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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미모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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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미모사

Guanah·Hugo 2024. 7. 11. 11:06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라는 속담을 기억하시는지요?
바늘과 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를 얘기할 때 흔히 쓰이는 말이지요.
꽃 중에도 이런 사이를 지닌 꽃들이 있습니다.
어떤 꽃들이 있을까요?
사실 제가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몇 번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찔레꽃 하면 당신은 어떤 꽃을 떠올릴까요?
흠, 고려 때 원나라(몽골)로 끌려가는 누이,
찔레를 쫓아갔지만 끝내 바다에 가로막혀 끝내 해변에서 외롭게 죽어간 남동생이 한 떨기 꽃으로 피었다는 이야기…….
이제 기억이 나실는지요?
그래요 찔레꽃과 해당화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꽃이 있을까요?
천사의 나팔꽃 하면 바로 악마의 나팔꽃을 떠올릴 거라 믿습니다.
작약 하면 목련을,
이팝꽃 하면 조팝꽃을,
나도바람꽃 하면 너도 바람꽃을,
오얏꽃(자두꽃) 하면 배꽃을,
금잔화 하면 메리골드를,
메꽃 하면 나팔꽃을,
접시꽃 하면 무궁화와 아욱꽃을 떠올릴 거라 믿습니다.
이상은 지금까지 글을 연재하면서 말씀드렸던 한통속의 꽃들이지요.
물론 당장 기억나는 것들만 말씀드린 것이니까 이전 글들을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꽃은 제목에서 이미 밝혔듯이 미모사인데,
그렇다면 미모사와 한통속인 꽃을 이전에 이미 소개했다는 얘기일 테지요.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2021년 7월호에 소개한 자귀꽃입니다.
그때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랬지요.

“자귀나무를 미국에서는 mimosa tree, persian silk tree, 또는 간단하게 silk tree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실제 미모사 꽃과는 다른 꽃입니다.
실제 미모사 꽃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얘기를 하긴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꼭 3년이 지났습니다.
약속드린 대로 자귀꽃과 한통속인 미소사에 대해 이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 잎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미모사에 대해 말입니다.

그럼 조금 길지만 시를 한 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정한아 시인의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입니다.


너무 예민한 것들 앞에서는 죄인이 된다
숨만 크게 쉬어도 잎을 죄 닫아걸고 가지를 축 늘어뜨리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난폭한 사람이 되어
사랑해서 미안한 폭력배가 되어
젠장, 알았다고, 너 혼자 푸르르라고
공주병 걸린 년, 누가 죽이기라도 한다니?

내버려두면
어느새 정말 죽어 있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
화분째 쓰레기통에 처넣고선
너무 예민한 것들을 다시는 상종을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10년 전에 죽은 미모사

그 어떤 미모사와도 바꿀 수 없는 미모사
모든 미모사의 대명사가 된 미모사
이제는 이름도 떠올리기 싫은 미모사

연약한 주제에 까다로운 년
나는 나를 만나지 말기를
부디 네가 나를 마주치지 말기를
그래도 남보다는 내 손에 죽었으면 한다
 
사랑하면 미안한
미모사
방금 내린 눈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
 
방금 본 그 눈
녹아버린 것들
날아가버린 것들
자기를 잠가버린 것들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

― 정한아,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 전문


어떤가요?
미모사가 어떤 식물인지 어떤 꽃인지 시를 통해 유추해보기 바랍니다.
미모사를 두산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풀이다.
신경초, 잠풀이라고도 한다.
브라질이 원산지인 관상식물로 국내에서는 한해살이풀,
원산지인 브라질에서는 여러해살이풀로 여긴다.
전체에 잔털과 가시가 있고 높이가 30c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보통 4장의 깃꼴겹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배열한다.
작은잎은 줄 모양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턱잎이 있다.

