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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끝 노르웨이 (봄내 407호, 2024년 12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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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끝 노르웨이 (봄내 407호, 2024년 12월)

Guanah·Hugo 2024. 12. 8. 21:42

 

 

대자연의 끝 노르웨이에 왔다.

이곳은 감히 ‘끝’이라 칭해도 될 것 같다.

빙하 녹은 맑은 물이 어디에든 흐르고,

깎아지른 절벽과 폭포가 사방에 솟아있다.

푸른 초원과 한가로운 소와 양 떼,

장난감 같은 집들은 호수에 반영되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십만 년 전 빙하가 침식시킨 ‘피오르’라는 독특한 지형이 이 땅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차를 빌려 동쪽 끝 오슬로에서 서쪽 끝까지 달렸다.

여행 내내 비가 왔지만,

젖은 자연은 또 그런대로 자신의 색을 짙게 뿜어낸다.

좁은 도로에 굽이진 길이지만 커브를 돌 때마다 놀라운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드라이브만 해도 온전한 여행이 된다.

 

노르웨이는 캠핑 문화가 발달해 있다.

국토 전역에 캠핑장이 있고,

매우 깨끗하게 관리된다.

특히 ‘히떼’라는 오두막에서 묵을 수 있는데,

노란 조명과 진한 나무 향이 여행자를 아늑하게 반겨준다.

사용자가 침대보도 직접 가져오고,

나갈 때 청소도 해놓아야 하는 시스템인데,

셀프로 운영되는 숙소가 이렇게 깨끗할 수 있나 놀랍다.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되는,

마트나 숙박 시설 탓에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만난 이들은 모두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북유럽 사우나도 했다. 얼음장 같은 호수에 첨벙 들어갔다가,

뜨거운 한증막에서 몸을 덥히면 온몸에 피가 도는 게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자연 속 오직 우리뿐.

행복했다.

이 나라에서 살면 행복 지수가 저절로 높아지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는 ‘제단 바위’라 불리는 프레이케스톨렌에 올랐다.

아래는 수백 길 낭떠러지,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주변을 살피면 엄청난 풍광이 펼쳐진다.

새가 되어 하늘에서 지구를 조망하면 이런 기분일까.

 

‘괴물의 혀’라고 불리는 ‘트롤퉁가’ 또한 압권이다.

혀처럼 절벽에 돌출된 커다란 바위에 오르려면 ,

복 20킬로미터의 고된 산행을 해야 한다.

대자연의 절경과 하나가 되어 천천히 걸으면 힘든 줄 모른다.

북유럽에는 유독 거인 신화가 많은데,

웅장한 산맥과 바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채만 한 바위들은 거인의 공깃돌이고,

너른 호수는 거인의 목욕탕이다.

어느새 도착해 트롤퉁가에 오르면 여기가 세상의 끝이구나 싶다.

 

라테포센 폭포

 

트롤퉁가

 

정상에 빨리 오르려고 놓쳤던 풍경들이 있다.

‘사진은 이따 내려와서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껴 모습이 달라져 버렸다.

푸른 배경이 없으니 풍경이 영 꽝이다.

아름다움은 찰나여서 미루었다간 놓치기 쉽구나.

생각해 보면 여행도 그렇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1년이나 여행을 떠나온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으로 미루었다면,

어느새 날씨는 변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자연에 감탄하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오롯이 ‘처음 겪는 일’.

여행이 특별한 건 바로,

이 ‘최초의 경험’ 덕분이다.

처음투성이인 여행에서 불안과 불편을 만드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는 것도 이것이다.

스위스 마터호른에 오르는 산악열차에서,

사람들은 우르르 일어나 사진을 찍고 난리지만,

내려갈 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이다.

 

피오르와 예쁜 집들

 

사우나 앞 호수 풍경

 

우리가 아이였을 때,

세상은 최초의 경험으로 가득했다.

매일은 놀라웠고,

삶은 즐거웠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익숙해지며 새로움은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매일은 처음 겪는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행자의 눈으로 산다면,

일상에서도 새로운 순간이 보일 것이다.

하루는 더 특별해질 것이고,

더 자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세상을 돌며 배운 것이다.

 

이제 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에 스미려 한다.

지구 곳곳에서 느꼈던 경이와 고마운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며,

행복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유독 ‘끝’이란 말을 많이 썼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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