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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의 꽃香詩향] 탱자

Guanah·Hugo 2024. 1. 12. 17:15

출처 :  커피통 2019' 호반인문학 | BAND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시작한 게 2014년 1월이니까 정확히 만 10년을 채운 셈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쓰는 이 글은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첫 번째 글이 되겠습니다.
지난 10년을 추억하고 다시 올 10년을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추억을 꽃말로 지닌 꽃을 찾아보니 마침 탱자가 나오더군요.
다시 10년은 그러니까 탱자로 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어릴 때 숫자놀이를 기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데,
아라비아 숫자를 사물의 이름으로 대신했던 놀이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버전입니다.
하나는 “한놈 두식이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칠이 팔팔이 구두쇠 영감”이고,
또 하나는 “한놈 두놈 치고 받고 유자 탱자 말뚝 박고 부랄 털털”입니다.
그런데 숫자놀이를 떠올리다가 문득 함께 딸려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쎄쎄쎄>라는 놀이가 왜 떠오른 걸까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한 장 말고 두 장이요.
두 장 말고 석 장이요.
뭐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계집애 둘이 서로 손뼉 치며 쎄쎄쎄 하던 놀이 말입니다.
아무튼 느닷없이 웬 숫자놀인가 싶지요?
실은 탱자(나무)를 쓰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그야말로 느닷없이 떠오른 까닭입니다.

어릴 때 즐겨했던 놀이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울타리로 심었던 탱자나무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일부러 추억하지 않으면,
마침내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다 사라지면 더 이상의 추억도 불가능할 테니,
그런 마음으로 오늘은 탱자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탱자나무, 과연 어떤 식물인지,
탱자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전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두산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운향과의 낙엽관목이다.
높이 3∼4m이다.
가지에 능각이 지며 약간 납작하고 녹색이다.
가시는 길이 3∼5cm로서 굵고 어긋난다.
잎은 어긋나며 3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다.
작은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혁질(革質: 가죽 같은 질감)이고 길이 3∼6cm이다.
끝은 둔하거나 약간 들어가고 밑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약 25mm이다. 꽃은 5월에 잎보다 먼저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꽃자루가 없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 떨어진다.
수술은 많고 1개의 씨방에 털이 빽빽이 난다.
보통 귤나무류보다 1개월 정도 먼저 꽃이 핀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노란색이며 9월에 익는데,
향기가 좋으나 먹지 못한다. 종자는 10여 개가 들어 있으며 달걀 모양이고 10월에 익는다.
열매는 건위·이뇨·거담·진통 등에 약으로 쓴다.
나무는 산울타리로 쓰고 귤나무의 대목(臺木)으로도 쓴다.
중국 원산이며 한국(경기도 이남)에 분포한다.
강화도의 갑곶리와 사기리에서 자라는 것은,
각각 천연기념물 제78호, 제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병자호란 때 심었던 것이다.”


별모양의 흰색 꽃과 굵은 가시들로 덮인 나뭇가지와 귤처럼 생겼지만,
먹을 수 없는 열매 그리고 고욤나무가 감나무의 대목으로 쓰이듯이,
탱자나무가 귤나무의 대목으로 쓰인다는 것 이렇게 정리가 되겠네요.
그 외에는 굳이 더 설명을 드릴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다만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은 몇 가지 얘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탱자(나무) 하면 사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가시이지요.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나무) 중에서도 으뜸이 탱자나무입니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집이나 과수원의 생울타리로 탱자나무를 심었던 것도,
탱자나무의 그 촘촘한 가시들 때문이었으니까요.
형극(荊棘)” 혹은 “형극의 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테지요.
형극이라는 한자가 가시 荊에 가시 棘을 합친 것이니,
본래 “나무의 온갖 가시”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나무를 꼽으라면 역시 탱자나무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탱자나무의 가시를 우리 조상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 쓰거나,
죄인들의 위리안치에 쓰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실는지요?

옛날 성 주변에는 외적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해자(垓字, 물 구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시겠지만,
해자 대신 성 주변을 빙 둘러 탱자나무를 심기도 했다는 것은 아마 모르셨을 텐데요.
이렇게 해자를 대신해서 탱자나무로 만들어진 성을 ‘지성’(枳城)이라고 했고,
대표적인 지성이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입니다.
지枳 자는 탱자나무를 뜻하는 한자인데,
익지 않은 녹색의 탱자열매를 지실(枳實)이라 부르고,
귤처럼 노랗게 익은 열매를 지각(枳殼)이라고 부른다는데,
뭐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위리안치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귀양을 보내는 일반적인 유배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지요.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죄인을 가둬 아예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이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형벌인데,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는 위리안치의 고통 속에서 <세한도>라는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했지요.

그리고 “귤화위지”(橘化爲枳) 혹은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남쪽 귤을 회수 건너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인데요.
중국 고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이 한 말입니다.
한편 이 말이 틀렸다고 ‘귤은 귤이고 탱자는 탱자’라고 주장한 이가 있는데,
바로 강희안이 자신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한 말입니다.

