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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두 배터를 돌아보다(2022. 11. 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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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두 배터를 돌아보다(2022. 11. 09.)

Guanah·Hugo 2022. 11. 10. 19:06

옛 우두 배터

 

우두 배터 역사

우두산에는 고대에 쌓은 토성(土城)의 흔적과 고려시대에 건설한 우두사의 잔해가 남아있다.

우두산에 접한 우두강을 생각하면 배터를 만들고 배를 지어 토성 안으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전기 문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남긴 『우두벌(牛頭原』이란 작품이 있다.

1,400년대에 우두벌 풍경을 읊은 시이다.

그 시에서 '십 리 푸른 물결에 배를 보낸다.'라고 한 구절을 보면 우두강 위아래로 배가 요긴하게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배와 사공

1,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두 배터를 기억하는 우두 주민들의 이야기로 배터 운영 방법을 알 수 있다.

배는 마을 공동 기금으로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마지막에 건조한 철배는 바닥 면적이 3m × 5m 로 어른 30명이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사공은 마을 사람 중 지원을 받아 두 명 뽑았다.

뱃사공은 이른 아침부터 강건너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고 줄을 잡아당기며 배를 움직였기에 노동 강도가 셌다.

사공으로 일 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이었고 주민들이 모여 연장 여부를 결정했는데, 성실하고 운 좋은 사공은 4년을 일하기도 하였다.

사공은 1년 보수로 집집이 한 말씩 모은 곡식을 받았다.

 

활용

우두 주민들에게 우두 배터와 배는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강 건너 하일은 참외와 고구마가 전국으로 유명해 잘 팔렸기에 밭일해서 소득을 얻기 좋았다.사람들은 아침마다 하일로 가기 위해 배터에 모인다.나무를 연료로 쓰던 때라 강 건너 산지에 나무하러 가는 사람들도 배터에 모인다.사공이 배를 몰아 우두 사람들을 강 건너편으로 내려주고 나면 하일 사람들이 배에 오른다.하일 사람들에게 배는 통학 시간과 시내로 나가는 시간을 줄여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종종 마을에 초상이 나면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배에 올라 상여가를 부르며 건너편 장지로 향했다.우두 배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장소였다.

 

마지막

시대가 변화하며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고 도로가 정비되고 자동차가 보급되자 자연스레 배 이용이 줄어들었다.

1,999년 우두교가 준공될 당시에도 배터와 배는 있었다.

배는 얼마 후 분해되어 고물상에 팔렸고, 배터는 2,002년 산책길 공사로 파괴되었다.

 

기억하기

물길 따라 돌담처럼 서 있는 석벽은 1,970년대 사방 사업을 할 때 우두 사람들이 땀 흘려 쌓은 제방이다.종일 일하면 보수는 밀가루 배급표 2장이었다.그 시절 우두 사람들은 늘 강을 접하고 살았다.늦은 봄엔 다슬기를 잡고 여름에는 피서를 즐겼으며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스케이트를 지치고 얼음배를 탔다.해마다 우두강에서 천렵하여 모래밭에서 음식과 술을 나누며 정을 쌓고 어려운 삶을 견뎠다.시간이 지날수록 별별 이유로 강과 사람을 분리하는 일이 잦아졌다.수질 오염을 핑계로 강둑에 울타리를 세운 일이 실례다.옛 우두강과 배터의 모습이 변한 것처럼 옛 우두마을 생활상이 잊히고 있다.이 장소에서 강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기억이 이어지길 바란다.

 

2022년 10월

 

신사우동 주민자치회

 

본 사업은 춘천문화재단 당근책 사업의 일환으로 신사우동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하여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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