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바람난 여인 얼레지 이야기 본문
출처 : 모야모 매거진 웃는소나무(두물머리)
신록의 향연이 막 시작되는 초봄, 겨우내 쌓인 두툼한 낙엽 이불 위에서 자못 요염한 자태로 불쑥 나타나는 야생화가 있다.
만개한 꽃잎이 흡사 치마를 훌렁 걷어붙인 모습이라 하여 "바람난 여인"이라는 누명스러운 꽃말이 붙여졌다.
게다가 알룩 무늬가 있는 넓은 잎은 널브러진 여체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연상시킨 데나 뭐나...
여하튼 우리 땅의 야생화 중에서 유일하게 에로틱한 연상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꽃이 있다.
이름도 좀 얄궂은 얼레지가 그 장본인이다.
얼레지는 "얼룩"의 옛말인데, 자신의 이름부터가 불만스러운 얼레지의 볼멘 항변은 이러하다.
"잎과 꽃잎에 무늬가 있는 것은 곤충들의 눈길을 끌기 위함이요. 꽃잎이 뒤로 젖혀지는 것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수정을 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요. 햇빛이 있는 시간에만 꽃잎을 열고 흐린 날이나 해가 지면 닫는 것은 수술과 암술을 가급적 싱싱한 상태로 보호하기 위함이요"이다.
다른 봄 야생화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얼레지의 경우도 화단이나 화분에서 기르기가 매우 까다롭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 상태에서는 꽃을 피우기까지의 환경과 꽃이 진 후의 그것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꽃이 질 무렵이면 주변 나무들의 잎들이 모두 나와 그늘을 만들게 되면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
씨앗으로 번식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여느 야생화들과는 달리 채종후 곧바로 파종하더라도 발아율이 매우 낮고, 자칫 일정기간 이후에 파종할 경우에는 깊은 잠에 빠진 씨앗을 두드려 깨워야 한다.
약 석 달이 걸리는 3단계 저온처리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헐!
발아에 성공하더라도 꽃을 보려면 4 ~ 5년은 기다려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얼레지가 씨앗을 전파해 서식지를 넓혀가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개미를 이용하는 것인데, "엘라이오좀(Eliaozome)"이라 불리는 일종의 당분 덩어리를 묻혀 떨어뜨린다.
개미가 집으로 물고 가다가 휴식을 하면서 도시락으로 까먹고 씨앗은 버리게 된다.
이를테면 개미에게 택배비를 지불하는 셈인데, 흥미로운 것은 개미의 행동반경에 따라 일정 간격을 두고 버려진 씨앗이 발아해 군락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얼레지뿐만 아니라 깽깽이풀 - 제비꽃 - 금낭화 - 애기똥풀 - 은엽아카시아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씨앗을 전파한다.
(위 사진 : 토종 얼레지)
얼레지는 독립된 일가를 이루고 있지만 백합 집안의 직계 자손이다.
전 세계적으로 20여 품종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국내에도 변이종인 흰색을 포함해 두 개의 품종이 있다.
얼레지의 별명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발상의 차이가 재미있다.
뒤로 젖혀진 꽃잎 모양으로 가재발을 떠올린 "가재무릇"과 개의 이빨을 닮았다 한 "Dog-toothed Violet"이 그것이다.
얼레지는 생육특성이 워낙 까다로워서 상당수의 원종들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환경적응력을 높인 개량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개량종(서양 얼레지)은 구근으로 곧바로 꽃을 보고 쉽게 번식할 수가 있어 인기가 높다.
---- 자생종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흰 얼레지(E. japonicum for. album T.B.Lee)
---- 도입종
서양 얼레지 분홍(Erythronium dens-canis)
서양얼레지 흰색(Erythronium californicum)
서양얼레지 노랑(Erythronium californicum)
서양 얼레지_흰색(White Beauty)
서양 얼레지_노랑(Pagoda)
얼레지 구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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