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 觀我 Story

[소통의 월요시 편지_890호] 지슬 / 강영은 본문

관아觀我Guanah Story

[소통의 월요시 편지_890호] 지슬 / 강영은

Guanah·Hugo 2023. 6. 20. 07:03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지슬  /  강영은



나는 드디어
말 상대를 고안해냈다

거기 누구 없소? 소리칠 때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밖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내 귀의 바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가 섬일 때
날마다 지친 갈매기들이 섬에 집중할 때

갈참나무 잎사귀처럼 침몰하는 귀가
저절로 닿는 심연, 그 아득한 깊이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

그것이 설령
내 몸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것일지라도
놀란 흙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을
나는 지슬이라 불렀다

그럴 때 나는
붙타오르는 산이고 쏟아지는 빗줄기고 뒤덮는 바람이고 계곡에 넘쳐흐르는 물

나는 드디어
나의 고독과 대화하는 나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예언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의 방언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마침내
감옥이고 차가운 별이 되고 마는

나의 독백을
대화체로 바꾸어주는 시詩를 가지게 되었다
흙무덤에서 파낸 그것을
나는 지슬이라 불렀다


* 지슬: 감자를 뜻하는 제주어

- 『다층』 2022년 겨울호
- 2023년 제13회 서귀포문학상 당선작




***
지난주 2박3일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제주 사는 강영은 시인께서 제13회 서귀포문학상을 받으셨다는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바쁜 일정이라 만나기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시편지라도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하겠지요.
안 그러면 자칫 강영은 누이께서 서운하다 하실 터.^^

시에서도 밝혔듯이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줏말입니다.
제주 4.3을 그린 영화 <지슬>을 떠올릴 분도 있겠습니다만.
고구마를 한자로 '감저(甘藷)'라고 씁니다.
조선 시대 때 일본을 통해 고구마가 처음 들어왔을 때,
육짓사람들은 일본식 명칭을 따서 '고구마'로 부르고 쓰기는 중국싱 명칭인 '감저(甘藷)'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고구마가 제주에 전해질 때는 중국식 명칭인 감저(甘藷)만 전해진 것이지요.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막상 감자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육짓사람들은 고구마(감저)처럼 생겼으니 감자(감저)라 불렀던 것인데,
문제는 제주도였지요.
이미 감자(고구마)가 있으니 감자라 부를 수는 없었던 게지요.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땅에서 나는 열매'라는 뜻의 지실(地實)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지슬'이 되었다지요.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밖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릴 겁니다.

"내 몸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것일지라도 / 놀란 흙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
"나의 독백을 / 대화체로 바꾸어주는 시詩"
"흙무덤에서 파낸 그것"

시인이 "지슬"을 통해 말하고 싶은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환해질 겁니다.

고독하고 아픈 끝 없고 끝 모를 시의 길을 오랫동안 걸어왔고,
또 여전히 걸어갈,
강영은 시인의 서귀포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면서

사족.
제주 한림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페 오드리>... 제주에 가시거든 꼭 들러보시길요...
바깥의 고즈넉한 풍광과 안쪽의 미니멀한 풍경이 저절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런 공간입니다.



2023. 6. 19.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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