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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이자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Orpheus)

Guanah·Hugo 2024. 9. 28. 06:17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음유시인이자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Orpheus)


오늘 포스팅은 그리스 신화 중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Orpheus)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음악가여서 그가 노래를 부르고 비파를 뜯으면 산천초목과 짐승들이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으며,
동물들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나무와 돌까지도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 실력은 짐작할 만 하죠.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의 죽음은 로맨틱한 신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주제가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산책 도중에 목부(牧夫) 아리스타이우스에게 쫓기다 독사에게 물려 죽자,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가 음악으로 지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루스를 비롯하여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자,
지옥의 신 하네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상으로 나갈 때까지,
절대로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에드워드 포인터, 1862년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기뻐하며 아내를 데리고 지상을 향해 서둘러 가던 중,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유혹에 못 이겨 뒤를 돌아다 보았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를 너무나 그리워한 오르페우스는 그 뒤 모든 여자들의 구애를 계속 거절하다가,
트라키아 여자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 8갈래로 찢겨 헤브루스강에 내던져 지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 장 레스투,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간청하는 오르페우스> 조아키노 세란젤리, 18세기~19세기경, 파리 음악 박물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발견하는 님프들> 1900년
 

오르페우스 [Orpheus], 귀스타브 모로, 1865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는 님페들> 샤를 잘라베르, 1853년, 월터스 미술관, 볼티모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pheus and Eurydice), 프랑스의 화가 푸생의 1650년 작.
 

세바스티안 브랑스 <오르페우스와 동물들> 1595년경,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신화 이야기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혹은 아폴론)과 학예의 여신인 무사이 자매 중 하나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올림포스 산 근처 핌플레이아이지만 자란 곳은 어머니와 다른 무사이 여신들이 사는 파르나소스 산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시와 노래를 배우고,
또 음악의 신 아폴론으로부터 리라 연주를 배워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다.
 

오르페우스 [Orpheus], 로엘란트 사베리(Roelandt Savery), 1628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가 아폴론으로부터 선물 받은 황금 리라를 연주하면 초목도 감동을 받고 사나운 맹수들이 얌전해졌다고 한다.
나중에 아르고호 원정대에 참여해서는 리라 연주로 바다의 폭풍을 잠재우고,
괴조 세이레네스의 유혹하는 노래 소리를 제압하였다.

또 원정대가 목적지인 콜키스에 도착했을 때는,
그가 리라 연주로 아레스의 숲을 지키는 용을 잠재운 덕분에 무사히 황금 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신화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 이야기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phée et Eurydice], 아리 셰퍼, 19세기경, 블루아 성 미술관.

에우리디케의 죽음과 저승 여행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아름다운 물의 님페(혹은 나무의 님페)였다.
에우리디케는 어느 날 트라키아의 초원을 산책하다가,
아폴론과 키레네의 아들 아리스타이오스가 자신을 계속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겁탈하려 한다고 여겨 황급히 도망치다가 그만 뱀에 물려서 죽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의 갑작스런 죽음에 하염없이 슬퍼하다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오르페우스는 애절한 노래와 리라 연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에드먼드 덜락,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935년.

두 사람이 떠나기 전에 저승의 왕 하데스는 한 가지 주의를 주었다.
에우리디케는 이미 망자가 되었던 몸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르페우스의 뒤에서 따라가야 하며,
오르페우스는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아내 에우리디케를 향해 몸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계에서 지상으로의 기나긴 여정이 거의 다 끝나고 저만치서 한 줄기 지상의 빛이 비춰오자,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안개의 정령으로 변하여 다시 하데스의 나라로 사라져버렸다.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뒤따르고자 하였지만 저승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혀버린 뒤였고,
이제는 그의 음악도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르페우스는 가눌 길 없는 절망감 속에서 홀로 지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알렉상드르 세옹 <탄식하는 오르페우스>, 1896년,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박물관.

오르페우스의 죽음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고 난 오르페우스는,
실의에 잠겨 아내의 기억에만 매달릴 뿐 어떤 여인과도 가까이 지내려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종종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트라키아의 여인들인 마이나데스를 초대하여,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과만 어울릴 뿐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오르페우스는 동성애의 창시자로도 언급된다).

