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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아킬레우스(Achilles) 본문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아킬레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도입부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된다.
그는 테살리아 지방의 퓌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요정 테티스의 아들이다.
프란츠 마츠, 〈트로이 성문 앞에서 헥토르의 시신을 끌고 가는 아킬레우스〉 1892.
친구를 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화살은 헥토르를 겨누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의 시신을 욕보인다.
<헥토르를 찌르는 아킬레우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30년~1635년. 보이만스 판 보닌헨 미술관.
<파트로클로스 발 밑에 헥토르의 시신을 내려놓는 아킬레우스> 조제프 브누아 쉬베
<일리아드> 등장인물, 좌부터
→ 메넬라오스(헬레네의 남편)/ 파리스(트로이의 왕자)/ 디오메데스(그리스 연합군 지휘자)/ 오디세우스/ 네스트로(그리스 연합군)/ 아킬레우스(일리아스 주인공)/ 아가멤논(그리스 총사령관)
Peter Paul Rubens, Thetis receiving armour for Achilles from Hephaestus.
*최고의 용사로 자라는 아킬레우스
트로이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최고의 용사로 자라는 아킬레우스
트로이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단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킬레우스이다.
그는 앞에서 소개했던 최초로 인간과 결혼했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그 최초의 인간) 사이에 태어났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 코르넬리스 반 할렘, 1593년작, 할렘의 프란스 할스 박물관.
<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30~1635년경.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자,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자,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 판단하여 그를 스틱스 강물에 담갔다.
예로부터 태어나자마자 이 강물에 몸을 담그면,
불사신(不死身)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테티스는 발뒤꿈치만은 물에 담그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이는 훗날,
완전한 인간이었던 아킬레우스의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만다.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는 테티스> 요한 하인리히 휘슬리,
1803년,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테티스는 또한 아킬레우스를 최고의 영웅으로 키우기 위해,
테티스는 또한 아킬레우스를 최고의 영웅으로 키우기 위해,
당시 위대한 선생으로 알려졌던 켄타우로스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교육을 받게 했다.
이렇게 하여 아킬레우스는 모든 방면에 뛰어난 최고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가 트로이를 침공하기 위해 용사들을 소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에 의해 교육받는 아킬레우스> 장 밥티스트 레뇨 남작,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테티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궁리를 하였다.
테티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궁리를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죽는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아킬레우스를 여자로 변장시켜 스키로스 섬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숨겼다.
Bray Achilles discovered by Ulysses.
한편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던,
한편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던,
장본인인 오디세우스는 용사들을 모집하러 다니던 중,
아킬레우스가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할 수 없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아킬레우스가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오디세우스는 머리를 써 리코메데스 왕의 딸들에게 선물이라며 여러 가지 보석과 검을 내놓았다.
<리코메데스의 딸중에서 아킬레우스를 알아본 오디세우스> 프란츠 프란켄 2세, 17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리코메데스 딸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를 발견한 오디세우스> 루이 고피에
모두가 보석에만 눈이 팔려 있는데,
모두가 보석에만 눈이 팔려 있는데,
아킬레우스만은 검을 집음으로써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 들키고 말았다.
한평생 영웅으로 살고자 했던 아킬레우스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곧 어머니를 설득 시키고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 것을 결심한다.
이탈리아 화파, <카소네 패널: 아가멤논 앞의 브리세이스> 16세기경.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동맹군의 총지휘관으로서 100척의 전함이 그의 지휘 하에 있었다고 한다.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아가멤논의 사절단> 앵그르
불거진 아가멤논과의 갈등
드디어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고,
불거진 아가멤논과의 갈등
드디어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고,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의 영웅을 거느린 그리스군은 트로이로 진격하였다.
초반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곳곳에서 승리하여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이때 포로로 잡혀온 '브리세이스'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헥토르를 앞세운 트로이군도 만만치 않았으며,
밀고 밀리는 전쟁은 결국 장기전으로 돌입하였다.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아킬레우스의 분노> 아가멤논에 칼을 뽑으려는 아킬레우스를 아테네가 말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스군 내부에 자그마한 분열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스군 내부에 자그마한 분열이 일어났다.
