

이를 월매(月梅)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월매는 옛날 기생들이 선호하는 예명이기도 했지요.

 

그래서인지 매화를 유달리 좋아했던 선비가 있었으니, 바로 퇴계 이황입니다.

그가 매화를 노래하며 지은 한시가 1백 수가 넘게 전해오고 있으며,

생전에도 매화나무를 분재로 만들어 집안에서도 기를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천 원권 지폐에 매화나무와 퇴계 이황이 나란히 등장할 정도이지요.

그런데 그의 매화 사랑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의 학식과 덕망을 흠모했던 두향(杜香)이라는 관기(官妓)가 있었습니다.

두향은 거문고와 시에 능한 기생이었는데,

재주와 미색이 뛰어났으나 도도한 성격 탓에 마음을 준 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두향이었으나,

퇴계의 2년여의 재임 동안 퇴계의 사람됨을 알게 되자 퇴계에게 반하게 됩니다.

 

두향은 몇 차례나 퇴계에게 넌지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퇴계는 흔들림 없이 한 번도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먼저 보낸 부인 권 씨에 대한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인 권 씨는 친정아버지(권질)와 가문의 몰락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 장애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집안 제사를 지내다가 배 한 알이 굴러 떨어지자,

권 씨 부인이 얼른 주워 치마 속에 감추었다고 합니다.

칠칠치 못한 모습에 집안의 어른들이 호통을 치려던 차에,

이황은 권 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부인은 그냥 먹고 싶었다며 입맛을 다셨다고 합니다.

이황은 해맑게 웃는 부인 권 씨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손수 배를 깎아 주었다고 합니다.

퇴계는 그렇게 부인의 온갖 허물을 덮어주며 아꼈지만,

애석하게도 부인은 출산 중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랬던 퇴계가 단양을 떠나게 되자 두향이 이별의 정표로 매화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가져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퇴계도,

그 나무가 돌아가신 어머님이 애지중지하던 나무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선물을 받습니다.

가족을 잃었던 동병상련 때문일 것입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꾸준히 서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이 이야기를 알고 퇴계 이황이 말년에 지은 시를 읽어보면,

근엄한 모습에 가려진 이황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 이황

 

뜰을 거닐자 달이 사람을 따라오네

매화나무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향은 옷에 가득,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구나

 

매화는 얼음 속에서 꽃을 피우고,

고요한 달빛 속에서 향기를 더하니,

늦게 만나 이어지지 못했던 두 사람의 마음은,

'늦게 핀 매화'와 같이 더 애틋했을 것입니다.

1570년 12월 8일 이황은 세상을 떠났고,

두향은 그를 위해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릅니다.

이황이 두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그이 마지막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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