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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Guanah·Hugo 2024. 11. 24. 23:22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국적 스페인, 출생-사망 1881년~1973년, 사조 입체주의.

예술양식: 조각가, 판화가, 도예가, 콜라주 화가, 입체주의의 창시자,
반복된 모티프의 사용, 정물화,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 헌정화(獻呈畵).

파블로 피카소의 천재성은 20세기 미술을 지배했고,
상대적으로 20세기의 모든 미술가들은 그의 그늘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같은 대선배들의 계보를 잇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피카소는,
기교, 독창성, 해학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없었다.

피카소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양식과 매체를 변경해가며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때로는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꿈 Le Rêve, 제작시기 1932년

그는 조르주 브라크, 앙리 마티스, 페르낭 레제와 같은,
동시대의 미술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아실 고르키, 윌렘 데 쿠닝, 데이비드 호크니를 포함한,
후대의 미술가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첫 영성체> 1896년

피카소는 일찍이 화가인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라코루냐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공부했다.

피카소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놀라운 사실주의 작품인 <첫 영성체>(1896)를 그렸다.
이 작품은 그가 옛 거장들의 구도와 색채,
그리고 기법을 완전히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다른 미술가들의 양식을 받아들였는데,
그 결과 그의 작품 <페파 아주머니의 초상>(1896)은,
마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처럼 보이고,
<푸른 옷을 입은 여인>(1901)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푸른방, 1901년

1904년에 피카소는 파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작가들의 모임에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다.

피카소가 초기에 제작한 회화와 판화,
그리고 조각 작품들은 청색 시대(1901~1904),
장미 시대(1905~1907),
원시 시대(1908~1909),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1908~1912),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1912~1913)로 나뉜다.
 

<비극> 1903년

청색 시대의 작품들은 우울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피카소는 청색의 색조를 자주 사용했고,
알코올 중독자, 거지, 매춘부, 방랑자, 빈민들이,
마치 엘 그레코의 인물들처럼 길쭉하고 수척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특징의 작품으로는 <비극>(1903)이 있다.
 

<곡예사 가족> 1905년

장미 시대에는 핑크색과 오렌지색의 색조가 두드러지며,
<곡예사 가족>(1905)에서처럼 어릿광대,
곡예사, 서커스단원들이 등장한다.
 

서양 미술사상 일대 전환점이 된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원시 시대에는 고대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미술,
그리고 오세아니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선구적인 작품인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을 선보였다.
인물들을 각이 지게 묘사한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만돌린을 켜는 소녀, 1910년

동료 미술가인 브라크와 함께,
피카소는 구상 작품인 <기타를 든 여인>(1911)과,
정물화인 <죽은 새들>(1912)을 제작하면서,
3차원적인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입체주의 양식의 독창적인 기법과 이론들을 정립시켰다.

또한, 피카소는 <기타>(1912~1913)와 같은 입체주의 조각들에서,
3차원의 물체들을 거의 그림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공간적인 순서를 반대로 처리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식탁 위의 병과 포도주 잔>(1912)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신문, 종이, 헝겊을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 위에 덧붙였다.
 

<미노타우로마키> 1935년

대가의 작업은 지속되고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은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조각상처럼,
견고한 신고전주의적인 구상 작품들을 제작하다가,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옮겨갔으며,
1930년대에는 뛰어난 기교를 선보인 에칭 작품인,
<미노타우로마키>(1935)에서처럼,
신화적인 주제들을 탐구했다.

그는 활동 기간 내내, 구성과 공간,
그리고 기법과 색채에 신경을 썼고,
투우, 기타, 어릿광대와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채택했다.
 

<우는 여인> 1937년

피카소는 스페인 내란 중에는 벽화 <게르니카>(1937)를 제작하여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는 <게르니카> 이후에도 드로잉, 에칭, 회화 연작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표현했는데,
에칭 작품인 <우는 여인>(1937)이 여기에 속한다.
 

<시녀들> 1957년

또한 피카소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시녀들>(1957)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선배 미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1960년대에는 색채주의 작품들을 제작했으며,
이 중 일부는 신표현주의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의 개인사는 그의 미술 양식의 변화 과정만큼이나 유동적이었다.
그는 두 번 결혼했고,
세 명의 여자로부터 네 명의 아이를 가졌다.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항상 독창적이었던 거장 피카소의 작품들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501 위대한 화가, 2009. 8. 20, 마로니에북스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 1951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게르니카 [Guernica]제작연도 1937년, 유화, 349.3 x 776.6 cm,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캔버스 왼쪽부터 보면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의 이름이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50~1,600명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또한 부상 당하였다.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띤 이 그림은,
사실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의뢰된 것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르니카의 참상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폭격의 공포와 피카소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근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프랑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독재 체제에 대해 엘리트로서 느꼈던 비애도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인생, 1903년
 

기타치는 노인, 1904년
 

파이프를 든 소년 Garçon à la pipe, 제작시기 1905년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1906년
 

Pablo Picasso, 1901-02, Femme au café (Absinthe Drinker), oil on canvas, 73 × 54 cm, Hermitage Museum.
 

 

Portrait d'Olga dans un fauteuil (Olga in an Armchair), 1918, Musée Picasso, Paris, France.
 

Pablo Picasso, 1918, Pierrot, oil on canvas, 92.7 × 73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엄마와 아이, 1921년
 

Pablo Picasso, 1921, Nu assis s'essuyant le pied (Seated Nude Drying her Foot),
pastel, 66 x 50.8 cm, Berggruen Museum.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 [Two women running on the beach], 1922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Pablo Picasso, 1919, Sleeping Peasants, gouache,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31.1 × 48.9 cm, Museum of Modern Art.
 

목신 판의 피리, 1923년
 

Wounded Bird and Cat, 1938
 

세 명의 무희, 1925년
 

Pablo Picasso, 1921, Nous autres musiciens (Three Musicians), oil on canvas,
204.5 x 188.3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거울 앞의 소녀, 1932년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 Nu au Plateau de Sculpteur, 제작시기 1932년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Portrait de Marie-Thérèse], 1937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도라 마르의 초상 [Portrait de Dora Maar], 1937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인형을 든 마야 [Maya à la poupée], 1938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Françoise, Claude and Paloma, 1951
 

Jacqueline with flowers,1954
 

Night Fishing at Antibes, 1939
 

풀밭 위의 점심 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d'après Manet], 1960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
 

돈키호테, 1955년
 

Pablo Picasso - Le peintre au trav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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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꿈> 가격 $155,000,000(1626억 20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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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40,678,000(426억 8000만 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국적 스페인, 출생-사망 1881년~1973년, 사조 입체주의.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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