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강연균 화가 본문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강연균 화가(1941년~ )는 전남 광산군 서방면 용봉리 용주마을에서 태어나,
1959년 조대부고 미술부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강연균은 하나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주제를 섭렵한 화가이다.
그의 그림 테마는 늘 그의 주위에 있다.
멀리 있는 것, 허구적인 것, 환상적인 것들은 잘 그리질 않는다.

그는 탁월한 소묘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태어났던 남도의 땅과 인물, 정물 등을 수채로 많이 그려왔다.
그가 그려온 땅은 그 땅의 고마움과 그 땅에 밴 농부의 땀과 그 땅이 주는 역사적 의미 까지 느끼게 한다.

이를 두고 혹자는 강연균의 '고향의식'이라 명명한다.
이때 고향의식이란 단순히 탯줄을 묻은 지리적 고향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향토적 서정을 기초로 사회의식과 현실감정이 깃든 사실주의로,
민족적 정서를 품은 회화로 승화 발전된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연균은 한국적 또는 동양적 사실주의를 부단히 추구하고 있는 작가이다.
▲포옹, 강연균.
▲사랑, 강연균.
▲하늘과 땅 사이 I , 강연균, 1981년.
▲하늘과 땅 사이 II , 강연균, 1984년.
*봉숭아물 들이던 젊음이 없었을 것 같은 어머니
강연균은 ‘한국의 수채화’ 하면 바로 떠오르는 화가다.
*봉숭아물 들이던 젊음이 없었을 것 같은 어머니
강연균은 ‘한국의 수채화’ 하면 바로 떠오르는 화가다.
그의 그림에서는 남도 지방의 흙 색깔이 그대로 묻어난다.
고은 시인은 “강연균에게는 무등산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강연균의 작품 중에 민중미술에 친근한 사람들에게는,
강연균의 작품 중에 민중미술에 친근한 사람들에게는,
광주 5 · 18민주항쟁을 다룬 〈하늘과 땅 사이〉 연작이,
일반 미술계에서는 그의 매력적인 누드 연작이나 주옥같은 풍경화들이 떠오르겠지만,
〈시장 사람들〉도 그 작품들 못지않게 인상 깊은 작품이다.
▲<시장 사람들> 강연균, 1999년.
그림은 시골의 5일장쯤 되는 시장 풍경을 담고 있다.
그림은 시골의 5일장쯤 되는 시장 풍경을 담고 있다.
시장의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털목도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한겨울인 듯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노점 국밥집 화로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나 보다.
김이 피어오르는 솥 주위에 손을 대면 실제로 내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김이 피어오르는 솥 주위에 손을 대면 실제로 내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특히 눈길을 확 잡아 끈 것은 국밥을 뜨고 있는 할머니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또 한 분의 할머니다.
할머니들의 얼굴이며 손에 패인 주름이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이 그림을 보면서 거의 동시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지 나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지금 40~50대 사람들이면,
대부분 ‘우리 어머니’라고 느끼게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그림 속에서 ‘우리들의 어머니’는 여자라는 사실도,
이 그림 속에서 ‘우리들의 어머니’는 여자라는 사실도,
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오로지 처음부터 ‘어머니’였을 것만 같다.
옆모습은 마치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던 젊은 시절이 전혀 없었던 것 같은,
그리고 첫사랑에 가슴 울렁거린 적도 없었던 것 같은, 그런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살림,
끊임없이 보채는 많은 자식들,
집안 사정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무정한 남편 때문에,
마음은 이미 돌덩이가 됐을 텐데······.
하지만 그이에게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채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헤아리는 현실만이 놓여 있었다.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눈물마저 말라 소금기가 버적버적 될 것 같은 우리들의 어머니.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눈물마저 말라 소금기가 버적버적 될 것 같은 우리들의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밥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 만큼이나 따스한 속정이 묻어 나고 있다.
▲할머니, 강연균.
▲눈물의 뿌리가 보일 때까지, 강연균, 1986년.
▲포구의 할머니, 강연균, 1988년.
강연균은 수채화가로 알려져 있다.
강연균은 수채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싼 유화 물감을 살 수가 없어서 수채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쩌다 수채화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화가가 겪은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은,
그로 하여금 같은 사정에 있는 이들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연균 화가
“땅만 해도 버려진 땅에 애착이 가고 벌겋게 보이는 황토 언덕이나 무너져 버린 산의 언덕,
“땅만 해도 버려진 땅에 애착이 가고 벌겋게 보이는 황토 언덕이나 무너져 버린 산의 언덕,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아카시아 뿌리,
그런 것들을 좋아했지요.
도시 주변의 빈민촌의 황폐되어 가는 농촌의 모습,
도시 주변의 빈민촌의 황폐되어 가는 농촌의 모습,
그리고 우시장, 탄광촌, 포구 마을, 선창가, 조선소, 무등산, 남도의 빛,
고부 가는 길 등을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개괄하여 열심히 재현시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An Old Woman], 강연균.
강연균은 산이며 들, 하천, 하다못해 밤톨만 한 밭뙈기 하나조차도,
강연균은 산이며 들, 하천, 하다못해 밤톨만 한 밭뙈기 하나조차도,
그냥 자연을 관찰하는 제3자의 눈으로 보질 않는다.
“1980년 광주 시련을 치르면서 난 소위 역사의식을 깨우칠 수 있었고 ‘민중’을 껴안게 되었다.
“1980년 광주 시련을 치르면서 난 소위 역사의식을 깨우칠 수 있었고 ‘민중’을 껴안게 되었다.
어려운 사회과학에서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역사를 배웠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그림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숨결이 느껴진다.
▲포구의 오후, 강연균.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갯가 아낙네나 행상 할머니는,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갯가 아낙네나 행상 할머니는,
70~80년대에 언제나 삶에서 마주쳤던 친근한 이웃 같기만 하다.
〈시장 사람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옷 주름과 무늬,
손등의 잔주름 하나까지도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어찌 보면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림을 우리 곁에 다가와 앉게 만든다.
---우리들의 어머니/ 미술관 옆 인문학 | 박홍순 | 서해문집
▲어머니 [Mother], 강연균.
▲초원 위의 누드, 강연균.
▲포구의 누드, 강연균.
▲여인 [A Woman], 강연균.
▲강연균 서양화가 (1941년~ ) 광주광역시
1998 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 위원장
1998 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 위원장
/ 1997 제2회 광주비엔날레 사무차장
/ 1996 ~ 중국 노신미술대학 명예교수
/ 1995 ~ 1996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 1993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 1992 ~ 1995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
/ 1983 ~ 1984 전남대학교 강사
/ 1969 ~ 1975 전남일보 문화부 기자.



앵두꽃, 강연균.
산수유 큰나무, 강연균(1941년~ )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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