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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藍, 람)과 청바지

Guanah·Hugo 2023. 1. 7. 08:21

출처 : 모야모 매거진 웃는소나무(두물머리)

 

가을을 묘사하는 친숙한 수식어들이 있다.

쪽빛 하늘에 흰 새털구름,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쪽빛 바다 · · ·

그리고 스승보다 제자가 더 잘 랑 때 쓰는 칭찬의 말 "청출어람"에도 등장하는 색깔이 있다.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여섯 번째로 파랑과 보라 사이에 있는 남(藍)이다.

 

풀 초(艸)가 붙은 한자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람(藍)은 풀의 일종이며 우리말로는 재미나게도 ""이다.

같은 집안인 여뀌와 외모가 빼닮아서 자칫 혼동하기도 하는데,

겨울을 넘기지 못해 한해살이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좀처럼 군락으로 만나기는 어렵다.

게다가 잎 - 줄기 - 뿌리 어디를 보아도 푸른빛과는 멀어 보이는데,

가을 하늘색을 만들어내는 원료라니 자못 어리둥절하다.

 

놀랍게도 쪽을 이용해 푸른색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단군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쪽에는 색소뿐만 아니라 항균 - 방충 - 방염 - 자외선 차단 성분까지 함유되어 있어,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 전반에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천연 재료가 모두 그러하듯이 가공하는 과정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화학염료에 밀려 맥이 끊어질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발효에 의한 양질의 쪽염료 생산 방법이 속속 개발되면서,

웰빙 바람을 타고 재조명받고 있다.

 

쪽 염색으로 낼 수 있는 색깔은 람(藍) 외에도,

청(靑) - 벽(碧, 비취색) - 창(蒼, 청록색) 그리고 감(紺, 진남색, 일본식 발음 "곤색") 등 푸른색 계열을 모두 포함하는데,

여러 번 물을 들일 수록 색이 더 진해진다.

통상 비단이나 모직 등의 동물성 섬유가 면이나 모시 등의 식물성섬유보다 물이 더 쉽게 든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주황을 Orange라 하듯이 남색을 일컬어 인디고(Indigo)라고 부른다.

낭아초의 사촌뻘인 Indigofera라는 인도 원산의 콩과식물을 이용해서 푸른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茶)와 마찬가지로 인디고 염료 역시 유럽에 소개되자 순식간에 대인기를 끌었다.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유럽 열강들이 바닷길과 식민지 개척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푸른색 염료 Indigo는 때아닌 호재를 만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블루진(Blue Jean) 청바지의 대유행 때문이다.

당초 블루진은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때,

광부들의 작업복을 만들다가 적합한 색상을 찾던 중에,

인디고를 선택했고 블루톤 한 가지 색상만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 후 블루진은 유럽으로 건너가 자류로운 영혼을 갈구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덕분에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포목상을 하던 독일계 이민자 Levi Strauss는,

특허를 내어 떼돈을 벌었다.

운 좋게도 두꺼운 면직천(Denim)을 인디고로,

염색한 푸른색이 쉽게 바래지는 단점이 오히려 히트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비자에게는 희끗희끗하게 색이 바랜 것이 매력과 가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후 특허기간이 만료되고 1980년대까지 수많은 청바지 브랜드가 생겨 경쟁에 돌입하면서,

전 세계 인디고 염료 생산량의 95%를 청바지 회사들이 소비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할리우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등장했던 제임스딘의 블루진은,

전 세계 젊은이들을 "이유 없이" 열광시켰다.

국내에서는 양희은 이후 청바지 통기타 가수들이 한 시절을 풍미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1990년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 발(發) 벤처품으로 성공한 젊은 부자들이,

의도적으로 블루진 패션을 선보였다.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가 그랬듯이 10 ~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30 ~ 40대들이 선보인 이른바 수십만 원대 고가의 Premium Jean 콘셉트가 생겨났고,

일부러 찢어서 입는 빈티지스타일까지 대유행을 타면서 여전히 건재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어쨌든 인디고가 출발점이 된 블루칼러는 시대적 요구와 함께 진화를 거듭해 한층 더 세분화되었다.

대표적인 색인 "Royal -Midnight - Denim - Indigo - Cobalt - Sapphire - Turquoise - Marine" 등을,

포함해 수십 가지가 넘는데,

꽃색깔에 따른 품종명 꽃씨들의 재고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흰머리가 갈수록 더 늘어난다.

이 참에 쪽으로 염색해 멋 좀 내볼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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