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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

Guanah·Hugo 2024. 11. 1. 02:58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
국적 프랑스, 출생-사망 1684년~1721년, 사조 로코코

장 앙투안 와토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발랑시엔 태생으로 처음에는 지방 화가로 활동했지만,
18세 때 파리로 가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이 곳에서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화가들의 세밀하고 섬세한 자연주의를 터득했고,
뤽상상부르와 루브르 궁에 수집된 위대한 결작들을 연구했다.
 

<베네치아풍의 연회> 1717년경,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와토는 역사와 사회 발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로코코 양식에 있어서 페트갈랑트를 그린 최초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와토는 그늘진 공원과 환희에 찬 풍경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인물을 자주 그렸는데,
그의 가볍게 반짝이는 붓질로 인해 인물들은 더욱 우아해 보였다.
 

<이탈리아 희극> 1718년경, 베를린 국립 회화관.

그는 주로 당시에 유행하던 이탈리아 희극과 궁정 생활, 병사들의 생활 등을 그렸는데,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우수가 깃든 아연화(fêtes galantes)를 창시하여,
로코코 미술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제르생의 간판> 1720년, 샤를로텐부르그 궁전.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1720년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때,
가게의 간판그림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을 그리기까지 하였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안 가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전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야외에서의 사교모임> 1716년~1719년,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사랑의 향연> 1716년~1719년,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사랑 수업> 1716년, 스톡홀름 국립박물관.
 

<인생의 아름다움> 1718년경, 월리스 컬렉션.
 

<무도회의 즐거움> 1717년경, 덜위치 칼리지 미술관.

 

공원의 군중 [Assemblée dans un parc],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Fte champtre (Pastoral Gathering), 1718년~1721년.
 

<야외에서의 즐거운 모임> 1718년경, 월리스 컬렉션.
 

<야영> 1710년~1720년, 푸슈킨 미술관.
 

<정원에서의 파티> 1710년~1720년, 프라도 미술관.
 

Peaceful Love, 1719년.
 

달빛 속의 황제 아를르캥 [Arlequin empereur dans la Lune], 18세기경, 65 x 82 cm, 낭트 미술관.
 

<할리퀸과 콜럼바인> 1716년경, 월리스 컬렉션.
 

<메체티노> 1717년~171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체티노의 가족> 1717년경, 월리스 컬렉션.
 

피에로 질 [Pierrot, dit autrefois Gilles],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둥지 사냥꾼> 1710년경,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춤> 1710년~1720년경, 포츠담 신궁전.
 

사랑의 노래 [The Scale of Love], 1717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Fete Champetre, 1722
 

The Embarassing Proposition.
 

<이탈리아 희극배우들의 오락> 1715년경, 샤를로텐부르그 궁정.
 

View through the Trees in the Park of Pierre Crozat, 1715년
 

Pastoral Leisure.

 

키테라섬으로의 출항 [Embarkation for Cythera], 제작연도 1718년경, 샤를로텐부르그 궁전.
 

<키테라 섬의 순례> 1717년, 캔버스에 유화, 129×19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사랑의 찬가, 그리고 덧없음

18세기 프랑스의 문인 플로랑 당쿠르는 '세 여자 사촌들'이라는 희곡에서 그리스 해안에 있는 키테라섬을 묘사했다.
비너스가 탄생한 곳이라고 알려진 키테라섬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이었고,
남편감을 찾거나 연인을 구하는 여인들이 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화가 와토(Jean-Antoine Watteau·1684~1721)는,
이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키테라섬의 순례'(1717년)를 그렸다.
 

<키테라 섬의 순례> (부분) 비너스 상

키테라 섬은 비너스의 성전이 있는 섬으로 그림 우측으로 비너스의 동상이 보인다.
무료한 삶의 싫증을 달래줄 사랑과 애인을 바라는 마음에서 사람들이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화려한 꽃다발을 바쳤다.

석상이 의미하는 영원한 사랑과 장미꽃이 지닌 순간적 아름다움의 대비가 돋보인다.
특히 그 석상 아래에는 검들이 걸려 있는데,
검은 전쟁의 지혜와 승리의 명예를 상징한다.
그러나 비너스에게 바쳐진 이 검은,
이미 가슴을 파고든 사랑의 열정 앞에서 지혜도 명예도 맥을 추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키테라 섬의 순례> (부분) 좌측

그림의 왼편에는 오후 나절 이제 막 도착한 배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그 남녀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사랑을 구하느라 흥정을 하는 모습이,
물건을 팔기 위해 경쟁하는 시장 이상의 번잡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사공들도 재미삼아 사랑의 흥정을 거들고 있다.
이미 사랑을 구한 이들은 팔짱을 낀 채 한나절 보낼 곳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닥쳐올 향락의 시간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키테라 섬의 순례> (부분) 우측

비너스의 석상 앞 쪽으로는 아침 배를 타고 도착하여 새로 구한 애인들과 함께 즐거운 한나절을 보낸 뒤,
지금 도착한 배로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차리는 일군의 남녀 모습이 보인다.
서로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장면의 오른편으로는 여전히 연애 삼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쌍이 보인다.
남자는 체통 없이 지팡이까지 내동댕이친 채 사랑을 고백하고 있고,
여인은 주위를 의식한 탓인지 부채로 슬쩍 대답을 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를 지휘하는 존재들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듯,
하늘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화신들인 푸토들이 날고 있다.
또한 이들의 애틋한 사랑의 노래가 감미로운 색채들의 조화로운 모습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런 감미로운 연애 감정을 표현한 와토의 화풍을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
즉 '연애 축제'라 부른다.
 