바로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간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당시 아가멤논은 포로로 잡혀온 아폴론 신전을 지키는 사제의 딸에게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 사제가 딸을 돌려 달라고 아무리 간청해도 이를 거절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 사제가 딸을 돌려 달라고 아무리 간청해도 이를 거절할 뿐이었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사제는 아폴론 신에게 복수해 달라고 기도를 올렸고,
아폴론 신은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돌게 했다.
<아가멤논에게 분노하는 아킬레우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멤논이 여자에게만 빠져 있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멤논이 여자에게만 빠져 있자,
이를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사제의 딸을 돌려주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아가멤논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어 아킬레우스의 부아를 돋우었다.
"대신 너의 애인 브리세이스를 나에게 바쳐라!"
이 말은 아킬레우스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대신 너의 애인 브리세이스를 나에게 바쳐라!"
이 말은 아킬레우스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아킬레우스는 곧바로 자신은 이 전쟁에서 손을 떼겠다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아킬레우스의 정부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인도하는 에우리바테스와 탈티비오스>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757년, 빌라 발마라나.
브리세이스
아킬레우스가 리르네소스를 공격하여 얻은 여종이자 사랑한 여인이다.
브리세이스
아킬레우스가 리르네소스를 공격하여 얻은 여종이자 사랑한 여인이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요구하자 출정을 않다가 친구의 죽음으로 다시 전투에 나선다.
이후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다시 돌려주었다.
<헥토르와 싸워 이기는 아킬레우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30년~1632년,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헥토르를 물리치다
한편 하늘에서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신이 있었으니,
*헥토르를 물리치다
한편 하늘에서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신이 있었으니,
바로 제우스이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매우 아꼈기에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마침 한때 그가 사랑했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의 눈물어린 호소도 있던 참이었다.
제우스는 즉시 아가멤논을 응징하기 위해 전세를 트로이 쪽으로 기울도록 힘을 불어넣었다.
<파트로클로스의 주검 위로 눈물을 흘리는 브리세이스> 장 베네 2세(Jean Benner II), 19세기경, 느무르 성 미술관.
이후로 팽팽했던 트로이 전쟁의 전세는 갑자기 트로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로 팽팽했던 트로이 전쟁의 전세는 갑자기 트로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Patroklos)가,
자신이 아킬레우스로 변장하여 싸움에 나서겠다며 아킬레우스가 선물로 줬던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다.
그러나 상대 진영에는 트로이 최고의 영웅 헥토르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 진영에는 트로이 최고의 영웅 헥토르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의 칼에 단숨에 나가 떨어졌고,
헥토르는 그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빼앗아갔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킬레우스> 개빈 해밀턴의 1763년 작.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왜냐하면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단순한 친구가 아닌 그 이상으로 사랑했던 친구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즉시 아가멤논에게로 달려갔다.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떠나는 아킬레우스> 샤를 앙투안 쿠아펠, 17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내가 직접 헥토르의 목을 치겠습니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꽉 찬 아킬레우스는 거의 미친 듯이 트로이 병사들을 이리저리 칼로 베었다.
"내가 직접 헥토르의 목을 치겠습니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꽉 찬 아킬레우스는 거의 미친 듯이 트로이 병사들을 이리저리 칼로 베었다.
미친 듯이 날뛰는 아킬레우스를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었다.
이제 오직 아킬레우스의 상대는 헥토르뿐이었다.
헥토르가 있는 성벽 아래까지 온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불렀다.
헥토르는 이를 피하지 않고 순순히 나왔고,
이윽고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한치를 알 수 없는 두 영웅 간의 대결이었다.
한치를 알 수 없는 두 영웅 간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로 꽉 찬 아킬레우스의 광기를 헥토르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아킬레우스가 찌른 창이 헥토르의 목에 명중함으로써 승부는 끝이 났다.
말에서 떨어진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보며 최후의 한마디를 남겼다.
프란츠 마츠, 〈트로이 성문 앞에서 헥토르의 시신을 끌고 가는 아킬레우스〉 1892
"승리를 축하한다.
