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觀我Guanah Story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1887~1914)
Guanah·Hugo
2025. 4. 3. 07:27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산책 Promenade》(1913)
아우구스트 마케는 독일의 베스트팔렌주(州) 메셰데에서 태어났다.
1904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았으나,
아카데미의 따분한 분위기보다는
근교의 조금 더 진보적인 학교에서 야간강좌를 들으며
판화와 소묘의 다양한 기법을 배우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범한 정경이지만 그의 그림에 묘사된 도시나 교외의 풍경은,
평범한 정경이지만 그의 그림에 묘사된 도시나 교외의 풍경은,
매우 매혹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의 화폭 속에 녹아든 강렬하면서도 밝은 색채 때문이다.
마케는 비록 표현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색채주의자였다.
마케는 비록 표현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색채주의자였다.
그는 무엇보다 빛과 색채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으며,
서정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았다.
마케는 여러 차례 파리를 여행하면서 인상주의와 야수파, 입체파 등에 접촉했다.
그는 마티스(Henri Matisse)와 야수주의 화가들의 자유롭고 표현주의적인 색채 사용에 매료되었으며,
미래주의 화가들의 생동감 있는 구성에서도 색다른 감흥을 얻었다.
《공원 레스토랑 Park Restaurant》(1912)
마케는 1910년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를 만나 친분을 맺고,
마케는 1910년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를 만나 친분을 맺고,
이듬해인 1911년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를 중심으로
새로 결성된 표현주의 작가그룹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에 합류했다.
그는 『청기사 연감』에 「가면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그는 『청기사 연감』에 「가면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이 예술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청기사파와 그룹전을 개최하면서 그는 그들의 관심을 공유하게 되었고,
특히 회화의 ‘원시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케의 작품은 다른 방향,
더 구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Street with church in Kandern, 1911
<천연색 작곡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대한 오마주)> 1912년, 빌헬름 하크 박물관.
1912년 마케는 파리로 가서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를 만났다.
1912년 마케는 파리로 가서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를 만났다.
그는 들로네의 오르피즘 회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빛과 색의 분해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형상과 색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심했던 그는 색을 형상의 서정적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형상과 색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심했던 그는 색을 형상의 서정적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그의 작품 속 색채들은 뚜렷한 형상들 속에서 부드럽게 빛나며,
마치 음악의 선율처럼 감각적이고 율동감을 전해준다.
파란 호숫가의 사람들 Leute am blauen See, 1913
마케는 주로 일상생활의 정경을 그림의 주제로 택했다.
마케는 주로 일상생활의 정경을 그림의 주제로 택했다.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나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
쇼핑하는 사람, 공원을 거니는 연인들,
그리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의 그림 속 단골손님이다.
<옷가게 진열창> 1913년, 루드비히 박물관.
평범한 정경이지만 그의 그림에 묘사된 도시나 교외의 풍경은,
평범한 정경이지만 그의 그림에 묘사된 도시나 교외의 풍경은,
매우 매혹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의 화폭 속에 녹아든 강렬하면서도 밝은 색채 때문이다.
마케는 비록 표현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색채주의자였다.
마케는 비록 표현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색채주의자였다.
그는 무엇보다 빛과 색채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으며,
서정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았다.
<공원탁자에 앉아 있는 남녀> 1914년, 개인.
1914년 동료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와 스위스 화가 루이 무아예(Louis Moilliet)와
1914년 동료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와 스위스 화가 루이 무아예(Louis Moilliet)와
튀니지로 여행을 떠난 경험은
그의 화폭에 투명한 색채와 단순한 풍경을 등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동물원 Zoological Garden》(1912)
그는 여행 중 그린 수많은 수채화 및 소묘를 바탕으로,
그는 여행 중 그린 수많은 수채화 및 소묘를 바탕으로,
이후 순수함이 더욱 더 강렬해진 시적인 감성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몇 달 뒤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그러나 몇 달 뒤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마케는 군에 징집되었다.
