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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산딸나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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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산딸나무

Guanah·Hugo 2024. 6. 12. 07:44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오늘은 어느 초등학교 저학년 시험문제 얘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문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
1.침대   2.장롱   3.식탁   4.세탁기

놀랍게도 많은 아이들이 세탁기 대신 침대를 정답으로 고르는 바람에,
일선 교사들이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 해프닝의 발단은 1993년 에이스침대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라는 광고 멘트에서 시작되었지요.
광고 멘트가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가수 박미경이 부른 노래 「민들레 홀씨 되어」 때문에 벌어진 이후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 또한 워낙 유명세를 타고 인구에 회자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민들레꽃 ‘씨’를 ‘홀씨’로 잘못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민들레 홀씨가 아니라 ‘민들레 꽃씨, 민들레 씨앗, 민들레 씨’ 등으로 써야 맞지요.
‘홀씨’는 흔히 포자(胞子)라고도 하는데,
‘꽃을 피우지 못하는 양치식물, 조류, 균류 등이 생식을 하기 위해 만드는 세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민들레는 엄연히 꽃을 피우는 식물이고요.

암튼 ‘민들레 홀씨’라는 말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라는 광고 카피와는 달리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지요.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낭설이 정설로 굳어지면 허(虛)가 실(實)로 바뀌면,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길어졌는데요.
실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산딸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산딸나무꽃에 관해서도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낭설이 정설이 되고 허가 실이 되는 또 하나의 예라고나 할까요.
그럼 먼저 시를 한 편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이해인 수녀의 「십자나무꽃」이라는 시입니다.


괴로운 당신을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울기만 하였습니다.

아무 대책이 없더라도
조금이나마
당신을 돕고 싶었습니다.

이젠 좀 쉬시라고
제가 대신 아파드리겠다고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 말 하기도 전에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참으로 고맙다
네 마음 오래 기억할게!
다신 나 때문에
피 흘리리진 않게 해 줄게”

오오, 주님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아름답게 살아
당신을 닮은
기도의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눈물이 되겠습니다
기쁨이 되겠습니다.

― 이해인, 「십자나무꽃」 전문


시에서 얘기하는 십자나무꽃이 바로 산딸나무꽃을 말하는 것인데요.
이해인 꽃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출판사, 2004)에서,
이해인 수녀은 이 시와 함께 산딸나무꽃에 대해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꽃의 이름은 ‘도그우드’Dogwood라고 불리지만,
우리는 애칭으로 십자나무꽃 혹은 십자가꽃이라 부르곤 하지요.
이 꽃은 산딸나무꽃으로도 부릅니다.
미국에 사는 어느 친지가 보내준 그림엽서에서 읽은 전설에 의하면;
이 꽃나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여러 나무 중에 자신이 선택된 것이 하도 마음 아파 그분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어했습니다.
이에 감동하신 예수님이,
‘이후로 너의 꽃잎이 십자가 모양을 하되 가운데는 가시관 형상을 하고 꽃잎 끝은 나의 못자국을 상징하는 상처를 지니고 피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답니다.
하얀색과 자주색 꽃 모두가 신기하게도 그렇게 피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에는 이 꽃을 더 많이 생각하지만 늘 부활절이 지나야만 많은 꽃을 피워낸답니다.
꽃들마다 아름다운 전설이 있지만 이 전설은 가장 오래 자신의 마음을 울린 전설이에요.”

