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觀我Guanah Story

오필리아(Ophelia) 이야기

Guanah·Hugo 2024. 8. 25. 10:00

출처 :  미술로 여는 세상 | BAND

 

오필리아(Ophelia)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여주인공이다.

 

<오필리아(Ophelia)>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51~1852년, 76.2x111.8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릿에게 살해되자,
오필리아가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꽃을 꺾어 들고 강물 위에 누워있는 양 죽음을 맞고 있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라파엘 전파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수작으로 손꼽힌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특히 오필리아의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내용은 자주 애용되었다.

밀레이는 이러한 비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을 청초하고 아름답게,
또 극적이고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밀레이는 이 작품을 위해 잉글랜드 서리 근교의 호그스밀(Hogsmill) 강가에서 넉 달 동안 머무르며 그림의 배경을 그렸다.

여기에는 수십 종의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강을 묘사한 부분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버림받은 사랑'이라는 상징 때문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자라난 쐐기풀들은 고통을 의미하며, 데이지는 순수, 팬지는 허무한 사랑, 제비꽃은 충절을 암시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양귀비는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 또 그림 오른편 나뭇가지는 해골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은 배경을 완성한 후 런던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l)이란 여성을 모델로 그렸다.

그녀는 강물에 빠진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에 누워서 포즈를 취하였다. 욕조의 차가운 물은 램프로 데웠는데 램프의 불이 꺼져 그녀가 심한 감기에 걸리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병원비와 치료비를 대지 않으면 법정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은 나중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rbriel Rossetti)의 아내가 되었다.

<오필리아>는 비극적이고 섬뜩한 죽음을 주제로 그린 그림임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또한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오필리아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 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그것은 치밀하게 묘사한 사실적 풍경 위에 화가의 시적 상상력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그리고 있는 비극적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재창조하려는 밀레이의 강한 의지의 소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두산백과
 

Ophelia, Alexandre Cabanel, 1883
 

Ernest Hebert, Ophélie (1876)
 
 

Ophelia / Konstantin Egorovich Makovsky (1839-1915)
 

 

Ophelia / Konstantin Egorovich Makovsky (1839-1915)
 

Ophelia, Jules-Joseph Lefebvre, 1890 - Museum of Fine Arts.
 
 

Pascal Adolphe Dagnan-Bouveret Ophelia
 
 

Georges Jules Victor Clairin, Ophelia, (date unknown, artist died 1919)
 
 

Ophelia, Odilon Redon, 1900-05
 
 

Ophelia, Odilon Redon, 1900-05
 
 

Ophelia, Odilon Redon, 1900-05
 

꽃 사이에 있는 오필리아 [Ophelia among the Flowers],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905년~1908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Ophelia, Simeon Solomon.

 

Ophelia, Paul Steck, 1895
 

Ophelia, Thomas Francis Dicksee, 1875

 

<윌리엄 셰익스피어> 초상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1616년)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셰익스피어는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야만적이고 저속한 이류작가로 평가되다가,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시대의 선구자로 평가되었다.
특히 스탕달이나 위고는 그를 프랑스를 지배하는 고전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된 문학가,
낭만주의 문학의 선조로 숭앙하였다.
 

Eugène Delacroix Hamlet und Horatio auf dem Friedhof (1835) Städel Museum

당시 위고 등과 교류했던 들라크루아에게도 셰익스피어는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1828년경에 제작된 석판화에서는 햄릿과 호레이쇼,
그리고 무덤지기들과 오필리아의 장례일행이 뒤쪽에 함께 묘사하였다.
이 주제로 그린 첫 유화는 1836년의 살롱에 출품하기 위해 바로 전 해에 그린 것으로,
여기에는 무덤지기가 등장하지 않은 채 요리크의 두개골을 손에 들고 묵상하는 햄릿과 호레이쇼만 보인다.
이 살롱에서는 낙선하였다.
 

<묘지에 있는 햄릿과 호레이쇼> 외젠 들라크루아, 1839년


그로부터 4년 후인 1839년에도 같은 주제의 유화로 살롱에 출품해 입선했는데,
이 때에는 무덤지기가 해골을 햄릿에게 건네는 장면이었다.
16점으로 된 <<햄릿>>의 석판화 시리즈의 구도는 조금씩 다르게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무덤의 햄릿과 호레이시오 (셰익스피어, 햄릿, 5장)> 외젠 들라크루아,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 중에서도 <<햄릿>>을 좋아했던 들라크루아는,
그 중에서도 이 작품에 묘사된 <<햄릿>>의 마지막 장의 첫 장면에 매혹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연인 오필리아의 무덤을 파고 있는 무덤지기 곁에 서 있는 햄릿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왕의 어릿광대 요리크의 해골을 한 손에 들고 친구 호레이쇼와 죽음의 비정함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들라크루아는 이 주제로 된 수많은 소묘와 석판화,
그리고 여러 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후 20년이 흐른 1859년에 들라크루아는 살롱에 이 작품을 출품하였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1828년의 구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석판화에는 없는 두 무덤지기와 오필리아의 관이 추가로 등장하였다.

