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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레이턴 (Frederic Leighton)

Guanah·Hugo 2024. 11. 7. 07:07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프레더릭 레이턴 (Frederic Leighton)

프레더릭 레이턴 남작(1830년~1896년)은 영국의 화가, 조각가이다. 역사, 성서, 고전 고대의 요소를 주로 다루었다.
1896년 화가로서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세습 남작 작위를 받았다.
당시 서훈이 1월 24일 공포되어 이 때부터 작위가 발효되었는데,
프레더릭 레이턴은 협심증으로 바로 다음날 1월 25일 사망한다.
세습작위를 이어갈 직계혈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위는 하루만에 소멸되었다.
 

The Fisherman and the Syren, c.1856~1858, private collection.
 
 

Icarus and Daedalus.
 

The Last Watch of Hero.
 

Perseus and Andromeda, 1891,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Wedded, 1882
 

Solitude.
 

Hercules Wrestling with Death for the Body of Alcestis, 1870
 

Idyll, c. 1880~81
 

Winding the skein. And the sea gave up, 1891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신 위에서 화해하는 몬터규와 캐플렛>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을 담았다.
 

Bacchante, 1895
 

<Pan> 캔버스에 유채, 153.6 x 62.2 cm.
 

Jonathan's Token to David.
 

오달리스크 Odalisque, 1862년
 

A Girl Feeding Peacocks, 1863
 

Elijah in the Wilderness, 1878
 

After Vespers (1871;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Portrait of May Sartoris at about 15 years of age,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TX.
 

Music Lesson, 1884
 

The Painter's Honeymoon, 1864
 

Pavonia, 1859
 

The Countess Brownlow, 1879
 

Lieder ohne Worte, 1860
 

And the Sea Gave Up the Dead Which Were in It.
 

Acme and Septimius, 1868
 

Actaea, the Nymph of the Shore, 1853
 

Flaming June (1895; Museo de Arte de Ponce).


화가와 모델 - 도로시 딘
신화 속 여인이 된 아름다운 소녀
 

<포로가 된 안드로마케> 1886-88경, 197x407cm, 맨체스터 시티 아트 갤러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전쟁으로 인해 인생의 나락을 경험한 더없이 불행한 여인이다.
그녀의 아버지와 7명의 오빠 모두 그리스의 아킬레우스에게 죽고,
남편 헥토르 역시 아킬레우스의 손에 생을 마감한다.

그림 속의 안드로마케는 몸집도 자그마한데다 안색마저 창백하다.
그 비애미로부터 청순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비극의 주인공을 위한 모델로 레이턴은 도로시 딘(Dorothy Dene, 1859~1899)을 선택했다.
도로시는 무엇보다 레이턴 경의 부성애를 자극한 모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가련해 보이는 도로시는 레이턴 경의 후반기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영감의 샘’ 노릇을 해주었다.
그가 자신의 여러 모델들 가운데 ‘가련한’ 도로시에게 안드로마케의 포즈를 맡긴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말년의 레이턴 경 초상사진>

레이턴 경은 빅토리아 조의 영국 화가들 가운데 가장 특권적인 위치에 있었던 화가의 한 사람이다.
오늘날에는 그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생전의 그는 영국 문화계와 사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사후 그에 대한 인식이 쇠퇴한 것은,
그가 시대를 앞서가는 전위적인 화가가 아니라,
철저히 규범을 따르는 아카데미 화가였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는 1896년 남작 작위를 하사 받았으나,
이튿날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나 가장 짧은 귀족 작위 보유자로 영국 귀족사에 이름을 올렸다.
 

<1880년대 도로시 딘의 초상 사진>

환영 같이 아름다운 소녀, 도로시 딘
도로시 딘은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부모 밑에서 십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세례명은 애다 앨리스 풀렌(Ada Alice Pullen)이다.

기능공이었던 아버지가 병든 어머니와 자식들을 저버리고 집을 나감으로써,
도로시는 일찍부터 오빠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배운 것이 없었던 어린 그녀로서는 모델 일이 그나마 손쉽게 뛰어들 수 있는 직업이었다.

