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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남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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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남천

Guanah·Hugo 2023. 10. 12. 19:12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오늘은 오규원(1941~2007) 시인의 시 한 편을 먼저 읽겠습니다.
199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에 실린 시입니다.
 
「물물物物과 나」.


7월 31일이 가고 다음날인
7월 32일이 왔다
7월 32일이 와서는 가지 않고
족두리꽃이 피고
그 다음날인 33일이 오고
와서는 가지 않고
두릅나무에 꽃이 피고
34일, 35일이 이어서 왔지만
사람의 집에서는
머물 곳이 없었다
나는 7월 32일을 자귀나무 속에 묻었다
그 다음과 다음날을 등나무 밑에
배롱나무 꽃 속에
남천에
쪽박새 울음 속에 묻었다

― 「물물物物과 나」 전문


오규원 시인은 산문 「날이미지 시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이우환 식으로 말해, 있는 그대로 읽어라.
어떤 느낌을 주거나 사유케 하는 게 있다면 그곳의 존재가 참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현상이 참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의 세계다.”

그러니 위의 시를 읽고,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은 선가(禪家)에서 전해진 말인데,
『백장록(百丈錄)』[중국 선종의 9대 조사인 백장(百丈懷海, 749~814) 선사의 어록]을 송나라 때 원오(圓悟克勤, 1063~1135) 선사가 해설한 『백장록 강설』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도(道)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라는 뜻이지요.
이 말을 오규원 시인이 인용하여 자신의 ‘날이미지 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규원 시인은 이어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미지 시를 읽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존재의 편에 서라. 그리고 시 속의 현상을 몽상하라.
날이미지 시 세계는 돈오의 세계가 아니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듯한가요?
글자 그대로 읽고 시인이 말한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실은 오늘 하려는 것은 ‘남천’ 꽃보다 잎이 더 예쁜 ‘남천(南天)’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남천을 얘기하면서 김춘수(1922~2004) 시인의 시 「南天(남천)」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김춘수 시인은 과연 남천을 어떻게 노래하고 있을까요?
아참,
앞서 오규원 시인이 ‘날이미지 시’를 얘기했다면,
김춘수 시인은 ‘무의미 시’를 강조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지요.


南天(남천)과 남천 사이
여름이 와서
붕어가 알을 깐다.
남천은 막 지고
내년 봄까지
눈이 아마 두 번은 내릴 거야 내릴 거야.

― 김춘수, 「南天(남천)」 전문


김춘수 시인이 1970년대에 이 시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남천이라는 나무가 흔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한겨레신문 2021년 1월 8일자에 보면 최재봉 기자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시가 발표된 뒤 어느 중견 평론가가 작품 제목 ‘남천’은 사람이 죽은 뒤 가는,
도솔천 아래 명부를 뜻한다고 신문 월평에 썼고 그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시는 김춘수의 무의미 시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기철 시인이 어느 날 김춘수를 찾아가 그의 집 거실에서 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남천’은 김춘수의 집 마당귀에 심겨진 관목이라는 것.
남천을 그렇게 식물 이름으로 이해하고 보면,
이 시는 전혀 난해하지 않게 읽힌다.

어떤가요?
오규원 시인의 말처럼 시 속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언가를 자꾸 찾으려 하면,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위의 예가 증명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남천이라는 나무를 도솔천으로 해석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
그게 또한 평론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쯤해서 남천에 관한 사전 풀이를 보고 가야겠지요.
두산백과에서는 남천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쌍떡잎식물 이판화과 미나리아재비목 매자나무과의 상록관목.
남천을 남천촉(南天燭)․
남천죽(南天竹)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에 심으며 북부지방에서는 분재(盆栽)로 기르고 있다.
높이 3m 정도 자란다. 밑에서 여러 대가 자라지만,
가지는 치지 않고 목질(木質)은 황색이다.
잎은 딱딱하고 톱니가 없으며 3회 깃꼴겹잎이다.
또한 엽축(葉軸)에 마디가 있고 길이 30∼50cm이다.
작은잎은 대가 없고 타원형의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다.
6∼7월에 흰색의 양성화가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10월에 빨갛게 익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원예품종에는 열매의 빛깔이 흰색인 것, 연한 자줏빛인 것이 있다.
성숙한 열매를 남천실(南天實)이라 하며,
해수, 천식, 백일해, 간기능 장애 등에 약제로 시용한다.”