이때부터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산딸나무로 만들었다는 낭설(전설)이 세간에 퍼져 전설이 아닌 정설로 굳어졌지요.
실제로는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어떤 나무로 만든 것인지는 성경뿐 아니라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예수의 예언으로 산딸나무꽃이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니겠지요.
또한 흔히 산딸나무꽃으로 알고 있는 십자 모양을 한 흰색의 잎들
- 멀리서 보면 마치 산딸나무 가득 흰 나비 떼가 날아와 앉은 듯한 -
은 정작 꽃잎이 아니라 꽃을 감싸는 꽃받침 즉 포엽(苞葉, 꽃을 보호하기 위해 잎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꽃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일명 꽃싸개)입니다.
오히려 가운데 열매처럼 동글동글 맺힌 연두색 덩이가 진짜 꽃이지요.
사람들이 꽃이라 믿고 보는 그것이 실은 가짜라니,
그야말로 ‘헛꽃’인 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식물학자들은 이러한 헛꽃에 산딸나무의 생존전략이 담겨 있다고 얘기합니다.
진짜 꽃이 너무 작아서 벌 나비 등 곤충을 불러들일 수 없으니 꽃받침을 헛꽃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허허실실의 유인책인 셈입니다.
아참, 이해인 수녀가 얘기하고 있는 자주색 꽃은 산딸나무의 꽃이 아니라,
실은 미국산딸나무(미산딸나무 혹은 꽃산딸나무라고도 불립니다.)입니다.
산딸나무는 잎과 흰색의 꽃(물론 꽃은 아닙니다만 편의상 꽃으로 부릅니다.)이 함께 나지만,
미국산딸나무는 잎이 나오기 전에 흰색, 자주색 등 여러 색의 꽃이 먼저 활짝 핍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산딸나무는 멀리서 보면 나뭇잎에 나비 떼가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산딸나무는 온통 흰색 혹은 자주색 꽃으로 뒤덮인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산딸나무를 두산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층층나무과의 낙엽소교목이다.
산지의 숲에서 자란다.
높이 7∼12m이다.
가지가 층층나무처럼 퍼진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타원형으로 길이 5∼12cm, 나비 3.5∼7cm이다.
끝이 뾰족하고 밑은 넓은 쐐기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나 약간 물결 모양이다.
뒷면 맥액(脈腋)에 털이 빽빽이 난다. 곁맥은 4∼5쌍, 잎자루는 길이 3∼7cm이다.
꽃은 양성화로서 6월에 피고 짧은 가지 끝에 두상꽃차례로 모여 달리며,
꽃잎 같은 4개의 하얀 포(苞)로 싸인다.
포조각은 좁은 달걀 모양이며 길이 3∼6cm이다.
꽃잎과 수술은 4개씩이고 암술은 1개이며 20∼30개가 모여서 달린다.
열매는 취과로서 딸기처럼 모여 달리며 10월에 붉은빛으로 익는다.”

가을에 열리는 붉은색 열매가 산딸기를 닮아서 산딸나무로 불리는 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로 목질이 무척 단단합니다.
그래서 쇠박달나무라고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 박달나무, 소리딸나무 등으로 불리고,
제주에서는 ‘틀낭’이라고 부르더군요.

요즘 우리 아파트 곳곳에도 산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낮에 보면 그 모습이 정말로 흰나비 떼로 보이고,
밤에 보면 별들이 쏟아져 내린 듯합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예수의 피 흘림이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다’
하는 것을 연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산딸나무꽃과 관련한 시편들 중에서 제 눈에 맞는 것은 이런 시조, 이런 시입니다.
임태진 시인의 시조 「산딸나무 때죽나무」와,
고정국 시인의 시 「밤에 우는 것들에 대하여」인데,
차례로 읽어보겠습니다.

한낮에도 이 세상에

어두운 일 있나보다

하늘바라기 산딸나무

땅바라기 때죽나무

가난한

어느 마을에

불 올리는

흰 나비 떼

― 임태진, 「산딸나무 때죽나무」 전문


행자승 삭발에 든 듯
온 산이 숨을 죽일 때

낭설처럼 피었다 지는
산딸나무 창백한 꽃잎

순전히 딴 세상 어투의
法名 하나가
내려진다

― 고정국, 「밤에 우는 것들에 대하여」 부분


어떤가요.
“하늘바라기, 불 올리는 흰 나비 떼”(임태진)
“낭설처럼 피었다 지는, 딴 세상 어투의 법명”(고정국)
이런 표현들이야말로 산딸나무를 어떤 편견도 선입견도 없이 바라봤을 때 나올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꽃이 지고 여름꽃이 한창 피어나는 요즘입니다.
꽃들은 그저 자연 그대로 순리 그대로 피었다 지면서 각자도생할 뿐인데,
오직 인간들만이 낭설을 짓고 무리한 삶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 월간 《춤》, 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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