재미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탱자에 관한 시를 읽어야겠지요.
오늘은 특별히 수필도 한 편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나희덕의 수필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와 시 「탱자」를 차례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고향, 하면 탱자의 시큼한 맛,
탱자처럼 노랗게 된 손바닥,
오래 남아 있던 탱자 냄새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뾰족한 탱자 가시에 침을 발라 손바닥에도 붙이고 코에도 붙이고 놀던 생각이 난다.
가시를 붙인 손으로 악수하자고 해서 친구를 놀려 주던 놀이가 우리들 사이에 한창인 때도 있었다.
자그마한 소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탱자 가시에 찔리곤 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한번은 가시 박힌 자리가 성이 나 손이 퉁퉁 부었던 적이 있다.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탱자나무에는 가시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찔레꽃, 장미꽃, 아카시아…… 가시를 가진 꽃이나 나무들을 차례로 꼽아 보았다.
그 가시들에는 아마 독이 들어 있을 거라고 혼자 멋대로 단정해 버리기도 했다.
얼마 후에 아버지는 내게 가르쳐 주셨다.
가시에 독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키기 위해 그런 나무들에는 가시가 있는 거라고,
다른 나무들은 가시 대신 냄새가 지독한 것도 있고,
나뭇잎이 아주 써서 먹을 수 없거나 열매에 독성이 있는 것도 있고,
모습이 아주 흉하게 생긴 것도 있고…….
이렇게 살아 있는 생명에게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하나씩 주어져 있다고.
그러던 어느 날 탱자 꽃잎을 보다가 스스로의 가시에 찔린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다가 제 가시에 쓸렸으리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주어진 가시가 때로는 스스로를 찌르기도 한다는 사실에 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걸 어렴풋하게 느낄 무렵, 소읍에서의 내 유년은 끝나 가고 있었다.

― 나희덕,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부분


한아름 따온 탱자는 가을과 함께 썩어간다
과즙이 향유가 되는 건
놀라움이 식지 않았을 때의 일
물에서 건져 온 조약돌의 빛이 식어가듯
탱자는 시들기 시작하고
탱자를 담고 있던, 아니 숨기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는 하루하루 부풀어 오르고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오면서 나는
썩어갈 슬픔 하나를 데리고 왔는지 모른다

며칠 전부터 비닐봉지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 속에 누가 갇혀 있는가
검은 살을 찢고 나오려는 푸른 가시들
제 가시에 찔려 눈이 먼 탱자꽃

탱자꽃 핀다 탱자꽃 핀다 썩어 문드러진 탱자 속에서

― 「탱자」 전문


앞의 수필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에서,
뒤의 시 「탱자」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지요.
물론 앞의 수필은 유년의 기억이고 뒤의 시는 현재의 사건이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두 탱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키웠지만,
제 가시에 찔려 눈이 먼 탱자꽃”, “탱자꽃 핀다 탱자꽃 핀다 썩어 문드러진 탱자 속에서”라는 문장으로,
나희덕 시인은 유년에 탱자꽃을 보며 느꼈던 “알 수 없는 슬픔”을 완성하고 있지요.
어린 나희덕이 시인이 되는 데에는 바로 탱자꽃의 그 알 수 없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 글을 연재하면서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전식 뜻풀이가 지닌 한계를 문학 작품은 늘 거뜬히 넘어서지요.
두산백과에서 풀이하고 있는 탱자와 나희덕 시인이 풀어내고 있는 탱자는 같은 듯 사뭇 다르지요.
두산백과의 뜻풀이가 탱자를 탱자에 가둔 것이라면,
나희덕의 탱자는 탱자를 넘어선 사유에 다다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시를 한 편 더 읽겠습니다.
빽빽한 팽가나무 가시 울타리를 보며 고찬규 시인은 이렇게 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던 탱자나무 울타리 속은 얼마나 넉넉한 품이었던가 상처입은 새들,
부드러운 털가슴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잠들 수 있던 얼마나 견고한 성(城)이었던가,
그때 내 가슴엔 또 얼마나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던가

고통 속에서 피는 꽃이라고
딱히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새떼들 날아오르는 텅 빈 오후

어둠을 모아 두 눈을 찌르는
총총한 별처럼

그렇게 어두운 귀퉁이
아픈 마음 한 구석

무더기무더기 탱자꽃 피었네

새떼들 날아오르는 텅 빈 오후엔
꽃그늘조차 그저 그늘이었네

― 고찬규, 「탱자꽃」 전문


이제는 어디를 가도 탱자나무 울타리는커녕 탱자나무도 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부산에서 온 지인에게 탱자나무를 아느냐고 묻자,
어릴 때 탱자나무 가시로 고동을 까먹곤 했다더군요.
점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라지고 사라져서는 추억으로만 남은 것들 그리고 그 추억마저도 희미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추억으로 행복한 한 해를 만들어가시기 바라겠습니다. (끝)

- 월간 《춤》, 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