꽃은 7∼8월에 연한 붉은색으로 피고 꽃대 끝에 두상꽃차례를 이루며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뚜렷하지 않으며, 꽃잎은 4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이고 길게 밖으로 나오며,
암술은 1개이고 암술대는 실 모양이며 길다.
열매는 협과이고 마디가 있으며 겉에 털이 있고 3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잎을 건드리면 밑으로 처지고 작은잎이 오므라들어 시든 것처럼 보인다.
밤에도 잎이 처지고 오므라든다.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부를 함수초(含羞草)라는 약재로 쓰는데,
장염·위염·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신경과민으로 인한 안구충혈과 동통에 효과가 있고,
대상포진에 짓찧어 환부에 붙인다.”

“잎을 건드리면 밑으로 처지고 작은잎이 오므라들어 시든 것처럼 보인다.”라는
표현처럼 마치 부끄럼을 타는 것 같다고 해서 ‘함수초(含羞草)’라고 불렀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함수(含羞)를 직역하면 ‘부끄러움(羞)을 머금다(含)’이지요.
그러니까 ‘부끄러워하다, 수줍어하다’ 등의 뜻으로 보면 됩니다.
영어권에서 미모사를 일컬어
‘Sensitive plant’, ‘Touch-me-not’ 등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언젠가 필리핀에 갔을 때,
미모사가 있길래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마카히야(Makahika)’라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Shy plant’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서 자라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거기서 거기인 듯합니다.

아참,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네. 3월 8일입니다.
1908년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입니다.
왜 갑자기 세계 여성의 날이냐고요?
세계 여성의 날이 되면 이탈리아에서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노란 미모사꽃을 선물하거든요.
언제부터 그 전통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2000년인가.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마침 그날도 여성의 날이었는데,
길거리마다 여성들이 노란 미모사꽃-처음에는 개나리꽃인 줄 알았다는-을 들고 다니더라고요.
그것만이라면 괜찮은데 문제는 처음 보는 이탈리아 사내들이 아내에게 자꾸만 그 노란 꽃을 선물하는 거였습니다.
어느 식당에서는 꽃만 주는 게 아니라 깐소네까지 불러주더군요.
생각해보세요.
젊은 이탈리아 사내가 꽃을 바치고 게다가 깐소네까지 불러주는 것이니,
은근히 질투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때 생각하기로,
이탈리아는 오지 말자.
여성의 날은 특히 피해야겠다,
아마 그리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암튼, 미모사라는 꽃이 내 안에 확실히 자리 잡은 건 그때부터였다는 얘기이니다.
그런데 왜 하필 미모사꽃일까요?
현지에서 만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왜 미모사꽃이냐고요? 여성의 힘과 독립성을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들의 눈에는 미모사가 결코 Sensitive plant, Shy plant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한 편의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정한아 시인의 시입니다.


그때 너는 눈꺼풀을 닫았지
그러자 세계 전체가 일순 물러났다

드러나지 않기 위해 너는
하루 섭취 열량의 대부분을 존재하는 데에 쓰고 있구나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줄곧 상처 입고 있어서
그 모든 빛과 바람을 복기하거나
묽고 진한 그림자의 엄습을 잊으려 하지만
망각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망각
충분히 안전한 기분에 도달할 때까지
꼼짝 않고 선 채 눈을 감고 도망 중
도망은 언제나 무엇으로부터의 도망
너는 꿈속에서도 계속 도망하고 있지 않을 수 없었지

미모사. 건드려진 속눈썹처럼 바람만 불어도 곧 울 것 같은
미모사. 가장 다정한 햇살의 가벼운 입맞춤에도 혼절하는
미모사. 봉인의 속도가 존재를 대체해버린
미모사. 모든 감각이 통각인
미모사.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말하지 않을

― 정한아, 「어떤 봉인」 전문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과 「어떤 봉인」에 등장하는 미모사는 여성의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얻지 못한 시절의 여성,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약자로서의 여성 말입니다.
곰곰 생각하면 여성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사실 백여 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지요.
그리고 여전히 여성과 남성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길을 모색 중이지요.
저는 두 편의 시를 그런 시각으로 읽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저 두 편의 시를 들려주면 그들은 어떻게 읽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오늘 미모사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사실 “부끄러워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라는 얘기입니다.
 
도무지 수치를 모르는 정치인들,
몰염치가 판치는 세상에서,
미모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부끄러워해야 할 때 마땅히 부끄러워해라”가 아닐까요.

- 월간 《춤》, 202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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