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 觀我 Story

갈대의 초심 - 대나무와 갈대 본문

관아觀我Guanah Story

갈대의 초심 - 대나무와 갈대

Guanah·Hugo 2023. 11. 29. 22:26

출처 :  갈대의 철학 사진에세이 | BAND

 

 

너도 나처럼 흔들리고
나도 너처럼 흔들린다
 

우리는 흔들리는 것이
닮은 듯 서로 비슷하지만
 

너는 사시사철 푸른 갑옷을 입고
나는 한해살이 인생
홑 껍데기 이불 한 채 드리운
벗어버린 전라의 수줍은 모습
네가 부럽지만
 

인생이란?
 

늘 너처럼 변함없는 삶보다
사계절 생동적인
갈대와 같은 삶이
 

어쩌면
나의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너에게로
동화되어 가는 마음이
나는 네가 좋다
 

너의 의미에
희석되지 않는 재 해석
너의 기억 속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떠나는
나는 네가 좋다
 

나는 너의
흔들리는 갈대처럼
다가왔다 다시 멀어져 가는
 

삶을 다해 쓰러져 갈듯이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의연한 너의 모습이
나는 네가 좋다
 

대나무의 비어있는
단단함의 강인함 보다
하얀 살갗을 태양에 그을린 채
 

비어가야만 하는
비워내야만 하는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초연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너의 본모습을
잊히기까지
하얀 설원을 누벼야만 하는
운명으로 태어나는 너를
 

다음생을 위한
너의 마지막 몸부림의 갈채
순수한 갈대가
나는 네가 좋다
 

너도 나처럼
나도 너처럼
 

흔들리는 대쪽의 대나무에
푸른 잎에 붙어있는 인연들 조차
버거워 떨어질 수밖에 없는
대나무의 만남이 아닌
 

흰 눈 내리는 하얀 겨울에
수북이 쌓인
내 머리 결을 닮아가는
이국적인 너의 모습이
나는 네가 좋다
 

광야의 들녘을 누비며 수놓는
광활한 대지에 숨 쉬고
바람의 흔적을 노닐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얀 햇살의 은빛 깃발이 출렁이며
노 젓는 바다의 표류에
파도의 잔여울에 춤추는
너의 희미한 기억 속으로 떠나는
나는 네가 좋다
 

생애 마지막
겨울 찬 바람에
힘없이 꺾이며 부서져 버린
하얀 마음을 간직하기도 전에
 

스스로가 무심의 갈대가 되어
흰 눈 내리는 하얀 머리 위에
또다시 하얀 눈을 맞을라 치는
너의 새하얀 무덤가에 피어난
하얀 마음을 간직한
나는 네가 좋다
 

어느새인가 너는
잔설에 힘없이 쓰러져간
갈대의 마음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애처로움에
그리움의 물결에 파도치는
다음 생의 기다림이 있어
나는 네가 좋다
 

대나무의 흔들리는 마음 앞에
겨울바람에 한 점도 남김없이
털어져 내린
 

대나무의 위용 앞에 무릎 꿇은
나약하고 미약한
존재들의 향연이 없는
나는 네가 좋다
 

내리는 흰 눈의 힘겨운 부딪힘도
스스로 멈춰버리지 못한 채
떨구어진 한 햇살에 녹은 이슬처럼
 

다가서다 멀어져 가는
대나무의 일생이 아닌
나는 네가 좋다
 

어느 누가
대나무의 인연을
우연적인 만남이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멈춰버린 나의 자아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대나무의 일생처럼
닮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의 이중적인 복심의 마음을
대나무 잎처럼
매달리지도 못한 인연들의 삶을
진정 어느 누가
사랑할 수가 있단 말인가?
 

훌훌 훨훨
바람에 털어져 흩날릴
부수적이고 부차원적인
나약한 존재들 앞에서
털어져 떠나가는 것들
미끄러져 떨어지는 인연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털어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을
무엇으로 대변해야만 하는가?
 

잃어버린 갈대의 초심에서
나는 너의
희망적인 존재를 찾고

떠남으로써 갈대의 초심에서
너는 나의 흔들리는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
나는 네가 좋다
 

또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격정적이고 격렬한
마지막 한 점의 몸부림을
함께 춤출수 있어서
나는 네가 좋고

네가 옆에 있어
늘 초원의 마음을 꿈꿀 수 있는
갈대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더욱 네가 좋네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