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ah觀我Story
고생은 곧 이야기가 되지-조지아 (봄내 405호, 2024년 10월) 본문
불운한 하루였다.
해발 3,000미터 산을 몇 개씩 넘는 고된 트래킹 여정.
아침부터 아내는 뭐에 쏘였는지 종일 손가락에 통증을 호소했고,
사진을 찍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 유리가 깨지고 말았다.
아무런 화면도 나오지 않는다.
모바일로 예약한 숙소에 찾아갔는데 예약이 안 되었다고 해 두메산골에서 급하게 새로운 숙소를 구해야 했고,
그 와중에 질펀하게 갓 싸놓은 소똥을 제대로 밟고 말았다.
큰마음먹고 도전한 트래킹에서 불운이 겹친 것이다.
조지아의 서북쪽 스바네티 지역은 전 세계 트래킹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까지 이어지는 3박 4일간의 산행은 힘든 만큼 가슴 벅차다.
웅장한 대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
메스티아까지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9시간 정도 걸리는데 마슈로카라고 부르는 미니버스를 타고 간다.
15인승 되는 승합차로 에어컨이 없는 경우도 있고, 승차감도 굉장히 불편하다.
한계령, 대관령 저리 가라 할 구불구불한 산길을 계속 올라간다.
길을 점령한 소 떼를 피해 한나절 가면 드디어 메스티아 마을이다.
고산지대라 여름에도 서늘하다.
3박 4일 동안 많이도 걸었다.
매일 16~20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소똥 가득한 진창도 지나고 가시밭길도 헤쳐 나갔다.
도저히 길이 아닌 것 같은 돌밭도 지나고 끝없는 오르막도 올라야 했다.
숨이 가쁘고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고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
들이마시는 공기,
들려오는 소리가 선명해진다.
우리는 꽤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힘겹게 오르고 올라 이윽고 능선에 닿으니 풍경이 터진다.
휘몰아치는 산맥,
드넓은 초원과 꽃밭,
여기까지 풀 뜯으러 온 소들.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흰 구름.
그리고 장엄한 빙하!
해발 5천 미터의 만년설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죽기 전에 가져가고 싶은 풍경.
우리가 그 안에 있다.
인류에게 불을 선물해 준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의 분노를 산 그는 코카서스산맥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천형을 당한다.
눈앞에 펼쳐진 설산이 바로 그 산맥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지도 보는 것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길가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사람들 표정은 어떤지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 알 수 있다.
초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행복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맞아. 천국의 색은 초록일 거야.”
트래킹 구간에 있는 아디쉬라는 작은 마을에서 묵는다.
앞서 말한 대로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었는데,
숙소 주인은 예약이 가득 차 취소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배짱이다.
그가 소개해준 다른 숙소는 주인도 불친절하고 낡을 대로 낡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발품 팔아 찾은 새로운 숙소.
온수가 안 나와 얼음장 같은 물로 샤워를 하고 푹 꺼진 매트리스에 몸을 누여야 하지만 나름대로 아늑하다.
트래킹 중 몇 번 마주친 중국인 여행자가 이 숙소에 있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길에서는 매일 각국의 여행자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 겪은 여러 불운에 대해 이야기해 주니,
그녀는 중국에 ‘사고고사(事故故事)’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준다.
예기치 않은 고생이 나중에는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말이다.
‘사고(事故)’를 거꾸로 하면 ‘고사(故事)’가 되기 때문.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여행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익숙지 않은 환경에 매일이 고생이다.
하지만 그래서 매일이 기억에 남고 에피소드가 된다.
고된 오르막이 없었다면 풍경의 감동도 덜 했을 것이다.
낯선 산골 마을에서의 캄캄한 밤 산책,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다.
휴대전화 조명 하나만 켜놓고 ‘차차’라는 독한 술을 마시는데,
우리에게도 선뜻 자리를 내어준다.
연거푸 잔을 권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건배사를 하고,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른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하얀 별이 쏟아질 듯하다.
저 별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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