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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페로프 (Vasily Perov) (1833~1882, 국적 : 러시아) 본문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바실리 페로프는 유형에 처해진 급진 귀족의 서자로서 모스크바의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성직자의 타락을 폭로한 <부활절의 마을 십자가 행렬>의 통렬한 풍자로 물의를 일으켰고,
성직자의 타락을 폭로한 <부활절의 마을 십자가 행렬>의 통렬한 풍자로 물의를 일으켰고,
1862∼1864년의 유럽 체류 후의 일련의 작품 <트로이카> <들판의 환송> 등에도 사회적 항의의 자세가 역력하다.
크램스코이와 레핀 등의 젊은 미술가 그룹이 반관전(反官展)의 ‘이동파(移動派)’를 결성했을 때,
크램스코이와 레핀 등의 젊은 미술가 그룹이 반관전(反官展)의 ‘이동파(移動派)’를 결성했을 때,
선배 화가로서 몇 년 동안(1871∼1877) 그들과 함께 행동하였다.
도스토옙스키, A.오스트로프스키 등의 초상화도 주요작품으로 꼽힌다.
도스토옙스키, A.오스트로프스키 등의 초상화도 주요작품으로 꼽힌다.
(두산백과)
The Hunters at Rest, 1871년
마을의 부활절 행렬 Easter Procession in a Village, 1861년
First Christians in Kiev, 1880년
Vendor of Song Books, 1864년
A Scene at the Railroad, 1868
The Bird-Catcher, 1870
Sleeping Children, 1870
Savoyard,1864년
The Last Tavern at the City Gates, 1868년
마지막 여행 Last Journey, 1865년
겟세마네에 계신 그리스도 Christ in Gethsemane, 1878년
Alexander Ostrovsky, 1871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Alexandr Ostrovsky, 1823년~1886년) 는 러시아의 극작가이다.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Alexandr Ostrovsky, 1823년~1886년) 는 러시아의 극작가이다.
연극에 전념한 러시아 최초의 작가로 러시아의 국민 연극을 확립한 러시아 최대의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법률을 배우고 졸업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법률을 배우고 졸업하였으며,
약 50여 편의 희곡을 발표해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다.
체호프 이전의 러시아 연극계를 지배하였으며, 주로 상인 계급의 생활을 그렸다.
Portrait of Fyodor Dostoyevsky, 1872년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는,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는,
도스토옙스키의 “어린아이의 눈물 속에 담긴 세상의 불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중 제5편 Pro와 Contra)란 주제를 심화시킨 그림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나는 어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하지 않겠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나는 어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하지 않겠어.
그들은 선악과를 먹었으니까 빌어먹을 악마가 그들을 죄다 잡아가든 말든 될 대로 되라지만,
하지만 아이들, 아이들은!”이라고 순수한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토로한다.
이반(카라마조프가의 맏형)은,
이반(카라마조프가의 맏형)은,
이 장에서 여러 종류의 아이들의 학대에 대해 논하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역설하고 있다.
그의 서사시 〈대심문관의 전설〉도 비열하고 나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권위, 기적, 빵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트로이카 Troika. Apprentices Fetch Water, 1866년
페로프는 이 그림에서 도제로 일하는 아이들이 물동이가 담긴 썰매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렸다.
페로프는 이 그림에서 도제로 일하는 아이들이 물동이가 담긴 썰매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렸다.
남루한 옷과 지친 표정의 아이들이 안쓰럽다.
오른 쪽의 아이는 거의 쓰러질 듯하고, 왼쪽의 소녀는 잠도 제대로 못 잔 듯 반쯤 눈을 감은 표정이다.
오른 쪽의 아이는 거의 쓰러질 듯하고, 왼쪽의 소녀는 잠도 제대로 못 잔 듯 반쯤 눈을 감은 표정이다.
가운데 말이 중심말의 역할을 하듯,
가운데 아이는 가슴을 펴서 내밀며 힘을 내어 앞으로 가고 있다.
페로프는 이 그림의 제목을 ‘트로이카’로 붙였다.
러시아를 이끌어가는 상징적 의미의 삼두마차(트로이카)라는 이름을 이 아이들에게 붙여준 것이다.
1860년대 러시아는 대혼란의 시기였지만,
페로프는 이 그림의 제목을 ‘트로이카’로 붙였다.
러시아를 이끌어가는 상징적 의미의 삼두마차(트로이카)라는 이름을 이 아이들에게 붙여준 것이다.
1860년대 러시아는 대혼란의 시기였지만,
어쨌든 힘겹고 지친 그런 러시아를 이끌고 나갈 원동력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페로프는 ‘트로이카’란 제목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조각의 빵을 위한 고단한 수고는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림으로 읽는 러시아 | 김은희 | 이담북스
Nikita Pustosviat. Dispute on the Confession of Faith, 1881
Tea-Party in Mytishchi near Moscow, 1862년
Grandfather and grandson, 1871년
시골 마을의 설교 Sermon in a Village, 1861년
Vasily Perov, Hunting for wild boar.
Vasily Perov, Regular pool, 1865
묘지의 고아 Orphans in the cemetery, 1864년
Solitary Guitarist, 1865년
Parisian rag-picker, 1864년
들판에서 방황하다 Wandering in a field, 1879년
Fishers (priest, deacon and seminarian), 1879년
익사 한 여자 (익사 발견) A Drowned Woman (Found Drowned), 1867년
A Governess Arriving at a Merchant's House.
Pugachev's Judgement, 1879
Commissary of Rural Police Investigating, 1857년
Organ Grinder, 1863년
Self-Educating Caretaker, 1868년
Scene on a Grave, 1859년
Old Parents Visiting the Grave of Their Son, 1874년
Yaroslavna's Lament, 1881년
Lent Monday, 1866년
Monastic Refectory, 1865년~1876년
Celebration in the outskirts of Paris (in Montmartre), 1864년
Evening on Holy Saturday, 1873
Return of the peasants from a funeral in the winter, 1880년
*이동파 (Peredvizhniki, 移動派)
이동파는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아카데미의 제한적이고 외국지향적인 고전주의를 거부하고,
*이동파 (Peredvizhniki, 移動派)
이동파는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아카데미의 제한적이고 외국지향적인 고전주의를 거부하고,
일반 대중을 위한 새로운 사실주의·자연주의 미술을 형성했다.
그들은 미술이 인도적이며 사회적인 이상을 나타내는 유용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들은 미술이 인도적이며 사회적인 이상을 나타내는 유용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러시아의 중산층 및 농민의 생활에서 따온 감동적인 주제들을 사실적이고 알아보기 쉽게 묘사했다.
▲(Peredvizhniki), 러시아의 화가 그룹, 화가들의 단체 사진
그들은 1870년에 '이동전시협회'를 결성하고,
그들은 1870년에 '이동전시협회'를 결성하고,
대중들에게 진정한 미술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가지고 순회전시회를 다녔다.
이반 크람스코이, 일랴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바실리 페로프, 바실리 페레슈차긴 등,
이반 크람스코이, 일랴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바실리 페로프, 바실리 페레슈차긴 등,
1870, 1880년대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이 이 그룹의 회원이었다.
이 운동은 거의 30년 동안 러시아 미술을 지배했으며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형이 되었다.
Self-Portrait, 1851
Portrait of Vasily Perov.
*19세기 러시아에선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에도,
*19세기 러시아에선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에도,
그림을 든 채 열차로 시베리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림은 황제와 귀족 등 지배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며
"가난한 농민도, 노예도 그림을 감상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그림은 황제와 귀족 등 지배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며
"가난한 농민도, 노예도 그림을 감상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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