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04. 안토니 반 다이크, 권력은 어떻게 연출되는가? 본문
출처 : 양정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내셔널 갤러리 특별판)
찰스 1세(1600 ~ 1649년)
찰스 2세(1630 ~ 1685년)
찰스 3세(1948년 ~ )
새로 왕관을 이어받은 찰스 3세의 '찰스'라는 왕호는 찰스 2세의 죽음 이후 337년 만에 붙여진 이름이다.
안토니 반 다이크, 해바라기가 있는 자화상, 1632년, 개인소장
영국 왕실의 궁정화가가 된 직후 그린 자화상으로 추정된다.
안토니 반 다이크는 제임스 1세 때에도 잠시 영국 왕실에서 일한 적이 있어,
그에게 영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작자미상, 안토니 반 다이크와 루벤스, 17세기, 루브르 박물관
루벤스는 북유럽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대가로 전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안토니 반 다이크는 루벤스의 많은 제자 중 단연 뛰어났으며,
그의 조수로 일하다 나중에 독립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 기마 초상, 1633년, 윈저성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 기마 초상(부분), 1633년, 윈저성
안토니 반 다이크, 사냥하는 찰스 1세, 1635년경, 루브르 박물관
안토니 반 다이크, 세 가지 구도의 찰스 1세 초상, 1635년, 윈저성
뱅퀴팅 하우스, 1622년, 런던 화이트홀
영국의 고전주의 건축가 이니고 존스가 설계한 건물로,
여기서 뱅퀴팅은 연회를 뜻한다.
내부 천장화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 화가 루벤스의 작품이다.
작자미상, 찰스 1세의 처형 장면, 1649년경,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내전 과정에서 찰스 1세는 의회파와의 싸움에서 져,
결국 반역죄로 기소되어,
수많은 대중 앞에서 처형당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의 가족 초상, 1632년, 윈저성
그림 왼쪽에 서 있는 아이가 훗날 왕위를 잇는 찰스 2세이다.
오른쪽은 프랑스 출신의 헨리에타 마리와 왕비와 장녀 메리 공주이다.
피터 첼리, 찰스 2세 기마 초상, 1675년경, 영국 정부 아트 컬렉션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 기마 초상(부분), 1633년, 윈저성
안토니 반 다이크,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경, 내셔널 갤러리
스튜어트 형제가 그랜드 투어를 떠나기 바로 전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랜드 투어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행한 영국 상류층 자제들의 유럽 대륙 여행이다.
이 그림은 고고한 귀족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연출됐다.
안토니 반 다이크,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부분), 1638년경, 내셔널 갤러리
안토니 반 다이크, 사냥하는 찰세 1세(부분), 1635년경, 루브르 박물관
그림 속 인물이 허리에 손을 짚은 채 내려다보는 자세는 관객을 압도하는 효과를 준다.
안토니 반 다이크는 매끄러운 의복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위엄과 기품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 역사상 '찰스'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의 인생은 순탄치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초상화에서만큼은 절대권력을 가진 위엄 있는 군주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영국 둥정화가 안토미 반 다이크는 찰스 1세부터 스튜어트 가문의 귀족들까지 위풍당당한 모습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는 화려한 색체와 면밀하게 계산된 도구로 당대 권력자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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