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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이야기

Guanah·Hugo 2023. 2. 5. 01:05

출처 : 모야모 매거진 웃는소나무(두물머리)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 살아있는 화석, 가을 색깔을 대표하는 노란 단풍, 덕수궁 돌담길, 도심 가로수의 대표 수종, 고급 술안주 재료, 열매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 · · 은행나무하면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 들이다.

 

은행(銀杏)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은빛 살구"이다.

열매의 모양과 색깔은 노란 살구를 닮았는데, 과육을 제거하고 나면 씨앗 껍질은 하얀색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놀랍게도 은행나무는 문 - 강 - 목 - 과 - 속 - 종으로 이어지는 식물분류 체계의 전단계를 아울러 단 하나의 품종밖에 없다.

이 같은 사례는 지구상에서 딱 둘 '은행나무', '소철' 뿐이다.

다시 말해 수억 년 전 중생대부터 한 가지의 품종만으로 진화를 거쳐왔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더 상식과는 달리 은행나무는 활엽수가 아닌 침엽수라는 것이다.

씨방이 없어 종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겉씨에다 잎맥이 그물망이 아닌 나란히맥 구조인 것이 그 증거이다.

실제로는 뾰족한 잎 여러 개가 붙어있는 구조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은행나무는 매우 희귀한 방법으로 수정을 해 열매를 맺는다.

암수딴그루이면서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운반한다는 측면에서는 일종의 '풍매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착륙하게 되면 정자를 만들고, 정자가 스스로 움직여 수정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꼬리가 달린 정자가 헤엄을 쳐 암꽃의 난자에 접근한다.

이는 동물의 경우와도 흡사하지만, 바다의 식물이 육지로 올라와서 적응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음을 반증한다.

현재도 해조류들은 물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을 한다.

이 같이 수정 방식에서 해조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례는 소철이나 고사리, 이끼 같은 육상의 원시식물들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수정을 하는 방식이 그러하므로 은행나무의 꽃은 외모가 두드러지지 않은 데다 잎과 동일한 초록색이다 보니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5월 초순경에 피는 꽃의 모양은 꽃잎이나 꽃받침도 없이 꽃술 부분만 달랑 갖추고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은행나무 암꽃 vs 수꽃)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에서도 여느 식물과는 사뭇 다르다.

바람이나 곤충, 새, 또는 동물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은행나무는 거꾸로 가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과육에서 강력한 냄새를 풍기게 해 특정 동물들만 접근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천만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 특정한 동물들은 모두 멸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은행나무는 동일한 전략을 고수해 왔고, 그러다 보니 자신도 거의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의외의 구원자가 생겼다.

바로 인간이다.

 

영리한 인간들은 일찌감치 은행나무의 탁월한 약효 성분을 파악했고 먹거리로도 활용했다.

실제로 은행나무에는 병충해가 전혀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잎에는 수억 년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 된 방충 - 항균 - 항부패 - 항산화 - 혈류순환촉진 성분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게다가 풍성한 그늘과 멋진 단풍과 우수한 대기오염 정화능력 등의 이유 때문에 정원수와 가로수로 활용되면서 삽목에 의한 대량번식을 하게 된 것이다.

진화를 거부한 씨앗 전파 전략 때문에 비록 자생지는 모두 사라졌지만, 인간에 의존해 오히려 더 번성하게 된 것이다.

흡사 수국이 생식 능력을 잃었음에도 인간이 그 역할을 해 준 것처럼 · · ·

 

흥미롭게도 은행나무는 열매에서 풍기는 냄새가 결국에는 종족 번식에 성공하는 비장의 무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분명 인간에게도 악취는 악취다.

가을 단풍이 들 무렵이면 과육이 파괴된 열매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지자체마다 홍역을 치른다.

도로변에 떨어진 열매가 자동차에 깔리거나 자칫 밟기라도 하면 신발에 묻어 집이나 회사에서 까지 냄새를 풍겨 자칫 오해를 사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런데 은행 열매 냄새가 과거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수년 전부터 부쩍 이슈가 된 이유가 뭘까?

바로 은행나무의 결실 수령 때문이다.

나이 서른 살이 되어야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지난 88 올림픽 이후 유망 가로수로 추천이 되면서 각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녀석들이 이제 하나씩 말썽을 부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은행나무는 암수가 딴 그루이므로 암나무만 제거하면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꽃을 피워야 암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어내고 다른 가로수로 교체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들다 보니 손을 놓고 있던 차에 희소식이 날아왔다.

산림과학연구소에서 나무의 DNA를 추출해 1년생 묘목의 성별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를 낸 것이다.

혹여라도 페미니스트들이 반대할지는 모르지만, 간택받는 수나무들이 자라서 기존의 암나무를 모두 대체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겠지만 악취로 인해 구박받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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