트라키아의 여인들은 오르페우스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겨 분노했다.
그러던 중 숲을 거닐던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 의식을 통해 광기에 빠져 있던 트라키아 여인들의 눈에 띄었다.
여인들은 미친 듯이 달려가 오르페우스를 둘러싸고는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죽였다.
 

그레고리오 라자리니,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여신도들>, 1710년경, 베네치아 시립미술관.
 
 

오딜롱 르동 <오르페우스> 1903-10년경, 클리블랜드 미술관

여인들은 오르페우스의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바다로 흘러나간 오르페우스의 시체는 멀리 레스보스 섬에서 머리만 리라와 함께 발견되었다.
레스보스의 주민들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거두어 엄숙히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 레스보스 섬에서는 뛰어난 서정시인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선물한 오르페우스의 황금 리라는 신들에 의해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거문고 자리).
 

<동물들에 둘러싸인 오르페우스> 에기나 섬에서 출토된 로마 시대 조각, 4세기, 아테네 비잔틴 기독교 박물관

종교가 된 오르페우스의 신화

음악의 힘을 빌려 저승까지 내려갔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훗날 사람들에 의해 종교로 발전되었다.
사람들은 오르페우스가 저승에 다녀올 때,
인간이 죽은 뒤 만나게 되는 모든 장애와 함정을 피해 천상에 이르는 비결을 알아내서 가져왔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돌아와 썼다는 시와 문헌들을 토대로 교리와 신비의식을 만들고,
오르페우스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집단을 이루었다.
오르페우스가 썼다는 80여 편의 『오르페우스 찬가』와,
아르고호 원정대의 내용을 오르페우스를 중심으로 바꾼 『아르고나우티카 오르피카』는,
오르페우스교의 경전으로 꼽힌다.

 

알브레히트 뒤러 <오르페우스의 죽음> 1494년, 함부르크미술관.
 

<오르페우스 인물관계도>

오르페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조력자로,
유명한 칼롭스의 아들인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혹은 아폴론)와 무사이 여신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라클레스의 음악 선생이었던 음유시인 리노스와 쌍둥이 형제라고도 한다.
오르페우스는 님페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였지만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The Death of Orpheus, detail from a silver kantharos, 420-410 BC, part of the Vassil Bojkov collection, Sofia, Bulgaria.

 

Orpheus (left, with lyre) among the Thracians, from an Attic red-figure bell-krater (c. 440 BC)

 

Orpheus Charming The Animals by Franz Christoph Janneck
 

<지하 세계의 오르페우스> Jacquesson de la Chevreuse, 1863

 

<오르페우스의 죽음> 귀스타브 모로, 19세기경,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Death of Orpheus by Émile Lévy (1866)


*사랑과 소유욕

산천초목과 저승 세계까지 감동시키는 음악의 힘,
죽은 아내를 쫓아 사지(死地)를 찾는 열애,
그리고 이러한 천재성과 변치 않는 사랑이 광란의 무리들에 의해 무참히 찢겨지는 아픔 등이 어우러지는 오르페우스의 비장한 이야기는 뭇 시인과 예술가의 혼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독일의 시인 릴케(R. M. Rilke)는 노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광란의 무녀들에게 찢겨지면서도 기어이 살아남는 천재의 예술혼을 찬양한다.

“그네들이 제 아무리 엉겨 붙고 미쳐 날뛰어도
그대의 머리와 리라를 부셔버릴 무녀 어디 있으랴
그대 가슴을 향해 던져진 날카로운 돌멩이들도
그대 몸에 닿으면 모두가 부드러워지고 귀가 열리노라

복수심에 불붙어 그네들 기어이 그대를 찢어버렸지만
그대의 울림은 사자들과 바위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네
나무들과 새들 안에서도
거기서 그대는 지금껏 노래하고 있다네”

 

<지하 세계에서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는 오르페우스> Jean-Baptiste-Camille Corot, 1861

사랑의 기쁨이 큰 만큼 상실의 아픔도 크다.
특히 사랑의 절정에서 닥쳐오는 급작스러운 상실은 비극의 극치를 이룬다.
연인의 배신에 치를 떨기도 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아픔은 죽음으로 인한 사랑의 상실일 것이다.