<키테라 섬의 순례> (부분) 중앙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인간들의 경박한 사랑 행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우선 그림 중앙에 일어선 남녀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
맹목적 반가움에 날뛰며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경쾌한 꼬리를 가진 강아지이다.

바로 이 강아지가 이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강아지에 의해 인도되는 사랑은 진실한 가치를 지닌 사랑이 아닌 감각적 사랑이며 사랑의 방종일 것이다.
바로 이들의 애정 행각이 심오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향락이라는 감각적이며 육체적 만족을 위한 것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키테라 섬의 순례> (부분)

또한 전경의 세 쌍 그룹에서 우측 여인의 끝자락에 바지를 벗고 이들을 빤히 바라보는 어린 아이가 있다.
이른바 철부지 바보다.
바지를 내린 것은 세상사의 허영과 가식에 물들지 않아 혼탁한 세상의 오염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는 표시이며,
이 세상을 가장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천진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이 아이가 이 연인들의 작태를 빤히 쳐다보면서,
일시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들의 부질없는 행동을 고발하고 있으나,
이들은 그의 존재도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들을 이곳까지 몰고 온 뱃사공, 즉 사랑의 전령사들의 얼굴은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마치 부끄러움에 그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 가면을 쓴 이미지,
혹은 죽음의 이미지인 해골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키테라섬의 순례 [Embarquement pour Cythère], 제작연도 1717년경, 129 x 194 cm, 루브르 박물관.

그림 하단의 어둠에 가린 죽은 나무와 뿌리가 이런 경박한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영원한 사랑을 암시하는 비너스의 석상과 오래된 나무들은,
이런 인간의 일시적 사랑 행위 앞에서 깊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침묵 속에 가려진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가 감지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와토는 이 그림에서 형식적으로는 감미롭고 육감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듯하나,
실제는 진실하지 못한 사랑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고발하면서,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2005. 4. 10., ㈜살림출판사)

 

La Surprise, c. 1718.
 

Perfect Harmony.

 

진정한 즐거움 [La Vraie gaieté], 18세기경, 발랑시엔 미술관.
 

무기를 빼앗긴 에로스 [L'amour désarmé], 18세기경, 31 x 44 cm, 콩데 미술관.
 

목욕하는 다이아나 [Diane au bain],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스의 심판 [Le Jugement de Pâris], 제작연도 18세기경, 47 x 31 cm, 루브르 박물관.

와토의 그림에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건넨다.
판정이 끝난 것이다.
알몸의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의 시중을 받으며 벗었던 옷을 다시 걸친다.
그 옆으로 메두사 방패와 투구 차림의 아테나가 질시어린 눈빛으로 뒷걸음친다.
헤라는 조개 수레를 타고 구름을 흩뜨리며 올림포스로 돌아가는 중이다.

화면의 좌상부에 깃털 모자와 쌍뱀지팡이(그리스어로 케뤼케이온, 라틴어로 카두케우스)를 지참한 헤르메스가 의외의 판정에 놀란 눈빛을 보인다.
화면 앞쪽에 앉아 있는 개는 파리스가 양치기 신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옆으로 머리가 동그랗게 구부러진 양치기 지팡이가 기대어 있다.
무리에서 따로 떨어진 양의 뒷다리를 채기에 적당한 형태다.

파리스의 심판’을 다룬 그림은 대부분 세 여신의 알몸을 정면 시점으로 노출한다.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여체를 재현하는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와토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알몸을 감추고 돌려놓았다.

뒤돌아선 알몸의 여신을 재현한 이른 사례는 ‘삼미신’ 도상이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탄생하고 라파엘로와 루벤스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삼미신’은 우미의 세 여신 가운데 한 명 또는 두 명이 등을 돌린 자세를 취한다.

루벤스는 <파리스의 심판>에서 드물게 여신의 알몸을 돌려서 재현하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뤽상부르 궁에 걸린 루벤스의 연작에 심취한 와토가 같은 주제를 다룬 루벤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으리라고 추정할 근거는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가로로 넓게 펼친 규격의 그림으로 그려지던,
파리스의 심판’이란 주제를 와토는 세로 구성으로 다루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17~18세기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프랑스 희극>과 <키테라 섬으로의 항해>와 <이탈리아의 희극배우들>이다.
지붕기와공의 아들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18세에 파리에서 메타예라는 화가의 도제가 되었다가,
1703년에 오페라 장면과 무대배경을 그리는 장식가 클로드 질로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질로 밑에서 와토는 무대미술을 통해 다양한 인공조명을 연구했고 빛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얻었다.
와토 사후 이성의 시대가 도래한 18세기말까지 그의 명성은 기울었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예술가들 사이에서 재평가 받아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프랑스 희극> 1718년경, 베를린 국립 회화관.
 

<이탈리아 희극배우들> 1710년~1720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A Pierrot
 

베네치아 화가인 로살바 카리에라가 그린 <와토의 초상>(1721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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