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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월요시편지_959호 - 가문비나무 / 장은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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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월요시편지_959호 - 가문비나무 / 장은숙

Guanah·Hugo 2024. 10. 22. 07:02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가문비나무 / 장은숙


붉은 달이 천왕성을 가릴 때
다시 보자 약속하고
나무비녀 깎아 머리에 찔러주고 떠난
사내가 있었다

마애리 나루터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할 적이다

아비의 노름빚에 묶여
그 사내 따라 야반도주 못한 것이
전생에 한이었다

다시 만나면
매일 곳 없는 바람처럼 오일장 떠돌며
그 사내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고
나무비녀 깎아 팔아온 돈으로

흥청망청 사랑이나 하며
한 생을 탕진해도 좋겠네

- 시문동인 5집, 『내가 나에게』(달아실, 2024)



***
지난주 토요일에는 춘천의 시문 동인들이 해마다 김유정역 앞에서 열고 있는 시화전 및 시낭송회,
"시문으로 가는 여행"에 다녀왔습니다.
참석한 김에 시문동인지 『내가 나에게』에 실린 작품 중에서
장은숙 시인의 시 한 편도 낭송했습니다.

- 가문비나무

시를 읽다보니
평생 장똘뱅이로 살았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하고
외할머니한테 들었던 마애나루터와 풍산장터도 생각나기도 해서 맴이 짠하더군요.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되어서 마애나루터를 잘 모르실 겁니다.

"풍산평야 지대를 배후로 자리 잡은 마애나루와 아틈실나루는 주요한 소통 물길이었다.
마애마을 앞 강변에 소나무 숲이 있는 공원에 옛날 마애나루터가 있었다.
이어 마애리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면 마애절벽이 끝나는 곳이 아틈실나루이다.
남후 하아리에서 마애로 넘어가면 십리 정도에 풍산장터가 있었다.
아틈실나루엔 소금배가 쉴 때 주막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
지금은 마애 방향으로 단호교가 있고 하아리 쪽엔 풍남교 다리가 설치돼 있다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다.
나루터가 있는 풍경을 담은 옛 사진은 좀처럼 발견하기가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옛사진 공모전에서 마애리와 망천절벽 쪽 풍경을 담은 다수의 사진이 발굴되었다.
마애리가 고향인 이명석씨가 1960년경 마애나루터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인데 당시의 여러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애마을 뒤편에는 높은 산이 없어 강 건너 산에서 솔가지를 베어 나룻배로 이송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 유경상, 「소금배 오르던 임청각 앞 개목나루엔 무심한 물길만 흐르고」(『기록창고』, 2022. 겨울호)에서

사진. 이명석, <1960년대 마애리 나루터 풍경>

그런데 장은숙 시인은 어떻게 오래전에 사라진 저 마애리 나루터를 알고 있을까요?
시인은 어떻게 저 오래된 우리 할머니의 연애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장똘뱅이였던 외할머니가 생전에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을 함께 소개하지요.^^


전국 방방곡곡 안 댕긴 장이 없니라
바다 건너 제주장 빼곤 다 가봤니라
이 할미 광주리에 안 담아본 게 없니라
글카다 정선장에서 그마 그니를 만난기라

아라리가 뭔 줄 아나
창자가 열두 번 끊어졌다 속에 암 것도 없을 때
그런 담에야 나오는 소리니라
삼십 년 이슬 맞으며 하늘을 이불 삼아봐야 나오는 기라

조용필이 조영남이 그긴 소리도 아니니라
장날 젓쟁이 엿장수 각설이도 그보단 낫니라
그니가 아라리 아라리 한번 뽑으면
지나던 개도 애간장이 녹았니라 하모!

- 졸시, 「아라리」(『안녕, 오타 벵가』, 2021, 달아실) 전문


나루터가 있고, 나룻배가 있고, 주막이 있어서
오일장마다 떠돌던 장돌뱅이들을 건네주고 쉬어가게 해주던 그 시절
숱한 연애담들이 장돌뱅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풍문으로 전해졌던 그 시절
이제는 다 사라지고 말았으니......
소설과 시로 그나마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온 국민이 함께 축하하고 함께 그 기쁨을 만끽해야 마땅한 일이지요. 암요!
그런데도 한껏 기뻐할 수만 없는 것이....
이번 달에 세상에 나온 달아실 신간들이 한강이라는 쓰나미에 묻혔다는 것이지요.
특히 일 년을 공들이고 심혈을 기울였던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가 한강이라는 쓰나미에 묻힌 것은 뼈아픈 일이지요.
그러니 하냥 기뻐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24. 10. 2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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