사랑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이 세상은 빛을 잃어버린다.
사랑과 함께 있었기에 의미가 있었던 시간과 공간들은 갑자기 정지되고 텅 비어버린다.
다채롭게 반짝이던 주변의 색채들이 불현듯 암울한 회색빛으로 변해버린다.

음악과 새소리는 소음이 되고, 책은 휴지조각으로 바뀐다.
삶은 죽음이 된다.
죽음에 대한 동경심이 싹트고 커간다.
그래서 죽음을 따라가 사랑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실의 아픔을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장 델빌, <오르페우스>, 1893년, 벨기에 왕립미술관

감성이 풍부한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오르페우스에게 연민과 동감을 품고 있는데 반하여,
냉철한 철학자 플라톤은 고개를 저으며 이의를 제기한다.
오르페우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연』에서, 죽음을 이긴 위대한 예술가 오르페우스는 “겁쟁이 악사”로 평가 절하된다.
이유는, 그가 참된 사랑을 위한 필수 조건인 자기를 버리는 희생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아드메토스(Admetos) 왕을 대신해 죽음을 택한 왕비 알케스티스(Alkestis)를 참사랑의 표본으로 대비시킨다.
 

<알케스티스를 아드메토스 왕에게 돌려주는 헤라클레스> Johann Heinrich Tischbein, 1780년경.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드메토스는,
그를 위해 대신 죽어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신탁을 접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다.

평소 입이 닳도록 충성을 맹세했던 신하도,
절친한 친구들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부모마저도 고개를 돌린다.
그때 알케스티스가 나서 죽음을 자청한다.
그런데 영웅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그녀의 방문 앞을 지키다가 저승사자를 제압하고 그녀를 구원해 준다.

이에 비하면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는 고사하고 명줄을 움켜잡은 채,
저승으로 가려고 잔꾀를 부린 겁쟁이요 욕심쟁이일 따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목숨도 구하고 사랑도 얻는 알케스티스에 비하여,
저승에서 아내의 그림자만 보고 돌아온 실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르크 샤갈, <오르페우스 신화>, 1977년, 개인 소장.

사랑의 강렬한 에너지는 메마른 영혼에 불꽃을 당기고 창조의 샘물을 솟구치게 한다.
사랑에 빠지면 무미건조하고 무색무취하던 세상이 생명과 환희의 빛깔과 향기로 넘쳐흐르게 된다.
모두가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다.

사랑의 강렬한 에너지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마음의 눈을 멀게도 한다.
사랑이 옆길로 빠져 소유욕과 집착으로 흐르면 자신과 연인 모두를 파멸로 몰아간다.
질투심의 포로가 되어 벌이는 추잡하고 치졸한 복수극과 치정극은,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치를 떨게 하고 눈을 감게 한다.
사랑의 상실을 극복하거나 승화시키지 못하여 지나치게 방황하거나 죽음을 택하는 것,
역시 소유욕을 넘어서지 못한 저급한 사랑일 것이다.

상실의 상처와 아픔을 염려하여 사랑을 기피하거나 사랑을 하되 깊게 빠지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는 청춘이 있다면,
그 또한 비겁하고 가련한 인생이리라.
젊은 시절 사랑의 강렬한 에너지에 흠뻑 취해 보자.
그리하여 넘치는 에너지로 평생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자.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윤일권 · 김원익 | 알렙

 

Orpheus and Eurydice

 

Orpheus and Eurydice by Peter Paul Rubens

 

오르페우스와 에우디리케 [Orphée et Eurydice], 마르탱 드롤랭(Martin Drölling), 1820년, 38.3 x 46.5 cm, 마냉 미술관.

 

알렉산데르 리토프셴코, <영혼들을 싣고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 18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Orpheus And Eurydice Painting by Gaetano Gandolfi
 

<오르페우스의 죽음> 안토니오 베가, 20세기, 오르세 미술관.

 

Eurydice and Orpheus, by Elsie Russell.
 

Orpheus and Eurydice by Emily Balivet.
 
 

Orpheus Charming the Wild Beasts. Antonio Tempesta.
 
 

Giovanni Dall'Orto, Orpheus surrounded by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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