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觀我Guanah Story

화가, 헤세

Guanah·Hugo 2024. 11. 16. 07:24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화가, 헤세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의 황폐로부터,
나는 지금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로부터 탈출로를 발견했다.
물감과 페인트를 붓으로 칠하는 작업,
이 작업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이 예술 작업을 통해 나는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화가, 헤세
 

제1차 세계대전 후 40세가 되었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는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 무렵 헤세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헤세에게 이 우울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림 그리기 작업은 그가 위기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세는 무려 3,000여점의 수채화를 남겼다.
그는 여러 화가와 교류를 하며 그림을 그렸고 자연의 풍경을 그림 속에 남겼다.
그는 풍경화 뿐만 아니라 자화상도 시도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글과 그림이 함께 담겨있는 삽화집도 출판했다.
 

헤세의 첫번째 전시회는 1920년에 열렸다.
헤세는 1921년과 1922년에 연이어 전시회를 열었다.
이어 그의 시와 그림이 담긴 삽화집과 동화같은 책을 연이어 출판한다.

1955년에는 헤세의 수채화가 그려진 예술 우편엽서가 시중에서 사용된다.
헤세의 사후 그의 수채화 그림들은 도쿄를 비롯한 뉴욕과 몬트리올,
파리,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스페인 마드리드, 함부르크, 삿포로등에서 전시된다.
 

"나와 나의 작은 수채화 물감들은 시와 먼 기억들, 내가 그렸던 꿈들을 그린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림에 있어서 단순한 아마추어임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펜으로, 그림을 그릴 때 붓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 순간 나는 즐거움으로 견딜 수 없게 된다."
 

 


“나는 단순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으며,
내가 그 풍경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보는 풍경들은 아름답다.
하늘과 동물들, 사람과 그들의 인생들,
내가 본 풍경들은 아름답고 나는 그 풍경의 위엄에 압도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쓰는 문학도 한 단계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이도 깊어짐을 내가 예술을 보는 안목도 깊어짐을 알 수 있다.
나의 글과 나의 그림이 바라보는 저 목표 지점에 강렬한 잠재성이 이를 그 지점에 절대적이며 숭고한 가치가 있다.
그림 그리기 없이,
나는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없었다."
 

 


풍부한 색채를 밝고 따뜻하게 자유롭게 표현한 헤세의 그림들은 마치 폴 세잔의 풍경화들을 보는 듯한 감성을 전해준다.
그의 그림 속에서 헤세가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까지 발전한 헤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작가이자 화가였던 헤세는,
그림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문학 세계도 발전했으며 자신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근,현대 작가인 헤세의 소설 작품들은,
전 세계에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의 미국과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세의 작품은 특히 어느 시대에나 어느 국가에서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무들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웃음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춤추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들이 때때로 운명처럼 전설처럼 내 앞에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 세계 바깥의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의 세계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면 그 사실들은 한결 더 다가온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미소를 짓는다.

