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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항로를 항해하다(글 : 마크 시노트, 사진 : 레난 오즈터크)

Guanah·Hugo 2023. 8. 10. 21:31

출처 :  [악명 높은 항로를 항해하다]-내셔널지오그래픽매거진 (nationalgeographic.co.kr)

 

[얼음 속에 묻힌 수수께끼]

1845년에 영국 출신의 탐험가 존 프랭클린 경과 그가 이끄는 대원 128명은 북서 항로를 개척하러 나섰다.

이 전설적인 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유럽과 아시아 간의 교역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원정에 나선 프랭클린 탐험대 대원 중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1903-1906년에 노르웨이의 선박 예아호는 최초로 북서 항로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 본 협회의 원정대는 프랭클린 탐험대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그들의 원정이 실패한 이유를 규명해 줄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항해에 나섰다.

 

일등 항해사 벤 자트먼(오른쪽)과 선원 루디 레펠트-엘린저가 거센 풍랑 속에서 세찬 물보라를 맞으며 폴라선호의 주돛을 들어 올리고 있다.

선원들은 미국 메인주에서 알래스카주까지 항해하는 동안 물에 잠긴 시추선을 비켜 가고 흰돌고래와 충돌하며 베링해에서 태풍 므르복의 여파를 견뎌내는 등 수많은 난관에 직면했다.

 

사진작가 레난 오즈터크가 폴라선호 돛대 위에서 캐나다 패슬리만을 조망하고 있다.

그와 기자 마크 시노트는 배를 타고 북서 항로 항해를 시도하던 중 미로처럼 얽힌 부빙에 배가 갇히고 말았다.

불행한 최후를 맞은 프랭클린 탐험대와 흡사하게 이들 역시 겨울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극 지역에 고립될 위험에 처했다.

 

폴라선호는 프랭클린 탐험대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 그린란드 서해안을 끼고 항해했다.

그곳에서는 빙하 조각들이 바다로 서서히 떠내려가 거대한 빙산이 된다.

“때때로 얼어붙은 이 빙산들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면서 파도가 높게 일고 또한 빙산이 새롭게 무게 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공중으로 급격히 솟구치며 회전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시노트는 말한다.

 

19세기에 제작된 이 그림은 프랭클린 탐험대의 배 두 척 중 하나가 마주했을 운명을 상상해 표현했다.

1859년에 캐나다 킹윌리엄섬에서 발견된 한 쪽지에는 존 프랭클린 선장의 죽음과 교역소까지 약 1000km를 걷고자 한 선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돼 있다.

PICTORIAL PRESS LTD/ALAMY STOCK PHOTO

 

토사가 섞인 담수가 바다로 유출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인도인 캐나다 데번섬 주변으로 여름철의 둥근 테가 형성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97년부터 연구를 위해 이 섬을 화성 유사체로 활용하고 있다.

1845-1846년에 프랭클린 탐험대는 북서 항로에 더욱 깊숙이 진입하기에 앞서 이 섬 인근의 소도 비치섬(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섬)에서 야영을 하며 첫 번째 겨울을 보냈다.

 

건식 잠수복을 착용한 레난 오즈터크가 아이스 스크루를 박고 폴라선호를 묶어놓을 지점을 찾기 위해 패슬리만의 거대한 부빙을 향해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름철 기온으로 인해 얼음이 물러지면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질퍽해졌다고 오즈터크는 말한다.

RUDY LEHFELDT-EHLINGER

 

시노트의 아내 햄프턴 시노트(왼쪽)도 원정에 함께했다. 미국 해안 경비대에서 선박 조종 면허를 취득한 그녀는 일부 항해 구간에서 폴라선호 선원들을 도왔다.

“북극 지방을 항해하는 것은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는 일입니다.

부빙 사이를 조심해서 이동하고 언제 떨어져 나오거나 뒤집힐지 모르는 빙산 주변으로 배를 몰아야 하니까요.

항해 내내 이런 상황들을 피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며 생활하죠.”

그녀는 말한다.