들라크루아는 등장하는 요소들 모두 거친 붓 놀림으로 각각의 형태를 애매하게 처리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정확하고 날카로운 기법으로 요소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이 장면 전체가 갖고 있는 불안한 분위기와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석판화에서는 그리지 않았던 행렬 속 횃불이나 붉은 기운이 뒤덮고 있는 불운한 하늘빛은 보들레르가 들라크루아의 회화에서 발견한 우울한 감각적 요소들이다.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Last Glance of Ophelia, Jerry Reynolds.

 

Hamlet and Ophelia, Vrubel Mikhail Aleksandrovich, 1888

"오 하나님, 전하를 귀해 주소서! 하나님, 전하께서 맑은 정신이 돌아오게 해주소서! 그렇게도 고경하시던 분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귀인의 수려함, 기사의 칼, 석학의 교양이 있었는데, 이 아름다운 나라의 희망이며 꽃이었건만 유형의 거울이요, 예의범절의 본보기로 만인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 되나니. 활짝 핀 꽃다운 청춘의 수려한 용모와 자세도 이 광란의 독기를 머금고 시들어 버리다니! 아 어쩌면 좋아! 옛날을 보고 알고 있는 이 눈이 지금의 저 모습을 보아야 하다니!"
-햄릿 중 오필리아의 명대사
 

<윌리엄 셰익스피어> 초상화, 영국화가 존 테일러(16~17세기), 作

*햄릿 명대사 모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포악한 운명의 화살이 꽂혀도 죽은 듯 참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면 창칼을 들고 거센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죽는 건 잠자는 것... 그뿐 아닌가."

"저 해골도 한때 혀가 있어 노래를 부른 때가 있었지."
(햄릿의 필멸의 존재에 대한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대사)

"사람은 비수를 손에 들지 않고도 가시 돋친 말 속에 그것을 숨겨둘 수 있다."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니던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이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만물의 영장이다"

"아, 너무도 추하고 더러운 이 몸뚱아리,
녹고 녹아 이슬이라도 되어 없어져 버려라.
차라리 이 땅에 자살을 죄로 몰아치는 신의 율법이 없었던들.
못 견딘다,
싫다,
세상 만사가 모두 내게는 진저리나고 고리타분하고 밋밋하고 부질없다.
지겹다.
이렇게 변할 줄이야.
돌아가신 지 겨우 두 달, 아니 두 달도 안된다.
아니 생각하지 말자...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다!
여신처럼 눈물에 젖어 가엾은 아버님의 영구를 따라가던 그 신발이 미처 닳기도 전에 어머니가, 그 어머니가..."

"살인 죄,
그 죄는 설령 입에 혀가 없다 해도 스스로 말문을 연다지 뭔가.
저 배우들을 시켜 아버님의 억울한 살인 장면과 비슷한 연극을 숙부 앞에서 하게 하자.
숙부의 안색을 지켜보고 급소를 찔러 살펴 보리라.
그래서 그의 시선에 초점이 흐려지면 내 어찌 미적미적 하겠는가...
언젠간 내가 나타난 망령은 악마일지도 몰라.
악마는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마력이 있으니까.
아냐, 어쩌면 그건 내가 허해지고 울화증이 생긴 틈을 타서 마수를 뻗이려는 수작인지도 모를 노릇.
자, 지옥으로 가라는 건가.
나는 망령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얻어야겠다.
그러려면 연극이다.
반드시 왕의 본심을 까발리고 말 것이다."

"그대가 굳이 결혼한다면 나의 저주를 혼수 삼아 보내리다...
그대가 아무리 얼음처럼 정결하고 하얀 눈처럼 순결하게도 해도 이 세상의 구설을 피하지는 못할 거요.
어서 수녀원으로 가시오, 어서."

"저승에서의 마지막 심판이 무엇 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 상식으로 판단해 보건데 필경 아버지는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저 악당이 스스로의 영혼을 깨끗이 씻으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를 해치우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아, 호레이쇼... 나는 죽는다! 독기가 무섭게 정신을 마비시키는구나.
영국으로부터 소식도 듣지 못하게 됐구나.
하지만 예언하건대 왕으로 선출될 사람은 포틴브라스 밖에 없다.
죽음이 임박한 이 자리에서 나는 그를 추대하고 싶다.
그에게 내 뜻을 전하여라.
이렇게 된 여러사정 얘기도 빼놓지 말고 전하라.
이젠 침묵뿐 이로구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명대사를 모아봤습니다.
햄릿은 부왕의 독살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방황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는 비운의 왕자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악함으로 인한 갈등과 비극을 이야기 하는 햄릿 대사들은 짧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고 인생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ugene Delacroix - Hamlet and Polonious.

 

햄릿 [Hamlet],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50년,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