1879년 도로시가 레이턴 경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는 20세였다.
레이턴 경은 당시 48세였다.
그 무렵 도로시는 고전적인 얼굴에 안색이 밝아 조금의 흠도 티도 없었다고 한다.

눈은 보랏빛이었고, 적갈색이 살짝 도는 금발은 숱이 풍성했다.
키는 당시 젊은 여성 평균보다 약간 큰 정도였으나,
특히 팔과 다리가 길어 유연한 인상을 주었다.
가슴도 정교한 조형물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시몬과 이피게니아> 1884년, 163x328cm, 뉴 사우스 웨일즈 미술관, 시드니.

완성하는데 무려 8개월이 걸린 작품이다.
주인공 이피게니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레이턴 경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지금 남아 있는 사전 드로잉만 56장이다.

당시 레이턴 경은 <시몬과 이피게니아>(1894) 제작을 앞두고,
적절한 모델을 찾기 위해 6개월 동안 거의 전 유럽을 뒤지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런던의 한 극장에서 배우로 일하는 도로시를 보고는,
이 여자다!”는 확신이 들어 그림의 모델을 서 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레이턴 경은 그녀를 그리면서 그녀의 파리한 안색과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금세 매료되었다.
도로시의 풍성하고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눈같이 흰 얼굴은 감각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고,
부드러운 목선은 최상의 형태미를 선사했다.

레이턴 경은 그때까지 자신의 그림에 다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깊은 정서적 울림을 그녀로부터 퍼 올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그녀로부터 얻게 된 것이다.
 

<기억>1883년경, 76x64.5cm, 개인 소장
이 작품의 모델은 도로시의 바로 밑의 동생인 이디스 엘런이다.
 

<하렘의 빛> 1880년경, 152.4x83.8cm, 개인 소장.
'하렘의 빛'에서는 어린 동생 레나가 거울을 든 소녀로 변했다.

이처럼 도로시에게 신뢰를 갖게 된 레이턴 경은 이후 그녀에게 거의 아버지와 같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투병 중이던 도로시의 어머니가 죽자 레이턴 경은 그녀의 동생들을 마치 새로 입양한 자식들처럼 대해 주었다고 한다.

도로시의 여동생들 가운데 셋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최대한 충족시켜 주었다.
도로시를 향한 그의 이런 따듯한 마음은 <포로가 된 안드로마케>에 투사된 그 연민의 시선에 잘 녹아들어 있다.
 

<페르세포네의 귀환> 1891년경, 203.2x152.4cm, 리즈 미술관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은 레이턴 경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의 재회를 그린 것이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병약했던 레이턴 경은 어머니와 자식 주제의 그림을 무척 좋아해,
이 그림에도 그만의 특별한 선호를 담았다.
어쩌면 도로시를 향한 자신의 지원이 딸을 살린 데메테르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로시가 데메테르의 포즈를 취했다.
 

<헤스페리데스의 정원> 1892년경, 지름 169cm,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레이턴은 도로시를 모델로 이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그렸다고 하는데, 가운데 여인이 그녀가 분명하다.
 
 

<파티시다> 1894년경, 152.5x109cm,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파티시다(Faticida)는 여인들에게 미래를 점쳐주는 예언자였다.
도로시가 이 그림의 모델을 설 때 나이가 35살이었으니,
그녀의 원숙함도 넉넉히 반영된 듯하다.
 

<클리티에> 1895년경, 개인 소장

클리티에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로마신화의 아폴로)에게 버림받은 여인이다.
헬리오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간절했던 그녀는,
헬리오스가 하늘을 가로질러 태양 수레를 몰고 가는 모습을 매일 지켜봤다.

음식도 물도 먹지 않고 그렇게 헬리오스 바라기로 일관한 끝에 그녀는 한 송이 꽃으로 변해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해바라기다.
1896년 경 레이턴은 도로시를 모델로 클리티에를 그렸다.
목을 뒤로 젖힌 채 하늘을 향해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클리티에가 애처롭다.
 

Sir Frederick Leighton by George Frederic Watts.