그는 1914년 9월 26일 프랑스의 상파뉴 전선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나무 아래 소녀들 Girls Under the Trees》(1914)
주요 작품에는
주요 작품에는
《공원 레스토랑 Park Restaurant》(1912),
《동물원 Zoological Garden》(1912),
《산책 Promenade》(1913),
《초록색 재킷을 입은 숙녀 Lady in a Green Jacket》(1913),
《모자가게 앞의 여인들 Women in front of the Hat Shop》(1913),
《줄타기 곡예사 Tightrope Walker》(1914),
《나무 아래 소녀들 Girls Under the Trees》(1914) 등이 있다.
(두산백과)
《초록색 재킷을 입은 숙녀 Lady in a Green Jacket》(1913)
《모자가게 앞의 여인들 Women in front of the Hat Shop》(1913)
《줄타기 곡예사 Tightrope Walker》(1914)
Staudacher's house at the Tegernsee, 1910
Tegernsee landscape, 1910, Germanisches Nationalmuseum.
Landschaft am Tegernsee mit lesendem Mann, 1910
Rokoko,1912, oil on canvas, 89 x 89 cm, National 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Design, Norway.
August Macke - Evening
집들 및 굴뚝과 함께 보이는 성모교회 (본) St. Mary's with houses and chimney (Bonn), 1911, Kunstmuseum Bonn.
Red house in the park, 1914
골목 안 풍경 [View into a Lane],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뮐하임 시립박물관.
Kairouan (III), 1914, watercolor, Westphalian State Museum for Art and Cultural History, Münster.
알제의 시장,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소장처 미상.
Hutladen III, 1914
Two girls, 1913, Städelsches Kunstinstitut.
작별 [Farewell],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루드비히 박물관.
크고 밝은 진열창, 아우구스트 막케, 1912년, 슈프렝겔 박물관.
소매상인과 항아리들,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소장처 미상.
생제르맹 별장의 안마당,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본 미술관.
바자르에서, 아우구스트 막케, 1914년, 소장처 미상.
August Macke - Indians.
August Macke - Landscape with Cows, Sailing Boat and Figures.
<암소와 낙타가 있는 풍경> 1914년,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August Macke - Kinder mit Ziege-1912
August Macke - In the Garden.
August Macke - Four Girls.
August Macke - Girls Bathing with Town in Background.
August Macke - Children at the Harbour.
August Macke - Türkisches Café (II).
August Macke - Woman in Park.
August Macke - Sunny path.
August Macke - Sailboat at the Tegernsee.
함마메트 부근의 풍경, 아우구스트 마케, 1914년, 소장처 미상.
정원 안의 집, 아우구스트 마케, 1914년, 소장처 미상.
라인 강가의 낚시꾼, 아우구스트 마케, 1907년,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곡식 밭의 나무, 아우구스트 마케, 1907년, 오스트발 박물관.
정물화 : 히아신스가 놓인 양탄자, 아우구스트 마케, 1910년, 개인.
Little Walter`s Toys, 1912, Städel.
책상에 앉은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트 마케, 1909년, 개인.
모자를 쓴 화가의 아내 초상 The artist's wife in blue hat, 1909
August Macke, Self-portrait, 1906
*색채의 마술사, 그 속엔 아픔이…
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색채의 마술사, 그 속엔 아픔이…
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중에서도 독일 표현주의자 아우구스트 마케(1887~1914)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모은 천재 화가였다.
안타깝게도 전쟁이 발발한 지 수주 만에,
그는 프랑스 샹파뉴 전선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27세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아우구스트 마케의 <테게른제 풍경> 1910년.
그의 절친이자 같은 표현주의자인 프란츠 마르크는 조사에서,
그의 절친이자 같은 표현주의자인 프란츠 마르크는 조사에서,
“전쟁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네.
그러나 한 탄환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사나이를 앗아가 버렸지.
그의 죽음으로 (독일)문화는 한쪽 손이 잘리고 한쪽 눈을 잃고 말았네”
라며 그를 추모했다.
