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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굴러다니는 책 정리하기 006 : 부지런한 사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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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굴러다니는 책 정리하기 006 : 부지런한 사랑

Guanah·Hugo 2023. 3. 22. 06:51

 

 

이슬아 작가, 출판인

저자 이슬아는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린다.

누드모델, 잡지사 기자, 글쓰기 교사 등으로 일했다.

2013년 데뷔 후 연재 노동자가 되었다.

여러 매체에 글과 만화를 기고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늘 어떤 플랫폼으로부터 청탁을 받아야만 독자를 만날 수 있었던 이슬아는 어느 날부터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연재를 시작했다.

2018년 2월 시작한 시리즈의 제목은 《일간 이슬아》.

하루에 한 편씩 이슬아가 쓴 글을 메일로 독자에게 직접 전송하는 셀프 연재 프로젝트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어줄 구독자를 SNS로 모집했다.

한 달 치 구독료인 만 원을 내면 월화수목금요일 동안 매일 그의 수필이 독자의 메일함에 도착한다.

주말에는 연재를 쉰다.

한 달에 스무 편의 글이니 한 편에 오백 원인 셈이다.

학자금 대출 이천오백만 원을 갚아나가기 위해 기획한 이 셀프 연재는 6개월간 절찬리에 진행되었다.

어떠한 플랫폼도 거치지 않고 작가가 독자에게 글을 직거래하는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이슬아는 독립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반년 간 연재를 지속한 뒤 그 글들을 모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같은 해 10월에 독립출판했다.

매일 달리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선다.

 

 

프롤로그_부지런히 쓸 체력,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_05

 

부지런히 쓸 체력,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10대 때 글쓰기 스승들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그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20대가 되었다.

이 사랑은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를 사랑했던 방식과도 비슷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며 그 이상은 없다고 트뤼포는 말했다.

글쓰기 수업의 개근자였던 나도 첫 번째로 스승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두 번째로는 그들을 향해 여러 편의 글을 썼다.

세 번째로는 그들이 섰던 자리에 서보았다.

같은 곳에 서서 다시 떠올렸다.

같은 곳에 서서 다시 떠올렸다.

은 선생님, 곽 선생님, 옥 선생님, 그리고 어딘, 

아름답고 따뜻한 여자들.

내게 문학의 향기를 알려준 사람들.

사랑은 말과 몸을 버무려 완성하는 거라고 말해준 스승들.

 

그들을 기억하며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한 교실에 북적북적 모여 앉을 수 있었던 시절에 수업을 시작해서 코로나 시대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제 아이들과 나는 마스크를 쓰고 만난다.

격변하는 세계이자 나빠지는 세계 속에서 글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날마다 생각한다.

 

수업에서 아이들과 나는 이따금씩 주어를 바꿔가며 글을 썼다.

 

나는

너는 / 엄마는 / 아빠는 / 할머니는 / 할아버지는 / 언니는 / 오빠는 / 형은 / 누나는 / 몸이 아픈 내 친구는 / 영상 속 그들은 / 소는 / 돼지는 / 닭은 / 박쥐는 / 이제는 죽고 없는 그는 / 멀리 있는 당신은 / 어제의 나는 / 네일의 너는 (· · ·)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바빠졌다.

주어를 늘려나갔을 뿐인데,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인데, 그가 있던 자리에 가봤을 뿐인데.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슬프지 않았던 것들이 슬퍼지고 기쁘지 않았던 것이 기뻐졌다.

하루가 두 번씩 흐르는 것 같았다.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글을 쓰고 누우면 평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채로 잠드는 듯했다.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이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여러 편의 글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체력이 붙었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만 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아이들도 나도 글을 쓰며 간다.

모두가 처음 캊이하는 미래로.

