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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석기 시대의 건설 열풍(글 : 로프 스미스, 사진 : 루번 우, 앨리스 주 삽화 : 페르난도 G. 밥티스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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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석기 시대의 건설 열풍(글 : 로프 스미스, 사진 : 루번 우, 앨리스 주 삽화 : 페르난도 G. 밥티스타)

Guanah·Hugo 2024. 3. 20. 09:34

출처 :  [영국 석기 시대의 건설 열풍]-내셔널지오그래픽매거진 (nationalgeographic.co.kr)

 

스톤헨지
해가 지면 평화가 찾아들지만 혼잡한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스톤헨지에서는 적막감을 기대할 수 없다.

“밤에도 그치지 않는 주변의 자동차 소음이 신경에 거슬렸습니다.

수천 년 전에는 이곳이 어땠을지 상상해보게 됐죠.”

사진작가 루번 우는 말한다.
REUBEN WU; 13중 노출로 촬영한 사진

 

세계적인 기념물 중 하나인 스톤헨지는 지난 수백 년간 연구 대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덕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인 스톤헨지를 포함해 고대 경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고

고고학자 빈스 가프니는 말한다.

 

추분이 되면 수백 명의 방문객이 스톤헨지의 널따란 삼석탑 아래에 모여들면서 민속제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의 일출과 동지의 일몰 지점을 잇는 축을 따라 일직선으로 배치된 이 선사 시대의 환상열석은 오래전부터 계절을 기념하는 장소로 이용돼왔다.

 

2021년 6월 스톤헨지 세계유산 아래로 고속도로 터널을 짓는 공사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런던에 있는 왕립재판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드루이드교 수석 사제 킹 아서 펜드라곤은 말했다.

왕립재판소는 이 계획을 중단시켰지만 여전히 사업에 대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프레셀리힐스]

스톤헨지의 전설은 웨일스에 있는 험준한 구릉 지대에서 시작된다.

지질학자들은 스톤헨지에 쓰인 청석의 대부분이 채취된 장소로 칸괴독과 인근의 노두를 지목했다.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이 1.8t에 달하는 돌을 280km나 떨어진 솔즈베리평원까지 운반한 이유를 놓고 수많은 가설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원먼]

스톤헨지가 웨일스에서 먼저 건설됐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원먼에서 증거를 찾고자 땅을 파고 있다.

프레셀리힐스에 있는 이 무너진 환상열석은 스톤헨지보다 수백 년 일찍 건설됐지만 외형이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고고학자들은 한때 선돌이 박혀 있었던 구덩이들을 발견했지만 남아 있는 돌은 거의 없다.

이 돌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중 스톤헨지에 쓰인 돌이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웨스트케넷팰리세이드]

건설 열풍이 불던 시기에 세워진 웅장한 기념물 중 하나로 거대한 목책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웨스트케넷팰리세이드라고 알려진 이 기념물은 스톤헨지에서 약 30km 떨어진 케넷강 강변에 있다.

거대한 참나무 기둥 4000개 중 하나가 박혀 있었던 구멍 속 흙에는 수천 년 전 나무 기둥이 썩으면서 생긴 검은 줄무늬가 남아 있다.

 

[웨스트케넷팰리세이드]

현장고고학자 페트라 존스가 사라진 기둥의 거대한 크기를 측정하고 있다.

벌목꾼들은 거목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속으로 몇 킬로미터를 걸어 들어갔다.

진짜 작업은 그다음부터였다.

최근에 한 실험을 통해 돌도끼로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기 위해서는 1만 1000번 이상 도끼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웨스트케넷팰리세이드]

고고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 팀을 이뤄 웨스트케넷팰리세이드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고 있다.

멀게는 320km 밖에서 유입된 유물과 불에 그을린 돼지 뼈 무더기로 미뤄 이곳은 영국 각지에서 모인 인파가 축제를 벌였던 장소로 추정된다.

 

[우드헨지]

1925년에 밀밭을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 발견된 우드헨지에는 나무 기둥들이 여섯 개의 동심원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는 콘크리트 기둥으로 그 위치를 표시해놨다.

가까운 곳에 있는 스톤헨지와 마찬가지로 이 기념물 역시 하지에 뜨는 해와 일직선을 이루도록 설계됐다.

 

[스탠턴드루]

한때 사방으로 뻗어나간 제사용 단지였던 스탠턴드루는 원형으로 배치된 나무 기둥들과 인접한 츄강으로 이어진 두 개의 선돌대로 그리고 직경이 약 112m에 달하는 영국 최대의 환상열석 중 하나를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선돌 26개가 남아 있으며 지표 투과 레이더를 통해 나무 기둥으로 구성된 원 아홉 개가 확인됐다.

 

[스탠턴드루]

드루이드교 신자인 에이드리언 루크가 스탠턴드루에 있는 선돌과 교감하고 있다.

18세기에 한 성공회 신부는 영국에 있는 거석 기념물들이 고대 드루이드교 신자들에 의해 건립된 사원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현대의 드루이드교 신자들은 이 환상열석들에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에 모여 종교 의식을 행한다.

 

스탠턴드루에서 한 드루이드교 여사제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칼을 든 채 하지 기념 의식에 참가한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현대의 드루이드교는 자연을 경배하는 동시에 영국의 고대 기념물들을 건설한 사람들을 포함해 선조들을 공경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톤헨지의 선돌은 유구한 세월과 끊임없이 오가는 방문객들을 지켜봐왔다.

왼쪽 맨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목공 기법에서 차용한 장붓구멍과 장부로 맞물린 삼석탑이 짙푸른 이끼에 뒤덮여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관광객들은 기념품으로 돌 조각을 파 갔으며 1866년에 H. 브릿저가 그랬던 것처럼 선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곤 했다.

60번석이 1959년에 선돌을 지탱하기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충전물 위로 녹아 내린 것처럼 보인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단검과 도끼날의 흔적은 청동기 시대에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추분 아침에 스톤헨지를 방문한 해나 링거드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있다.

이 전설적인 기념물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람객의 접근을 대부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에는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이 환상열석의 내부를 둘러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연간 최대 160만 명의 관람객이 스톤헨지를 찾지만 그중 상당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기념물과 교감한다.

런던에 사는 개리 포레스터와 그의 어린 딸 비비언은 늦여름의 따스한 저녁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거닐며 지구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람들은 유구한 세월을 견디면서 인류의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톤헨지를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 잉글리시헤리티지의 니콜라 태스커는 말한다.

 

[스톤헨지]

추분 전날 저녁에 드루이드교와 민속 신앙 신도들, 순례자들이 모여 성가를 부르며 계절의 순환을 기념하고 있다.

“스톤헨지는 거대한 해시계이자 민속 신앙을 위한 사원이며 신성한 묘역인 동시에 드루이드교 신자들이 신성시하고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입니다.”

드루이드교 사제 아서 펜드라곤은 말한다.

 

[수수께끼의 원]

영국제도에서 가장 복잡하고 유명한 환상열석인 스톤헨지는 약 1300개에 달하는 선사 시대의 기념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석기 시대 말기에 건설된 몇몇 대형 유적은 그 유적을 만든 사람들이 이 공동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준다.

당시에 만들어진 유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대형 토공 유적과 나무 기둥을 환상으로 배열한 기념물 등이 있다.

 

[다섯 개의 거석]

영국 남부에 있는 이 대형 유적지들은 집단에 의한 창의적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변모했다.

건설 작업은 BC 2500년경에 정점에 도달했던 신석기 시대의 건설 열풍 기간 동안 특히 활발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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