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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질경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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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질경이

Guanah·Hugo 2024. 11. 13. 07:11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들어보셨겠지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사자성어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면 “사마귀(당랑, 螳螂)가 수레바퀴를 막는다(거철, 拒轍)”입니다.
흔히 제 능력과 분수와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덤벼드는 무모함을 꼬집을 때 쓰거나 혹은 자기를 압도하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용맹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이 말을 쓰기도 하지요.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를 가던 중인데 사마귀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를 막고 서 있는 모습(당랑당거철, 螳螂當車轍,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맞섬)을 보고 장공이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 비길 데 없는 용사였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수레를 돌려 피해 갔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갑자기 웬 사마귀 얘기를 할까 궁금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실은 오늘의 주제인 질경이라는 식물이 꼭 사마귀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무모하거나 용감하거나, 질경이가 꼭 그런 느낌이거든요.

질경이를 아시나요?
당연히 아실 테지요. 질경이를 모를 수는 없지요.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풀, 아니 밟힐수록 더욱 힘이 세지는 풀, 바퀴가 밟으면 그 바퀴에 씨앗을 붙여 멀디먼 곳까지 자신의 종자를 기어이 번식시키고야 마는 ‘질기디질긴 목숨’에서 질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풀.
수레바퀴에 밟히고 또 밟혀서 땅이 패고 또 패어도 그 패인 자리에서 또다시 살아난다 해서 ‘차전채(車前菜)’라고도 불리는 풀.
그 질경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시 한 편 읽고 가겠습니다.
강신용 시인의 「질경이」라는 시입니다.


나를 밟아다오
온종일 길거리에 앉아 있을 테니
해가 떠도 좋고 어둠이 와도 좋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불사조 되어
바위처럼 그리움 안고 살아갈 테니
사는 것이 서럽고 힘들어도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를 테니
― 강신용, 「질경이」 전문


질경이를 화자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어떤가요?
질경이라는 이름, 차전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까?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불사조 되겠다는 저 강인한 의지를 보세요.
사실 오늘은 제가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질경이가 어떤 식물인지,
다음의 두 편의 시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될 겁니다.
그러니 시가 조금 길지만 두 편 모두 전문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질경이가 어떤 식물인지 확실히 아시게 될 겁니다.


내가 오가는 흙길은 질경이가 점령했지
아무리 밟혀도 끄떡없지
밟히기 위해 태어났나 봐

질겨서 질경이가 된 게 틀림없어

참 신기하지?
질경이는 밟혀야 살아

밟히는 게 더 속이 편한 걸까
남을 밟는 건 영혼 한 귀퉁이를 도려내는 일

입시학원 팀장 시절 인기 없던 동료 강사를
내 손으로 해고하고 난 후부터였을까

된통 병이 났지
견딜 만하다고 믿었던 삶이 무너졌어
내가 나를 속이고 살았나 봐

질경이를 밟고 걸을 때마다
왜 밟히고 사는지 미안하고 딱해지곤 해

근데 알고 있니?
질경이는 원래 이름이 길경이래
길 위에 사는 풀이라 길경이

잡아먹을 듯 키재기하며 경쟁하는 풀들을 피해
팍팍한 길바닥 위로 나온 거지
길 위는 블루오션이거든

도시를 피해 들어온 작은 골짜기가 내겐 블루오션이야
돌밭을 일궈야 먹고사는 흙바닥 생이 내겐 숨구멍이지

어찌나 잎을 질기게 단련시켰는지
밟혀서 찢긴 구멍 한두 개쯤은 별것도 아니지

밟혀야 사는 생도 있어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는 생이 있어
― 최정, 「질경이 밟기」 전문


질경이도 꽃을 피우냐고요
바람이 구름을 딛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백산 정상에서
꽃 안 피우고 살아남는 게 어디 있나요
노루오줌도 찰랑찰랑 지린 꽃을 피우고
심지어 개불알꽃까지 질세라 덜렁덜렁
망태를 흔드는데요 사실 말이지
그렇게 아웅대며 서둘 필요는 없거든요
밟힐 때마다 새파랗게 살아남아
가끔 뿌리까지 헹궈주는 바람을 끼고
소백산 허리에 닥지닥지 달라붙은
저를 보신 적이 있잖아요
실직한 당신의 낡은 등산화 밑에서도
이렇게 구겨진 날을 밀어 올리잖아요
혹시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온 길이 후회되세요
흔적도 없이 지워드릴 수도 있거든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팍팍하고 힘들면
부담없이 제 발목쟁이를 또옥 따서
풀싸움이나 하면서 잠시 쉬었다 가세요
길 잃어 막막한 당신이 뿌리째 뽑아서
하늘 높이 제기차기를 해도 그만이구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가진 그늘은
씨방처럼 부푼 땀방울들을 말리기엔
너무 키가 작으니까요
그러니까 제 발목쟁이를 드린다는 거예요
대신에 당신의 캄캄한 어깨를 껴안고
하산하던 씨앗 한 톨이
고개 묻고 돌아가는 당신의 뒤안길 혹은
보도블록 틈에 질긴 뿌리를 부리고 서서
언젠가 당신의 지친 발목쟁이에
입 맞출 수 있다면
저는 밟혀도 정말이지 괜찮거든요
이젠 당신도 다시 한 번
울먹이는 희망을 돌볼 시간이잖아요
― 임경묵, 「질경이의 꿈」 전문


다 읽어보셨나요?
그러면 두산백과에서는 질경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쌍떡잎식물 질경이목 질경이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풀밭이나 길가, 또는 빈터에서 자란다.
줄기는 없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 나오며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가 4∼15cm,
폭이 3∼8cm이며 5개의 나란히맥이 뚜렷하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몸과 길이가 비슷하고 밑 부분이 넓어져서 서로 얼싸안는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 사이에서 나온 길이 10∼50cm의 꽃줄기 윗부분에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빽빽이 달린다.
포는 좁은 달걀 모양이고 꽃받침보다 짧으며 대가 없다.
꽃받침은 4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이 둥글고 흰색의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다.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고 끝이 4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이고 화관 밖으로 길게 나오며, 암술은 1개이고, 씨방은 상위(上位)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꽃받침 길이의 2배이며 익으면 가운데 부분이 옆으로 갈라져 뚜껑처럼 열리고 6∼8개의 종자가 나온다.
종자는 길이가 2mm이고 검은 색이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잎을 차전(車前), 종자를 차전자(車前子)라는 약재로 쓰는데,
차전자는 이뇨 작용이 있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하여 어지럼증·두통에 효과가 있고,
폐열로 인한 해수에도 효과가 있다.
차전초는 이뇨 작용이 있어 신우신염·방광염·요로염에 사용한다.
한국·일본·사할린·타이완·중국·시베리아 동부·히말라야·자바·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백과사전의 뜻풀이로는 도무지 그 식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오히려 시인들의 시에서 얘기해주는 뜻풀이가 더 가슴에 와닿곤 합니다.
질경이를 이해하려면 백과사전보다 오늘 소개한 세 편의 시를 읽는 편이 훨씬 낫지요.
그렇다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사전적인 앎이 아니라 시적인 앎이란 얘기도 될 테지요.
시를 쓰고 읽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겁니다.

각설하고,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팍팍하지만 사마귀처럼 질경이처럼 밟히면 밟힐수록 힘을 내자는 얘기입니다.
마음속에 ‘그리움’ 하나 아직 남아 있다면 말입니다.

- 월간 《춤》, 202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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