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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색깔 이야기

Guanah·Hugo 2023. 1. 5. 08:42

출처 : 모야모 매거진 웃는소나무(두물머리)

 

식물도 화장을 한다.계절이 바뀌면 잎색깔을 바꾸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꽃화장을 한다.그리고 새나 동물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열매 염색도 한다.빨 - 주 - 노 - 초 - 파 - 남 - 보 스펙트럼에서 고르지만, 사람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메이크업 색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보관된 지령 문서에 따라 그대로 이행할 뿐이다.지령 문서에는 발아 - 성장 - 개화 - 결실로 이어지는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포괄하는 모든 행동 지침들이 적혀 있다.

 

유전자 중에서도 색깔에 대한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색소 유전자"이다.

엽록소라 불리며 초록색을 내는 크로로필, 노란색의 카르티노이드, 기타 색을 만들어내는 안토시아닌이 그것이다.

특히 안토시아닌은 여러 가지 효소들과 재료를 버무려 빨강 - 주황 - 파랑 - 보라 - 하양의 다양한 색을 만든다.

수국이나 금어초와 수박풀의 꽃색상이 변하는 것도 안토시아닌의 작동이 토양의 산성도뿐만이 아니라 온도와 빛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것은 온도와 수분에 민감한 엽록소가 점차 소멸되면서 녹색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노랑이나 붉은색이 메꾸는 것이다.

열매가 익으면서 색이 바뀌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식물들이 모든 색소 효소를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효소는 태생적으로 결핍된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가령 장미의 경우, 수천 가지 품종이 있지만 유독 파랑장미(Blue Rose)는 없다.

지난 수세기 동안 내로라하는 육종회사들이 별의별 재간을  부려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장미는 파란색을 내는 효소 물질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미뿐 아니라 시장 규모 기준 10대 화훼류 중에서 프리지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파란색 효소 물질을 체내에서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2008년 엉뚱하게도 위스키 회사인 일본의 산토리가 대박을 터트렸다.

호주에 설립한 육종 전문 자회사에서 블루로즈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파란색 색소 유전자를 다른 꽃에서 추출해 장미의 그것에 인위적으로 주입을 하는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페튜니아를 이용했는데 막상 장미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카네이션에는 먹히는 바람에 블루 카네이션이 먼저 등장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팬지에서 원하는 파랑색소 유전자를 찾아내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하지만 백 프로 파랑이 아니라 연한 청보라색(mauve, pale purple)에 가까워 미완의 성과에 만족해야 했고, 지금도 진짜 블루로즈 보물 찾기는 진행 중이다.

여기서 돌발 질문 · · · ·

"뭔 소리? 파랑 장미는 이미 우리 동네 꽃집에서도 팔고 있던데?"

"예, 그건 파랑 잉크를 물 올림 한 것입니다." ^^

 

(초롱꽃과 나비완두)

 

블루로즈의 1차 성공 이후 계속 연구에 박차를 가해 오던 산토리는 2017년에 또다시 의외의 개가를 올리게 된다.

일본 농무성 산하 연구소와 손잡고 이번에는 파란색 국화를 선보인 것이다.

장미와 마찬가지로 국화에도 블루색이 없는데, 초롱꽃(Campanula)과 나비완두(Clitoria)에서 추출한 색상 유전자 두 개를 결합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Blue색을 구현한 것이다.

파랑 국화(Blue Mum)가 꽃시장에 데뷔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갰지만 매진은 이미 예약된 거나 다름없다.

전 세계 절화시장에서 국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찮은 만큼 연타석 홈론을 때리게 되는 셈이다.

 

 

(산토리가 개발한 파랑국화와 색상표)

 

어쨌든 블루로즈 신드롬을 계기로 유전자 조작 방식의 화훼류 육종이 노다지 블루오션으로 전 세계에 화두가 되었다.

더구나 화훼는 식품이 아니므로 부정적 선입견의 걸림돌도 없는 만큼 고급 인력과 거대 자본의 유입이 급물살을 탈 것이 분명하다.

머지않아 꽃의 색깔과 모양뿐만 아니라 잎의 모양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트 모양의 수국꽃, 친환경 도배벽지로 그대로 사용가능한 멋진 무늬의 나뭇잎, 석 달이 지나도 짱짱한 꽃꽂이 소재 등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잠재 수요가 폭발할 것이다.

바닥을 모르게 침몰하고 있는 화훼/식물 업계에도 돌파구의 새로운 빛줄기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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