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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水原華城]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길 본문
출처 : TOURNURI.COM: 수원화성 (Suwon Hwaseong Fortress, KOREA) (tournuricom.blogspot.com)
조선이 마지막 불꽃으로 개혁적인 통치자 였던 조선 22대 국왕 정조의 흔적이 서려있는 수원화성은,
조선후기에 세워진 계획도시이다.
지금은 서울에 인접해 있어 인구가 수백만이나 되는 엄청난 대도시가 되었지만,
수원화성은 정조의 개혁의지와 이상을 그대로 녹여 놓은,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완벽한 계획 도시 이다.
또한 화성 건축에 관한 모든 과정과 기록을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으로 정리해 놓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성곽건축물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조선시대 화성을 똑 같이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기록물이자 설계도라고 한다.
1963년 사적 제3호로 지정되고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은,
근대화과정에서 수원 행궁등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그 의미가 남다른 문화유적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 역할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정조 자신의 이상이 녹아 있는 국책사업 이였다.
또한 정치적 희생양으로 불운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능을 명당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주변에 위치한 팔달산에 화성을 축성 신도시를 건설 하므로서,
조선후기 극심해진 당쟁의 폐해를 일신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아니어도,
수원화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축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팔달문, 장안문, 방화수류정 등은 그 자체로 건축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들이다.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총동원 되어 만들어진 수원화성은,
근대 성곽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행을 핑계로 자주 이곳에 걸음 하였는데,
특히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수원행궁 봉수당 에서 개최하고,
자신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화성에 주둔 시킴 으로써,
강력한 왕권을 모든 정치세력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수원화성은 잊혀 지고,
그의 개혁은 완성되지 못하고 조선의 마지막 불꽃도 꺼져버린다.
그렇게 정조 사후 조선 500년 역사도 마지막을 향해 치닫게 된다.
역사에 가설은 없다지만 최근에 복원한 수원행궁을 걸으면서,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근대화에 성공하여 이웃나라 일본으로부터 굴욕적인 36년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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