남천이 약재로 쓰이지만 그렇다는 얘기는 독성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대부분의 약재는 독성분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독을 잘 다스리면 약이 되고,
약을 잘못 쓰면 독이 되는 법이지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남천에는 중추신경의 마비와 경련, 심장마비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런 독성을 잘 다스려서 약제로 사용하는 것이겠지요.

여름에 흰색의 꽃이 원추형으로 대롱대롱 피고,
가을에는 “붕어알”(김춘수) 같은 붉은 열매가 알알이 열리는 남천을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데에는,
무엇보다 그 나뭇잎 때문일 겁니다.
초가을부터 붉어지는 나뭇잎들이 가는 가지에 매달려,
한겨울에도 지지 않고 붉디붉어서 살랑살랑 하늘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요.
그래서 저는 남천을 일러 “꽃보다 예쁜 나뭇잎을 지닌 나무”라고 합니다.
게다가 꽃말이 “전화위복”이라니,
이 또한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졸작입니다만, 제(박제영)가 쓴 「남천」을 소개합니다.


갈바람이 하 살랑대니
꽃구경 가잔 당신

형형한 꽃 색색의 꽃 놓아두고
남천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네

붉어지면서 흔들리는
꽃도 아니면서 꽃보다 환한

흔들리면서 붉어지는
꽃도 아니면서 꽃보다 꽃 같은

오십 고개를 훌쩍 넘긴 당신이
스무 살 색시처럼 웃고 있네

웃음소리 하 간지러워라
간지럼 태우는 당신

― 박제영, 「남천」 전문


저도 그렇지만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 ‘남천’입니다.
집에서 기르기 쉬운 식물인 까닭도 있지만,
아내는 화려한 꽃보다 수수한 나뭇잎을 더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아내와 봄이면 화원에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집에 가져오는 식물들은 대부분 꽃보다 잎이 예쁜 식물들,
꽃이 없어도 잎이 예쁜 식물인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우리 부부에게는 남천입니다.

그러니까 저 시는 어느 가을 아내와 화원에 꽃을 사러 갔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입니다.
함께 화원 안의 꽃들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화장실에 갔나 싶었는데,
글쎄 화원 바깥 붉은 남천 화분 앞에 앉아서 순하디순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참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바람에 살랑대는 붉은 남천 잎과 아내의 미소가 겹쳐서는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간지러운 시를 한 편 쓴 것이지요.
여기까지 쓰고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남천을 좋아하는 건 대나무 가지처럼 가는 그 줄기 때문이랍니다.
가는 줄기에 떨어질 듯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의 떨림을 좋아하는 거랍니다.

여하튼,
이 시의 화자와 시에 등장하는 ‘당신’은 저와 저의 아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제가 염두에 둔 것은 오십 고개를 넘기고 육십 고개를 바라보고 있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겁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나누며 세상 풍파 함께 그만큼 겪었으면,
이제 너무 심각하지 말고 조금은 간지럽게 우정 나무며 사는 것도 좋지 않겠나,
뭐 그런 마음을 담았다고나 할까요.

9월이 지나 곧 시월이 올 테지요.
아니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시월일 겁니다.
시월은 10월이 아니라 시월이지요.
시월은 숫자로 담아낼 수 없는 달이니까요.
시월은 詩月이고 時越,
그러니까 만남도 이별도 詩的인 시절이고 시간을 넘어선,
시간을 넘어서야 하는 계절이니까요.
그런 시월에 만나는 남천은 얼마나 붉고 얼마나 시릴까요.
그러니 시월이 가기 전에 꼭 단풍 든 남천 보러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혼자여도 좋고 둘이어도 좋습니다.
시월은 또 그런 계절이니까요.

- 월간 《춤》,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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