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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nah觀我Story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 덕수궁 소개 (heritage.go.kr)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부터이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조선 말기 정국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개화 이후 물밀듯 들어온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 대한 이권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 창덕궁 소개 (heritage.go.kr) 창덕궁은 1405년 (태종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한 창덕궁은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선조는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의 복구를 선조 40년(1607)에 시작하였으며, 창덕궁은 광해군 2년(1610)에 중건이 마무리되었다. 그 후 창덕궁은 1623년 3월 인조반정으로 인정전을 제외하고 또다시 불에 타는 시련을 겪는다.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으나 크고 작은 화재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특히 1917년 대조전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손실되는 대화재가 일어났다. 이때 창덕궁을 복구하기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을 비롯한 강녕전 동·..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 경복궁 소개 (heritage.go.kr)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 궁궐의 역사 (heritage.go.kr)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그리고, 경희궁(경덕궁) 이다.
출처 : 달도 반한 절경…녹음 덮인 월류봉 - PiCPEN - #블루(Blue) #여행은,쉼표 (chosun.com) 달이 머물다가 갈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月留峰)이 10일 짙은 녹음에 뒤덮였다. 민주지산 기슭인 월류봉(높이 401m)은, 굽이쳐 흐르는 초강천의 시원한 물줄기와 어우러져, 이 산의 여덟 경승지를 일컫는 '한천 8경'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군 관계자는 "월류봉을 비롯한 한천팔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영동군에서도 손꼽히는 관광명소"라며, "이번 여름 휴가 때에는 이곳을 방문해 월류봉의 백미인 저녁 풍경을 보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바란다” 고 전했다. (사진=영동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