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 觀我 Story

님페, 갈라테이아(Galatea) 이야기 본문

관아觀我Guanah Story

님페, 갈라테이아(Galatea) 이야기

Guanah·Hugo 2024. 9. 4. 07:04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님페, 갈라테이아(Galatea)

갈라테이아는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님페이다.
우윳빛 살결의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가 좋아한 남자는 젊고 아름다운 아키스였다.
이를 질투한 폴리페모스는 커다란 바위를 던져 아키스를 죽인다.
 

갈라테이아 [Galatée], 귀스타브 모로, 19세기경, 오르세 미술관.
 

Gustave Moreau - Galatée, 1896.

갈라테이아는 '쟂빛 여인'이란 뜻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네레이스 중 하나이다.
그녀는 목축의 신 판의 아들인 아키스를 사랑하였다.
아키스와 갈라테이아는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아들들인 외눈박이 사이클롭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가 눈이 이상해지기 전에,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니콜라 푸생, 1629년~1630년경,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그러나 갈라테이아는 오직 아키스만 사랑하였다.
폴리페모스는 어느 날,
아키스와 갈라테이아가 사귀는 것을 보고,
난폭해진 그는 아키스를 밟아 죽였다.
거기에서 피가 많이 나왔으며,
갈라테이아는 아키스의 피를 강으로 만들어 '아키스 강'이라고 하였다.
 

Pygmalion et Galatée par Jean-Léon Gérôme.
 

Pygmalion et Galatée, Jean-Léon Gérôme

갈라테이아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여인이 있는데,
한 때는 조각상이었던 피그말리온의 아내도 '갈라테이아'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안 루이 지로데 드 루시 트리오종,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생각대로 상아로 아름다운 여자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그 조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피그말리온이 그녀에게 반해,
키프로스 섬에서 미(美)와 애(愛)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의 아내가 되도록 해달라고 매일 빌었다.
 

Jean François Lagrènee, Pygmalion et Galatée, Aphrodite.

아프로디테는 어느 날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었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의 이름을 '갈라테이아'라고 하고,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Pygmalion et Galatée],
장 밥티스트 앙리 데자이,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조각상에 사랑을 느끼고 비너스에게 조각상에게 삶을 줄 것을 기도드리는 피그말리온> 장 밥티스트 레뇨 백작,
1786,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 궁 소장.
 

<조각상을 숭배하는 피그말리온> 장 라우, 1677년~1734년.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란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피그말리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 왕에서 유래되었다.
피그말리온 왕은 자신이 조각한 여성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를 수록한 고대 로마의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암포라에 새겨진 오디세우스 일행과 폴리페모스, 기원전 7세기 중반.
 
 

The Cyclops, Odilon Redon,
1914.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이며,
포세이돈의 아들로,
오디세우스와 그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고 한 사람씩 잡아먹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눈을 찔려 맹인이 되었다.


*신화 이야기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폴리페모스라는 키클롭스가 등장한다.
(키클롭스(Cyclops)라는 말은 '둥근 눈'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커다란 몸집에 이마의 중앙에 눈이 하나 달린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시칠리아 해변에서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폴리페모스는 시칠리아 섬의 동굴에서 양 떼를 치며 살았는데,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 일행이 우연히 이 섬에 들르게 되었다.

일행은 폴리페모스가 양 떼를 몰고 나간 사이에 그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그만 안에 갇히고 말았는데,
저녁에 돌아온 폴리페모스가 양 떼를 동굴 안으로 몰아넣은 뒤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폴리페모스는 동굴에서 일행을 발견하고는,
두 명을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잡아먹더니,
곧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오디세우스는 칼을 뽑아 잠든 폴리페모스를 죽이려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동굴 입구를 막아 놓은 거대한 바위를 움직일 힘이 그의 일행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에 오디세우스는 다른 꾀를 내었다.
그는 폴리페모스에게 맛있는 포도주를 권한 뒤,
그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끝을 뾰족하게 깎은 말뚝으로 눈을 찔러 장님을 만들었다.

장님이 된 폴리페모스는 아침에 양 떼가 풀을 뜯으러 나갈 때가 되자,
동굴 입구를 조금만 열고 양 떼를 일일이 손으로 만져 보면서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양의 배 밑에 몸을 묶고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다시 배에 오른 오디세우스는 큰 소리로 폴리페모스를 조롱했다.
분노한 폴리페모스는 바위를 번쩍 들어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던졌지만,
오디세우스의 배를 맞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일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해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더욱 험난한 귀향길을 맞게 된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오디세우스 일행> 아티카 항아리 그림, 기원전 660년경, 엘레우시스 고고학박물관.
 

갈라테이아 [Galatée], 귀스타브 모로, 19세기경, 소묘,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갈라테이아와 폴리페모스

오디세우스에 의해 눈이 멀기 전에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님페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고 있었다.
우윳빛 살결의 갈라테이아는,
해신 네레우스의 딸들인 50명(혹은 100명)의 아름다운 네레이데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님페였다.

폴리페모스는 예언자 텔레모스가 그에게 오디세우스라는 자에게 시력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이미 자신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Polyphème surprenant Acis et Galatée, Auguste OTTIN (1866). Jardin du Luxembourg, Paris

 

Wikiloves Monuments - Galatée, une nymphe de la mer et Acis. le berger sicilien Fontaine Médicis.

그런데 갈라테이아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연인이 있었다.
“부드러운 턱에 보일 듯 말 듯 솜털이 나기 시작”한 열여섯 살의 아름다운 소년 아키스였다.

갈라테이아가 아키스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폴리페모스는 질투심에서 더욱 안달을 하였고,
그럴수록 갈라테이아의 마음은 폴리페모스에게서 더욱 멀어졌다.
갈라테이아는 폴리페모스를 싫어하는 마음과 아키스를 사랑하는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클로드 르 로랭, 1657년,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그러던 어느 날,
폴리페모스는 여느 때처럼 노을이 지는 해변 바위에 홀로 앉아 애타는 마음을 피리로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던 폴리페모스는,
해변에서 아키스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는 갈라테이아를 발견하고는 분노가 폭발했다.

 

Acis And Galatea Painting by Pompeo Batoni.

그의 성난 목소리에 잠이 깬 연인 갈라테이아는 놀라 달아났고,
폴리페모스는 산에서 커다란 바위를 뽑아 아키스를 향해서 던졌다.
바위는 그대로 아키스를 깔아뭉갰고,
바위 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슬픔에 잠긴 갈라테이아는 연인의 피를 맑은 강물이 되어 흐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아키스는 강의 신이 되었다.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갈라테이아 [Galatée],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9세기경, 23 x 12 cm,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Acis et Galatée], 미쉘 코르네이유 1세, 17세기경,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 궁.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Acis et Galatée], 프랑수아 페리에, 17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갈라테이아의 승리> 노엘 쿠아펠, 17세기경, 옥세르 미술역사박물관.

 

갈라테이아 [Galatée], 라파엘, 1511년, 빌라 파르네시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