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박제영의 꽃香詩향] 대추꽃 본문
오늘은 퀴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음은 꽤 유명한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누구일까요?
힌트를 드리면 그는 19세기 영국의 최고 아이돌 시인이었지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나는 절대로 글을 고쳐 쓰지 않는다.”
아실 테지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나는 절대로 글을 고쳐 쓰지 않는다.”
아실 테지요.
맞습니다.
젊음과 반항의 상징이었던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입니다.
그가 스물네 살 때 쓴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가 간행되었을 때,
영국의 문단과 독자들은 그에게 환호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야말로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최고의 인기만큼이나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던 바이런은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이렇게 밤 이슥하도록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마음은 아직 사랑에 불타고,
달빛은 아직 밝게 빛나고 있지만
칼날은 칼집을 닳게 하고
영혼은 가슴을 닳게 하는 것이니
마음도 숨돌리기 위해 멈춤이 있어야 하고
사랑 자체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리
밤은 사랑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
그 밤 너무 빨리 샌다 해도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달빛을 받으며
― 바이런,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전문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라는 말은 바이런이 남겼지만,
이렇게 밤 이슥하도록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마음은 아직 사랑에 불타고,
달빛은 아직 밝게 빛나고 있지만
칼날은 칼집을 닳게 하고
영혼은 가슴을 닳게 하는 것이니
마음도 숨돌리기 위해 멈춤이 있어야 하고
사랑 자체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리
밤은 사랑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
그 밤 너무 빨리 샌다 해도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달빛을 받으며
― 바이런,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전문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라는 말은 바이런이 남겼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우리 문단에도 제법 여럿 있습니다.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
「풀꽃」의 나태주 시인, 「대추 한 알」의 장석주 시인 등등 말입니다.
특히 나태주 시인과 장석주 시인의 경우는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가 같지요.
특히 나태주 시인과 장석주 시인의 경우는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가 같지요.
바로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에 설치된 ‘광화문글판’을 통해 유명해졌다는 점입니다.
2009년에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이 걸렸는데,
이것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요.
마찬가지로 2012년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광화문글판’에 걸렸고,
이후 나태주 시인은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대추꽃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데,
대추꽃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데,
딴청이 좀 길었네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로 본격적인 대추꽃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대추꽃을 본 적 있는지요?
그런데 혹시 대추꽃을 본 적 있는지요?
대추나무 이파리 사이로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적 있는지요?
작아도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핀 줄도 모르는 사이 슬며시 지고 마는 꽃이지만,
대추꽃 그 아기별들이 잠시 반짝이고 나면 그곳에 몽글몽글 대추 열매가 맺힙니다.
장석주 시인이 말한 그 대추가 말이지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 한 알」 전문
대추꽃 그게 얼마나 작으면, 한상호 시인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라고
몰라도 괜찮다고
잎인 듯 줄기인 듯
붉어지면
알 거라고
― 한상호, 「대추꽃」 전문
그런데 말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 한 알」 전문
대추꽃 그게 얼마나 작으면, 한상호 시인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라고
몰라도 괜찮다고
잎인 듯 줄기인 듯
붉어지면
알 거라고
― 한상호, 「대추꽃」 전문
그런데 말입니다.
대추꽃의 색깔을 제가 연둣빛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꽃향시향>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길을 가면서도 이 꽃 저 꽃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봄 여름 가을 나무마다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이 나무 저 나무 이파리 사이 사이로 핀 꽃들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래서 대추꽃도 어느 해부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인데,
아직도 그 꽃의 색이 연둣빛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거든요.
혹시 박정만(1946~1988) 시인을 아시는지요?
제가 참 좋아했던 시인인데,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에 휘말려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되었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종시(終詩)」)라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긴 채 1988년 끝내 세상을 떠나셨지요.
박정만 시인의 시 중에 「슬픈 일만 나에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이여,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정처(定處)를 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러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 것인가.
오기로는 살지 말자.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 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신설(新雪)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로 산천(山川)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대국(大國)도 보았다.
빌어먹을, 꿈은 아직 살아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역(西域)에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빛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 정작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 박정만, 「슬픈 일만 나에게」 전문
박정만 시인의 삶에서 무엇이 저리 지독한 애증의 편린을 만들어냈을까요?
사랑이여,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정처(定處)를 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러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 것인가.
오기로는 살지 말자.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 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신설(新雪)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로 산천(山川)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대국(大國)도 보았다.
빌어먹을, 꿈은 아직 살아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역(西域)에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빛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 정작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 박정만, 「슬픈 일만 나에게」 전문
박정만 시인의 삶에서 무엇이 저리 지독한 애증의 편린을 만들어냈을까요?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지독하게 아픈 사랑이 저려옵니다.
그나저나 지금은 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1연에 보면 박정만 시인은 “하얀 대추꽃”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박정만 시인이 본 대추꽃은 흰색이었던 겁니다.
이번에는 김수우 시인의 「대추꽃」이라는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늙은 대추나무
통통통 붉은 대추 줍는 손녀들 발자국마다 빛방울이 튄다
할아버지는 흰 대추꽃을 닮았다
어느 결에 피었던가 소문도 없이 꽃자리들, 영글었다
사막 아이들도 대추야자를 물고 놀았다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늙은 대추나무
통통통 붉은 대추 줍는 손녀들 발자국마다 빛방울이 튄다
할아버지는 흰 대추꽃을 닮았다
어느 결에 피었던가 소문도 없이 꽃자리들, 영글었다
사막 아이들도 대추야자를 물고 놀았다
팔레스타인, 사하라, 그곳 할아버지도 굽이굽이 대추나무를 심었다
메마른 황야에서 대추를 딸 손녀들을 믿었다
심는 것은 믿는 것이다
죽은 뒤에 마주 보는 충실한 약속
대추꽃은 신을 닮았다
보이지 않는 꽃자리들, 어느 결에 지면서 사람을 믿고 있었나
― 김수우, 「대추꽃」 부분
김수우 시인 또한 “흰 대추꽃”이라며 대추꽃이 흰색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요.
대추꽃은 신을 닮았다
보이지 않는 꽃자리들, 어느 결에 지면서 사람을 믿고 있었나
― 김수우, 「대추꽃」 부분
김수우 시인 또한 “흰 대추꽃”이라며 대추꽃이 흰색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대추꽃을 연둣빛이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흰색이라고 하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초록에 노랑이 물들면 연둣빛이지요?
그렇다면 초록에 흰색이 물들면 어떨까요?
제가 본 대추꽃은 연둣빛이긴 했지만,
흰색이 물든 연둣빛이 아니었을까?
박정만 시인과 김수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그나저나 늙은 대추나무를 본 적 있는지요?
그나저나 늙은 대추나무를 본 적 있는지요?
흰색인지 연둣빛인지 모를 대추꽃이 핀 구불구불한 대추나무를 본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에 잠기게 될까요?
오늘은 늙은 대추나무에게서 늙은 할머니를 보고 있는 서정주 시인의 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라는 문구로 유명하지요,
「자화상」으로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자화상」 부분)
- 월간 《춤》, 2024년 8월호
- 월간 《춤》, 202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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