나는 매일 똑바로 서서 몇 시간동안이나 테라스에 앉아서 정원에 앉아서 작은 탑 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나도 놀랄만큼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연필과 펜을 가지고 저녁 산의 먼 투명한 색채를 그리며 그것에 깃든 그림자를 스케치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피곤하다. 매우 피곤하다.
그리고 내가 낮에 그렸던 그림들을 저녁에 살펴 볼 때면,
내가 보았던 그 많던 아름다운 풍경을 내가 얼마나 그림 속에 그려냈는지 살펴 보고 나면 나는 조금 슬픈 기분에 젖는다.
나는 그림을 통해 자연의 무결함, 자연의 순수함, 자연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우리들의 믿음과 자유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헤세가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처럼,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노란 밀짚모자를 쓰고 낭만스런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그림을 그렸다.
헤세의 그림들은 독일 표현주의 그림들을 닮아 있으며 그의 굵직한 선들은 야수파의 그림들을 닮아 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색채들은 입체주의 그림들을 닮아있다.
그의 그림들은 그가 문학작품에서 표현했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조화를 나타낸 철학세계를 닮아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의 글쓰기 작업을 발전 시킬 수 있는 마음의 감수성을 발견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 작업을 통해 마음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의 인식을 높혔다.
헤세는 글 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하나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는 내면의 자아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는 어느 고행자의 이야기로 동.서양 사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싯다르타>의 1부는 1919년에 쓰였고, 2부는 1년 반 후에 쓰였다.
이는 <싯다르타>의 내용을 종교적 이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헤세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부유한 고위 성직자 브라만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삶의 쾌락으로부터 육체를 해탈하는 승려인 사마나가 되기 위해서,
신이 그의 정신에 이야기하고 그 스스로 평온함을 얻기 위해서 부모님과 집을 떠났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헤세의 고백이요, 헤세 자신의 의문과 투쟁이다.
헤세는 싯다르타처럼,
자기 부모와 그들의 경건한 기독교 전통 신앙과 개인이 지닌 독자성에 대한 시도를 파괴하는,
엄격한 학교 제도에 반발하였고,
부모로부터 고요하고 행복한 평온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는 세상과의 조화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평온을 원했으나,
그의 삶에 있어서 종교적 기반과 교육적 기반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헤세는 2부를 쓰기에 앞서 다시 한 번 검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싯다르타가 자기의 쾌락을 해탈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헤세는 자기의 경험과 세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기초를 구축하기 위하여,
종교적 이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싯다르타는 강물과 대화와 사고를 통해서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발견한다.
헤세 또한 세상과의 조화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종교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만 했다.
싯다르타는 강을 통해서 그리고 삼라만상이 윤회한다는 사실,
삼라만상이 모든 다른 것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조화를 발견하였다.
헤세는 자기에게 세상과 그의 체험을 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신앙에 대한 재구성을 통해서 조화를 찾았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 더클래식
 

 

 

 


헤르만 헤세(독일어: Hermann Hesse, 1877년 7월 2일 ~ 1962년 8월 9일)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이다.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인쇄에 필요한 종이가 배당되지 않게 한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1946년에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헤세의 문학적 특성

헤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전기 중의 하나는 1927년 위고 발(Hugo Ball)이 써낸 전기인데,
그는 헤세를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騎士)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끝없이 낭만을 추구한 작가로 기억할 만하다.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청춘을 그리워했으며 이성을 향한 동경이나 호기심,
그 시절의 감미로운 심리묘사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헤세의 작품이 갖는 자전적 경향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8년 동안에 나온 산문들에서 숨김없이 나타난다.
헤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작중 인물로 본인이나 자기 인생에서 인상 깊게 경험한 인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헤세의 글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원초적 인간본능이라 할 수 있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향한 동경,
자유를 꿈꾸는 인간적 해방의 가치가 녹아있기에 현대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현대문명이 자연과 유리되면서 대중은 외톨이로 전락했으며,
인간소외는 강화되었고 우울증은 깊어지고 있다.
 

섬세한 심리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시, 음악, 그림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에 화합하는 삶의 길을 모색해왔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과 심리과정은,
오늘날 정신적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또 그가 추구한 것은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통일과 조화를 꿈꾼 것이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신성과 마성 등 자연과 인간내면 세계의 양면성을 관찰하고,
이들의 조화를 꿈꾸었다.
이질적인 대립을 통해 양자가 맞서는 긴장을 아름다운 형태로 지향함으로써 보다 높은 통일을 추구한 것이다.
 

데미안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일하기 위한 싸움이고,

로스할데는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끝없는 대립상태로 이어지면서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이 그려졌고,
크놀프는 인간의 사회적 정주본능과 인간 원초적인 방랑본능의 대립을 통해 인간적 삶의 길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서도 신학교라는 지성적 세계에 속했던,
골드문트가 항상 지성적 인물 나르치스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유와 감성의 세계를 탐구하고픈 열망으로 끝없이 방랑하였고,
그런 감성의 힘을 미술과 조각을 통해 예술적 세계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그의 많은 작품에서는 안정된 기성의 세계에서,
부자유와 억압을 느끼고 끝없이 인간해방을 탐구하는 원초적 인간감성을 향한,
그리움과 인간성 복원을 추구했다.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