선천적으로 마음이 따뜻했던 화가 레이턴 경은 요즘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엄친아’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러시아 차르의 주치의를 지냈고 아버지도 매우 박식한 의사였다.
일찍부터 유럽 각지를 돌아다닐 정도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영어 외에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그밖에 스페인어와 루마니아어 등 여러 언어에 친숙했으며,
고전과 의학, 음악, 문학, 건축 등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었다.
누가 봐도 영재고 천재였다.

용모도 준수하게 잘생긴데다 화가로서 일찍 출세해 30대 초반에 이미 연 수입이 일반 노동자의 130배에 달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갖췄으면서도 그의 태도는 늘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그가 20대 초에 왕립 아카데미에 출품한 작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를 자랑하지 않고,
지나치게 이른 자신의 출세가 오히려 “걱정되고 우려된다”고 털어놓았다.
또 빅토리아 여왕이 하사한 돈으로 무명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사줌으로써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차단했다.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dsley)

대가가 된 이후에도 자신과 예술관이 다르나ㅡ
열심히 투쟁하는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dsley) 같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성공한 예술가로서 그는 이처럼 늘 여유 있는 태도와 관대한 아량으로 세상을 대했다.
그런 까닭에 도로시 같은 청순하고 가련한 모델을 만났을 때,
자연히 부성애가 발동해 성심껏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는 성격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측면이 있었으나,
어린이들을 좋아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금세 평화를 느꼈다고 한다.

체격도 크지 않고 나이도 어린 도로시는 그에게 그가 좋아하던 어린아이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도로시에 대한 레이턴 경의 후원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져 그는 유산으로 도로시에게 5천 파운드를 남겼으며,
도로시와 도로시의 동생들을 위한 신탁으로 5천 파운드를 따로 배정해 놓았다.
오늘날의 금액으로 치면 1백만 파운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6억 원 정도 되는 큰돈이었다.
 

도로시 딘 자매들의 사진 (맨 위가 도로시 딘이다.)
 

<목욕하는 프시케> 1889-90경, 189.2x62.2cm 테이트 브리튼, 런던

화가는 이 주제의 그림을 그리며 큐피드가 한 것처럼 해줄 수는 없다 하더라,
도로시에게 뭔가 진정한 보호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도로시를 포로가 된 안드로마케의 자리에서 큐피드의 궁전에 있는 프시케의 자리로 옮겨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레이턴 경은 살아 생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그녀에게 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레이턴 경이 작고한 3년 뒤 도로시 또한 복막염에 걸려 일찍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마흔이었다.

 

<크레나이아> 1880년, 76.8x27.2cm, 페레스 시몬 컬렉션, 멕시코.

크레나이아는 아일랜드 다글 강의 님프다.
도로시가 21세 때 모델을 선 그림으로,
풋풋하고 순결한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림에 드러나는 레이턴 경의 이런 다감하고 친밀한 시각이 자꾸 비평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는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레이턴 경이 끝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고 본다.
독신인 탓에 당대에도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산 바 있는데,
도로시와의 내연 관계가 그를 끝까지 독신으로 머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도로시와 결혼해버릴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레이턴 경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망으로 보아 도로시와는 도저히 결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일지 모르나,
당시 영국사회에서 두 사람의 결혼은 커다란 스캔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내연 관계라는 증거로 최근 영어로 번역된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코스타의 편지가 곧잘 인용된다.

레이턴 경의 ‘절친’이었던 조반니 코스타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레이턴 경의 아내’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도로시의 역할을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관계의 진정한 실체는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글, 이주헌(미술평론가) 출처: 그리다, 너를 2015.10.2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9488&cid=58862&categoryId=58877

 

Cimabue's Celebrated Madonna is carried in Procession through the Streets of Florence, 1853–1855
 

Daphnephoria, oil on canvas painting, 1874–1876, Lady Lever Art Gallery
 

Athlete Wrestling with a Python 1877
 

자화상 (1880년), 프레더릭 레이턴(Lord Frederick Leighton)은 영국의 화가·조각가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등을 소재로 다룬 탐미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조각가로서도 유명하며 대표작에 <큰 뱀과 싸우는 운동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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