"승리를 축하한다.
그러나 너도 나처럼 곧 죽게 될 것이다."
헥토르의 말에 발끈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말에 발끈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묶어 자기 진영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죽은 친구의 넋을 위로한다며,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로 헥토르의 시체를 빙빙 끌고 다녔다.
< 아킬레우스에게 무릎 꿇고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하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러던 어느 날 밤,
트로이의 왕이 갑자기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자신의 아들 유해를 돌려달라며 눈물로 애원했다.
아무리 적국의 왕이었지만,
일개 장수에 불과한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로 비는 왕 앞에,
아킬레우스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주었다.
<파리스의 화살을 맞은 아킬레우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킬레우스의 최후
이후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그리스군이 승승장구하였다.
아킬레우스의 최후
이후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그리스군이 승승장구하였다.
아킬레우스는 가는 곳마다 적군을 물리치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아킬레우스도 트로이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과,
헥토르가 마지막으로 죽으면서 한 말에 늘 불길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Dying Achilles (Achilleas thniskon)
그런 가운데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그리스군이 드디어 트로이의 성벽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그리스군이 드디어 트로이의 성벽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때 성벽 위에는 이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파리스가 아킬레우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활을 겨누어 아킬레우스에게 쏘았다.
화살이 빗나갔는가 싶었으나 공교롭게도 그 화살은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급소였던 발뒤꿈치에 명중하고 말았다.
화살이 빗나갔는가 싶었으나 공교롭게도 그 화살은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급소였던 발뒤꿈치에 명중하고 말았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허망하게 전사함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세계의 신화 | 아침나무 | (주)삼양미디어
아킬레우스의 무덤 앞의 알렉산더 대왕 [Alexandre le Grand devant le tombeau d'Achille],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 18세기경, 나르본 미술역사박물관.
아킬레우스의 발에 매달린 프리아모스 [Priam aux pieds d'Achille], 쥘 바스티앙 르파주, 19세기경, 릴 미술관.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 Alexander Andreyevich Ivanov, 1824년.
트로이를 물려받을 장남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트로이를 물려받을 장남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전차에 끌려 다니며 모욕을 당하자,
프리아모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아카이아인들의 진영으로 몰래 가서,
아킬레우스에게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청한다.
아킬레우스는 이러한 프리아모스의 부성애에 감동을 받아,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주고 장례를 치르는 기간 동안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되찾아오는 메넬라오스> 피렌체의 로지아 회랑
<헥토르의 시신 앞에서 슬픔에 잠긴 안드로마케> 자크 루이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자크 루이 다비드
Achilles and Agamemnon by Gottlieb Schick (1801)
The Wrath of Achilles, by François-Léon Benouville (1847; Musée Fabre)
The Education of Achilles (c. 1772), by James Barry (Yale Center for British Art)
The Education of Achilles, by Eugène Delacroix, pastel on paper, c. 1862 (Getty Center, Los Angeles)
Chiron teaching Achilles how to play the lyre, Roman fresco from Herculaneum, 1st century AD
Achilles and the Nereid Cymothoe, Attic red-figure kantharos from Volci
(Cabinet des Médailles, Bibliothèque nationale, Paris)
Achilles and Penthesilea fighting, Lucanian red-figure bell-krater, late 5th century BC
Achilles tending Patroclus wounded by an arrow, Attic red-figure kylix, c. 500 BC
(Altes Museum, Berlin)
Achilles and Ajax playing the board game petteia, black-figure oinochoe, c. 530 BC
(Capitoline Museums, Rome)
Roman statue of a man with the dead body of a boy, identified as Achilles and Troilus, 2nd century AD
(Naples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Achilles on Skyros, where – according to the Achilleid – Odysseus discovers him dressed as a woman and hiding among the princesses of the royal court, late Roman mosaic from La Olmeda, Spain, 4th-5th centuries AD
Ancient Greek polychromatic pottery painting (dating to c. 300 BC) of Achilles killing the Ethiopian king Memnon, who fought as an ally of the Trojans during the Troj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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