 

북극곰을 쫓아내기 위해 산탄총으로 무장한 시노트가 1845-1846년 겨울에 비치섬에서 사망한 프랭클린 탐험대 소속 대원 세 명의 무덤을 방문하고 있다.

프랭클린을 찾아 나선 탐험가들은 이 무덤들과 커다란 돌무더기를 발견했지만 선박의 항로를 알려주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

1980년대에 법의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 연구 팀은 시신 세 구를 발굴해 그 선원들이 결핵과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정을 앞둔 킹윌리엄섬에 여름의 태양이 여전히 지평선 위에 머물러 있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호수와 늪지, 자갈밭으로 이뤄진 이 광활한 평원 어딘가에 존 프랭클린 선장이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어쩌면 항해 일지와 서신, 원정에 관한 다른 자료들도 함께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톰 그로스(맨 오른쪽)와 매슈 어빙이 프랭클린의 무덤을 찾아 킹윌리엄섬에서 열흘 동안 800km를 이동하던 중에 전 지형용 차량을 수리하고 있다.

이들은 선박의 증기 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품(다음 사진)을 포함해 유물 몇 점을 발견했다.

“이 단서들을 찾았을 때 나는 우리가 프랭클린을 찾는 데 매우 근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노트는 말한다.

 

톰 그로스와 매슈 어빙은 프랭클린의 무덤을 찾아 킹윌리엄섬을 돌아다니던 중 선박의 증기 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품을 포함해 유물 몇 점을 발견했다.

 

폭풍우를 피해 패슬리만으로 대피한 폴라선호 선원들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자신들의 배가 극지 빙관에서 밀려 내려온 총빙에 둘러싸인 사실을 확인했다.

“부빙이 선체에 균열을 내거나 배가 육지로 떠밀려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 전체가 얼어붙어 프랭클린 탐험대처럼 꼼짝없이 갇히지는 않을까 우려됐죠.”

시노트는 말한다.

 

갑판 아래에서 오즈터크가 번을 서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폴라선호 선원들은 얼음과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두 시간마다 교대 근무를 했다.

“수면 부족이 일상이 됐습니다. 게다가 중압감이 엄청났죠.” 오즈터크는 말한다.

항해가 중반쯤 접어들어서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마주한 난관에 어둠까지 더해졌다.

 

프랭클린 탐험대의 대원들 중 일부는 1845년에 영국을 떠나기 전 은판 사진을 찍었다.

그들 중 다수가 위험한 탐험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전문가들이었다.

부대장 프랜시스 로든 크로지어(윗줄 맨 왼쪽)는 앞선 북극 항해에서 낙오됐다가 생존한 경험이 있었다.

프랭클린이 사망한 후 그가 지휘권을 넘겨받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맨 윗줄 왼쪽부터: 프랜시스 로든 크로지어, 제임스 리드, 제임스 페어홈, 에드워드 카우치 (가운데 줄) 제임스 피츠제임스, 찰스 해밀턴 오스머, 헨리 토머스 던다스 르 베스콘테, 찰스 데 뵈 (맨 아랫줄) 그레이엄 고어, 헨리 포스터 콜린스, 해리 D.S. 굿서, 스티븐 스탠리

PHOTOS: RICHARD BEARD,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CROZIER); RICHARD BEARD, BRITISH NAVAL NORTHWEST PASSAGE EXPEDITION, 1845-48, SCOTT POLAR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CAMBRIDGE (ALL OTHERS)

 

1845년, 에러버스호와 테러호를 몰고 위험천만한 북서 항로를 찾아 항해에 나선 존 프랭클린 선장의 모습이다.

PICTORIAL PRESS LTD/ALAMY STOCK PHOTO

 

시노트가 폴라선호의 선미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배핀섬 해안을 훑어보고 있다.

폴라선호 선원들은 110일 동안 약 1만 900km를 항해하며 범선이 바다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어려운 상황을 견뎌냈다.

“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고 북극 지역이 따뜻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북서 항로를 항해하는 것은 여전히 만만찮은 모험입니다.

이를 해낸 우리는 운이 좋았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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