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박제영의 꽃香詩향] 사랑과 꽃에 관한 편견과 오해들 본문

도서圖書Book Story

[박제영의 꽃香詩향] 사랑과 꽃에 관한 편견과 오해들

Guanah·Hugo 2024. 12. 11. 09:30

출처 :  https://band.us/band/59564435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니만큼 오늘은 조금은 색다르게 특정 꽃 이야기 대신,
‘꽃과 사랑에 관한 편견’에 관한 저의 시편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사랑과 꽃’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가 뭘까요?
김춘수의 「꽃」인가요?
아니면 나태주의 「풀꽃」일까요?
많은 사람이 어쩌면,
김춘수의 「꽃」 아니면 나태주의 「풀꽃」을 떠올릴 텐데요.
김춘수의 「꽃」과 나태주의 「풀꽃」을 이렇게 슬쩍 비틀면,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거짓말,
추자가 그랬지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지는 잘 살고 있었다고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라는 빨간 거짓말,
추자가 그랬잖아
네가 네 시에 온다니까,
세 시부터 죽어가기 시작하더라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새빨간 거짓말,
추자가 그랬다니깐
자세히 보니 추하다 오래 보았더니 지겹다 헤어지더라고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추자의 노래가 흐르는 에프엠 구백구십구점구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여기는 에프엠 구백구십구점구 사랑은 거짓말이야
― 박제영, 「에프엠 구백구십구점구 사랑은 거짓말이야」 전문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답이 되기도 하지요.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비법이었던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꽃이라는 이름,
사랑이라는 이름에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어쩌면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쓴 시가 바로 「개」라는 시입니다.


사나운 매질과 모진 밧줄이 살을 파고 목을 죄었지만,
목숨은 저리 질긴 것이어서 개는,
좀처럼 숨을 놓지 않았다
외려 지친 사내들이 손을 놓고 숨을 고르는 사이,
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으니,
허를 찔린 사내들이 그 뒤를 쫓았지만,
개는 이미 야산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삼순아 삼순아 한 사내가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삼순아아!

덤불 속에서 절뚝절뚝 걸어나오는 붉은 몸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때론 이름이 목숨보다 질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내는 느슨해진 목줄을 단단히 고쳐 묶고,
좀 더 굵은 가지에 줄을 던져 올렸다
마침내 숨을 놓아버린 삼순이가,
마른 수세미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박제영, 「개」 전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꽃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내가 혹시 누군가를 소유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꽃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누군가가 내 곁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오해와 편견,
꽃이라는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탱자 같은 눈이 내려서
하루 종일 탱자 탱자 내려서
옛 애인들을 떠올리네
생각하면 옛 애인들은 모두 탱자였네
출구가 막힌 가시울타리 속에서
위리안치를 사랑이라 우격다짐하며
탱자 탱자 서로를 찔러대던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었던
탱자 탱자 썩어 문드러지도록
썩어 문드러져서야 흰 꽃잎 하나 벙글어졌던
생각하면 옛 애인들은 모두 탱자였네
탱자꽃 같은 눈이 내리네
옛 애인들이 탱자 탱자 내리네
― 박제영, 「탱자 같은 눈이 내려서」 전문


오키프는 꽃이 아니라 여성의 생식기를 그렸다며
미술평론가들은 포르노그래피라고 소문을 퍼뜨렸지

나는 단지 내가 본 꽃을 그릴 뿐이다
오키프의 말은 끝내 무시되었지

낮에는 스티글리츠의 누드모델이었고, 밤에는 정부情婦였다며
호사가들은 천박한 요부妖婦라고 입방아를 찧었지

나는 단지 그의 사진을 사랑하고 그를 사랑했다
오키프의 말은 끝내 무시되었지

자신의 그림 <흰독말풀>이 소더비 경매에서 500억 원에 낙찰됐지만,
오키프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어

백 번째 생일을 앞둔 1986년 어느 봄날, 오키프는 영원히 눈을 감았지
내가 평생 그렸던 풍경으로 나를 돌려보내달라는 게 마지막 유언이었어

오키프의 유골은 뉴멕시코 세로 페더널산 정상에서 한 줌의 재로 뿌려졌지만,
오키프의 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지
― 박제영, 「꽃은 모순이다
신은 생식의 기관으로 만들었으나
시인은 연애와 이별의 기표로 만들었으니
꽃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디로 기울 텐가」 전문


어쩌면 사랑도 꽃도 내가 만들어낸 환영과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믿음을 탐하는 것이거나,
꽃이 아니라 꽃이라는 이름을 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나의 사랑을 나의 꽃을 박제로 미라로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프리지어가 아니다
라는 말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에서 시작되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

인제의 자작나무 숲
아니면
먼 북쪽의 아오지 탄광
아니면 국경 너머 더 먼 북쪽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

당신의 부재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매지구름이 몰려옵니다
곧 시커먼 비를 뿌릴 테지요

당신의 부재를 통과하지 못한
잎들은 시들고
시든 잎들은 진창을 뒹굽니다

이것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지
아직 나는 모릅니다

애오라지 당신의 부재를 견디면서
마침내 프리하게 프리해질 겁니다

프리하게 프리하게 만개한다면
어쩌면 당신의 부재를 완성할지도 모를 테지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부재는 이제 겨우
천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박제영, 「프리지어」 전문


그래서 내린 결론은 무엇이냐고요?
그 답 또한 시로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나에게 정답이었지만,
당신에겐 오답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사랑은 오해에서 비롯되어 더 큰 오해를 짓는 것이니
오해를 풀기 위해 기꺼이 이별을 한다
사랑을 추적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사랑은 이별의 알리바이라는 사실뿐이다

(…중략…)

“모든 노래는 사랑에서 발원하였다”는
“화목난로에 물이 끓는 동안 사랑은 다녀갔다”는
박정대의 전언은 예언에 가깝다
사랑은 언제나 없지만 사랑은 언제나 있다
― 박제영, 「사랑학개론」 부분

(끝)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