 


글방의 시작
나의 어린 스승들에 관하여 _13
믿어지는 문장들 _17
재능과 반복 _23
음식과 글쓰기 _27

형제 글방
오, 형제여 _33
소년의 마음으로 쓰는 소년의 글 _46
탄생과 거짓말 _51

여수 글방
무엇이 야한가 _57
문제 해결의 경험치 _64
주어가 남이 될 때 _69
잡담과 간식 _75
몸의 일기 _79
여수 아이들에게 쓴 편지 _83
글투의 발견 _134
쉬운 감동, 어려운 흔들림 _140

청소년 글방
건전 교사 _147
남중생과 나 _155
재능과 운명 _159
그날 입은 옷 _167
그리움과 디테일 _171
긴장과 눈물 _175

나의 유년과 어딘 글방
으악 너무너무 무섭다 _183
일기 검사 _190
해명하지 않을 용기 _203
먼저 울거나 웃지 않고 말하기 _207

어른여자 글방
언니들의 문장 _213

코로나 시대의 글방
코로나 시대의 글쓰기 교사 _227
어린이의 허송세월 _231
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_261
입체적인 타인들 _265
남의 고달픔을 쓰는 연습 _269
접속사 없이 말하는 사랑 _275

에필로그_나의 오랜 스승으로부터 _280

 

나의 오랜 스승으로부터

 

어딘은 나를 가장 오랜 가르친 스승이다.

1967년에 태어난 그는 여태껏 아주 많은 글을 쓰고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아주 많은 제자를 사랑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어딘만큼 부지런히 사랑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이 책을 탈고할 무렵 어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집을 정리하다가 1995년에 썼던 노트를 발견했다며 그 노트에 적힌 시 한 편을 보내주었다.

이 시를 쓴 해에 어딘은 스물아홉 살이었다.

지금의 나처럼.

젊은 글쓰기 교사였던 어딘이 당시의 제자를 향해 쓴 시는 다음과 같다.

 

운명적 이끌림을 아는 내 아이

- 재윤에게

 

학원 시간에 늦은 열 살짜리 꼬마에게

반성문을 요구했을 때

코를 훌쩍이며 써 내려간

내 사랑하는 아이의 반성문

어여쁜 반성문

 

나는 축구공만 보면 끌려간다

축구공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눈을 감고 걸어도

축구공이 나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끌려간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끌려가겠다

 

아나,

삶의 매혹을 아는 너의 눈빛이

얼마나 투명한지

나는 죄를 짓는 것만 같다

 

꿀려가렴 아이야

운명처럼 부르는 그 무엇이 있으면

귀를 쫑긋 열고

세상의 끝이라도 쫓아가렴

가늘고 유연한 다리로 공을 몰 듯

지구의 바깥이라도 쫓아가렴

그 모오든 삶은

운명적 이끌림인 것을

이미 직감한 내 아이야

 

나는 어딘의 애틋하고 관활한 시선을 따라간다.

가느다란 다리로 공과 함께 지구 바깥까지 달려가는 재윤이를 상상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 몸과 마음 곳곳에도 어딘의 시선이 닿았던 것이 기억 나서다.

스승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어느새 스승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어딘은 글쓰기를 가르쳐보라고 처음으로 권유한 사람이다.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나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어딘만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교사의 자리에 서서 나는 아이들을 매혹한 것들을 탐구했다.무언가에게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아이와 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제 어딘은 쉰네 살이고, 앞의 시를 쓴 지 25년이 흘렀다.

내 앞에도 그만큼의 세월이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그 세월과 함께 품이 넓은 교사가 되고 싶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작가가 되고 싶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인용을 허락해 준 덕분에 만들어졌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친구다.

지구라는 한 달걀 안에서 안부를 물으며 살아갈 것이다.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우정을 쌓아준 아이들, 수업료와 간식을 챙겨주신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들로부터 사랑과 우정과 교육에 관해 계속해서 배우고 싶다.

 

출판사서평

최초의 제자는 나에게 글쓰기 교사의 숙명을 알려주었다.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 줘.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 줘.”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_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에서

나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은 누군가를 훨씬 앞선 곳에서 혹은 훨씬 높은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듯했다.

재능이 있다면 더 열심히 쓸 참이었다.

만약 없다면 글쓰기 말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해볼까 싶었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낀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_‘재능과 반복’ 중에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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