기가 막힌 건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마르크 역시,
기가 막힌 건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마르크 역시,
그로부터 2년 뒤 베르덩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한국경제, 2014.06.02 20:45
<프란츠 마르크의 초상> 아우구스트 마케, 1910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모자를 쓴 자화상> 아우구스트 마케, 1909년, 본 미술관.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 , 靑騎士派)
청기사파는 추상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 , 靑騎士派)
청기사파는 추상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창립회원인 프란츠 마르크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청기사 Der Blaue Reiter>라는 미학 평론집을 공동 편집했는데,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유래한 이 책의 이름이 그뒤 이 단체의 이름이 되었다.
청기사파는 운동이나 유파가 아니라 뚜렷한 프로그램 없이,
청기사파는 운동이나 유파가 아니라 뚜렷한 프로그램 없이,
다만 1911~14년에 걸쳐 작품을 함께 전시했던 많은 미술가들의 포괄적인 집단으로 볼 수 있다.
청기사파의 미술가들은 이보다 일찍 생겨난
청기사파의 미술가들은 이보다 일찍 생겨난
독일의 미술가 집단인 브뤼케파와 마찬가지로 표현주의적 성향을 띠었지만,
브뤼케파와는 달리 그들의 표현주의는,
서정적 추상의 형태를 띠었으며 다양한 양식적 특징을 보였다.
▲가브리엘 뮌터가 그린 <칸딘스키의 초상> 1906년.
그들은 일종의 신비감을 형상으로 나타내어,
그들은 일종의 신비감을 형상으로 나타내어,
그들의 미술에 깊은 정신적 의미를 불어넣고자 했다.
청기사파의 화가들은 유겐트슈틸 그룹과 입체파 및 미래파의 회화 양식,
소박한 민속예술 등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청기사파의 첫 전시회는 191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기사파의 첫 전시회는 191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뮌헨의 탄호이저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는데,
참가한 미술가로는 창립회원인 마르크와 칸딘스키를 비롯해,
앙리 루소, 다비드 부를류크, 블라디미르 부를류크, 알베르트 블로흐, 아우구스트 마케 등이 있었다.
▲Alexej von Jawlensky - Self-Portrait, 1912.
러시아의 화가인 알렉세이 본 야블렌스키는,
러시아의 화가인 알렉세이 본 야블렌스키는,
공식적인 회원은 아니었지만 청기사파의 목적을 지지했다.
스위스의 화가인 파울 클레는 1912년 이 그룹에 합류했고,
뮌헨에서 열린 그래픽 아트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 전시회에 참가한 다른 미술가로는 앙드레 드랭,
이 전시회에 참가한 다른 미술가로는 앙드레 드랭,
장 아르프, 조르주 브라크, 모리스 드 블랑맹크,
미하일 라리오노프, 나탈리아 곤차로바, 파블로 피카소 등이 있었다.
▲August Macke - Colored Composition of Forms, 1914
청기사파의 마지막 전시회는 1913년,
청기사파의 마지막 전시회는 1913년,
베를린의 유명한 슈투름 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독일 가을 살롱전'과 함께 열렸다.
이무렵 독일계 미국인 미술가 라이오넬 파이닝어도 이 그룹에 가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청기사파는 해체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1924년에 파이닝어와 칸딘스키,
전쟁이 끝난 뒤 1924년에 파이닝어와 칸딘스키,
클레(이들은 모두 그무렵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음) 및
야블렌스키는 청기사파의 뒤를 이어 '청색 4인조'(Die Blaue Vier)를 결성했다.
이 그룹의 회원들은 양식의 유사성보다는 1925~34년에
그들이 열기로 한 전시회를 함께 열고자 하는 바람으로 결합한 것이다.
당나귀 타는 사람, 아우구스트 마케, 1914년, 소장처 미상.
바위 지역 풍경, 아우구스트 마케, 1914년, 소장처 미상.
툰 호숫가의 공원, 아우구스트 마케, 1913년, 본 미술관.
채소밭 Vegetable fields, 1911, Museum Ludwig, Cologne,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