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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파종에 대해 몰랐던 것들...(9) 씨앗 잠깨우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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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파종에 대해 몰랐던 것들...(9) 씨앗 잠깨우기

Guanah·Hugo 2023. 11. 27. 20:41

출처 : 모야모 매거진 웃는소나무(두물머리)

 

씨앗은 잠을 자고 있는 상태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수정이 된 후에,

일정기간 세포 분열이 진행되다가 멈춘 상태이다.

굳이 사람의 경우에 비유하자면,

"임신 8주 차 정도에서 멈추어"

휴면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잠을 자고 있는 씨앗을 두드려 깨우는 것이 발아이다.

얕은 선잠을 자는 한해살이의 초화의 씨앗은,

습도 - 온도 - 빛의 조건만 맞으면,

발아 메커니즘이 작동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싹을 틔운다.

 

여러해살이의 경우에도,

대부분 조건이 맞으면 발아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만큼,

두드려 깨우는 데에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런데 여러해살이 씨앗 중에서도,

일부는 잠을 깨우기가 꽤 까다로운 녀석들이 있다.

발아조건(습도 - 온도 - 빛)을 맞추어 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리 두드려도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지 않는 고약한 넘들이다.

나무씨앗과 야생화 씨앗은 대부분 그러하고,

초화의 경우는 주로 원산지의 기후가 겨울이 길고 혹독한 녀석들이 그에 해당한다.

 

이런 고얀 넘들을 발아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 하나는 씨앗이 여물고 나서,

  미처 잠에 빠져들기 전에 곧장(통상 1주 ~ 4주) 파종하거나,

- 다른 하나는 채종후 곧장 파종이 여의치 않을 경우는,

   "저온처리(cold treatment)"를 해주는 것이다.

 

요컨게 저온처리란 씨앗으로 하여금,

"젖은 상태에서 싸늘한 저온의 기간"을,

인위적으로 겪도록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씨앗이 여물어 땅에 떨어진 후,

자연상태에서 겪게 되는 변화를 비슷하게 흉내 내어,

순진한 씨앗이 속아서 안심하고 잠에서 깨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춘화처리(春化處理, vernalization)니,

휴면타파(休眠打破, break dormancy)니,

적층화(積層化, stratification)

하는

무지하게 어려운 용어들을 통칭해서 일컫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자연상태에서 씨앗은,

여름 - 가을 - 겨울 - 봄이라는,

계절의 순환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온몸으로 겪게 된다.

더운 여름을 나고,

가을을 거쳐,

추운 겨울을 견딘다.

이윽고 해동이 되면서 새봄을 만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바로 늦겨울에서 이른 봄으로 이어지는 기간이다.

그야말로 "대지가 연출하는 마법의 시기"이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면서 적절한 수분이 공급되고,

낮에는 녹았다 밤에는 다시 어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윽고 해동이 되면서,

사람은 느낄 수조차 없는 미미한 지온의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이 시기에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모니터링하면서,

씨앗은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준비 모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씨앗을 구성하는 세포 조직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껍질 내외부에 분비되어 있던 지베렐린산이,

발아억제에서 발아 촉진으로 기능 전환을 하는 등 연쇄적 반응들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발아 전 단계의 준비 작업이 착착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씨앗이 저온 처리와 같은 까다로운 발아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는 식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열악할수록,

발아의 타이밍 결정에 그만큼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가급적 빨리 발아시켜 꽃이나 열매를 보려는 사람에게는,

저온 처리가 매우 번거롭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활용하면 연중 어느 때든,

원하는 시기에 발아를 시킬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온 처리의 요건과 방법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가장 선결적 조건은 습도(moist) 공급

- 다음은 영하 4도 ~ 영상 4도의 저온(chill) 유지

- 기간(due)은 씨앗마다 다르며, 최소 2주 ~ 최대 12주 정도.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젖은 티슈로 씨앗을 싸고,

비닐팩에 밀봉해서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물론 씨앗이 미세할 경우는,

흙과 섞어 보관하면 된다.

이때 비닐팩을 밀봉하지 않으면,

젖은 티슈에서 수분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2주 이후부터는 수시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만약 싹이 트는 조짐이 보이면,

즉시 꺼내어 파종하는 것이 좋다.

적정 저온처리 기간이 지나 발아가 시작되었는데도,

장시간 방치하면 호흡을 해야 하는 새싹이,

공기 부족으로 질식사할 우려가 있다.

 

비록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저온 처리를 해주면,

발아율이 훨씬 더 높아지는 녀석들은 꽤 많이 있으며,

심지어 한해살이 중에도 더러 있다.

이는 노지에 직파하는 혼합 씨앗의 경우,

겨울 파종을 하면,

자연스럽게 저온처리가 되기 때문에,

발아율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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